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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표(Ex Libirs)를 아십니까?
등록일 : 200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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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많은 책을 소장하게 되면, 소장하고 있는 책에 이른바 장서인을 찍거나 장서표를 붙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큰 고무지우개나 나무 조각에 어설픈 솜씨나마 직접 자신의 이름이나 모종의 특별한 이미지를 새겨 넣고, 소장하고 있는 모든 책에 그 자취를 남기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일종의 정복욕이나 소유욕이 적지 않게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새로 구한 책의 속표지나 모서리에 장서인을 꾹 눌러 속된 말로 '찜' 하는 순간의 즐거움은 책과 관련한 정복욕 내지는 소유욕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책의 소유권자를 나타낸다는 무미건조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단순한 호사가적 취미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서적광 또는 장서광,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책에 미친 사람'의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행위일 수도 있다. 사실 소유권을 표시하려 한다면 반드시 장서표나 장서인을 사용해야 할 까닭은 없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책의 속표지 또는 그 밖의 적당한 지면에 직접 이름을 적어 넣을 수도 있지 않은가?

사실, 책이 아닌 다른 물건에 장서표와 비슷한 종류의 소유권 표시를 위한 부착물 또는 장서인 같은 것을 사용한다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일 것이다. 다른 '물건'과 책의 차이는, 책이라는 '물건'이 '의미'의 육화(肉化)라는 점이 아닐지. 결국 책이라는 '물건'을 손에 넣은 사람은 그 안의 활자와 사진, 그림, 전체적인 디자인 등이 담고 있는 '의미'까지도 고스란히 껴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손에 넣은 셈이라 하겠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장서표 또는 장서인 취미(?)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사항은, 아무리 수백만 권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어느 특정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그 책은 사실상 유일무이한 '물건'이라는 점이다. 그 책을 손에 넣으려는 뜻을 지닌 순간부터 이미 그 사람에게 그 책은 고유하고 특수한 하나의 의미가 된다. 더구나 손에 넣은 다음 본격적으로 그 '물건'의 '의미'를 탐색하노라면 유일무이의 의미는 세월이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할뿐더러 새로운 의미, 그러니까 어느 한 책과 한 사람과의 오랜 사귐의 역사에서 비롯되는 의미가 탄생한다. 장서표 또는 장서인은 어쩌면 그러한 역사 또는 의미에 붙이는 꼬리표인지도 모른다.

라틴어로 Ex Libris 영어 단어로는 bookplate(물론 두 말이 모두 사용된다.), 우리말로는 보통 장서표(藏書票)라 부른다. Ex Libris를 해석하면 'from the books of', 즉 '누구 누구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하나' 정도가 된다. 그 정확한 기원을 확정하기는 힘들지만, 도서 인쇄의 역사와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장서표는 기본적으로 도서의 소유권자, 쉽게 말해서 책 주인을 나타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이전에는 책 주인이 육필로 직접 적어 넣거나 문장을 비롯한 여러 특징적인 이미지를 그려 넣거나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이후, 인쇄된 작은 종이 라벨의 형태로 책에 부착하는 장서표가 일반화되었다. 보통은 책 주인의 이름을 인쇄했지만, 이름 이외에 소유권자를 식별할 수 있는 그림이나 문양 등도 널리 채택되었다. 특히 광범위한 일반 대중들에게 책이 보급되기 이전, 그러니까 사실상 귀족들만 책을 소유할 수 있었던 시절에는 귀족 가문의 고유한 문장이나 상징이 장서표의 도안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한 장서표를 보통 Heraldic Bookplate, 그러니까 '문장(紋章) 장서표'로 분류한다. (왼쪽 장서표는 독일 및 프러시아의 군주였던 빌헬름 2세(1859~1941: 재위 1888~1918)의 것으로, 1906년에 에밀리오 도에플러(Emilio Doepler)가 사진석판술 기법으로 제작한 것이다.)

한편 종이에 인쇄하여 책의 속표지에 부착하는 장서표 이외에, 역시 소유권을 나타낼 목적으로, 표지 장정이나 책 모서리 부분에 찍는 인장(印章), 그러니까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장서인도 널리 이용되었다. 구텐베르그의 인쇄술 고안 이후, 장서표는 보통 목판으로 인쇄되었다. 목판 인쇄 방식의 장서표로서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것은 (그 정확한 연대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1450년 경에 독일에서 출현했다. 아이글러(Igler)라는 별명을 지닌 요하네스 한스 크나벤스페르그(Johannes Hans Knabenperg)라는 사람의 장서표였다.

하지만 보다 본격적인 장서표로서 그 제작 연대를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것은, 브란덴부르그 가문의 문장을 담고 있는, '힐데브란트'(Hilderbrand)라는 시토 수도회 소속 수사의 장서표이다. (아래 왼쪽 그림) 시기는 대략 1470년에서 80년 사이쯤이다. 한편 구스타프 암베그(Gustav Amweg)의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과 같은 의미에서 사실상 최초의 장서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길렘 그리메이트르(Guillame Grimaitre)가 1464년경부터 사용한 장서표라고 한다. 1970년대 후반에 15세기 및 16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장서표가 두 점 더 발견되기도 했는데, 그것들은 각각 오늘날의 스위스 지역인 림베르거(Limberger)의 주교 텔라모니우스(Telamonius)가 1498년부터 사용한 장서표와, 폴란드의 주교 마티에드레비치 블라디슬라우(Mathiedrevici Wladislaw)가 1516년부터 사용한 장서표였다.

독일 화가들 가운데 장서표를 그린 유명한 화가들로는 한스 홀바인과 알브레히트 뒤러가 있다. 특히 뒤러는 최소한 다섯 점의 장서표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1516년경에 그린 '히에로니무스 에브너'(Hieronimus Ebner)의 장서표와 '빌리발디 피르크하이머'(Bilibaldi Pirckheimer)의 장서표이다. 한편 이태리에서는 장서표가 대략 1548년경에 등장했다. 토르토나(Tortona)의 주교인 케사르 데이 콘티 감바라(Cesare dei Conti Gambara)의 장서표가 최초의 것이다. 그리고 1559년에 목판으로 인쇄된 장서표로 니콜로 펠리(Nicolo Pelli)의 것이 있다.

스페인에서는 1553년에 제작된 프란시스코 데 타라파(Francisci de Tarafa)의 장서표가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장서표는 1529년부터 장 베르토 드 라 투브랑쉬(Jean Bertaud de La Tourblanche)가 사용한 것으로, 12사도들 가운데 요한을 표현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예전에도 그러했지만, 특히 오늘날의 장서표는 그 본래의 기능인 도서 소유권자의 표시라는 차원을 넘어서, 예술 창작 활동의 차원에서 제작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물론 예술 작품으로서의 장서표는 다른 예술 작품(Visual Art)과는 무척 다른 특징을 지닌다. 장서표는 본래의 용도, 그러니까 장서표를 제작하는 사람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도서에서 '실제로' 사용하게 위해 직접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여간 심지가 굳은 독서광 또는 장서광이 아니라면 장서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가 힘들다.

장서표 수집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유명인의 장서표, 오래 된 유럽 왕가 또는 귀족 가문의 장서표, 그밖에 현재로서는 구하기 힘든 희귀 장서표 같은 것은 장서표 수집자들의 주요 표적이기도 하다. 또한 장서표는 제작자의 국적, 민족에 따른 개성과 특징을 지니기 마련이다. 우표의 경우와도 비교할 수 있겠는데, 그리 크지 않은 도안 또는 그림 안에 도서 소유자의 개성뿐만 아니라 소유자가 속한 민족, 국가의 문화적 전통과 특색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우측 그림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의 장서표)

사실 장서표는 유럽 특유의 문화적 산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다양한 문화권의 서적광들이 나름의 문화적 특색을 살린 장서표를 제작, 사용하고 있다. 장서표의 제작 방식이나 스타일은 문화적, 사회적, 기술적 발전과 언제나 궤를 같이 하고 있었다.

20세기 초반을 넘어서면서 전통적인 문장(紋章) 스타일의 장서표가 쇠락하고, 특히 시각 예술에서의 아방가르드 사조의 영향으로 인해, 보다 다양한 이미지와 스타일의 장서표가 대두되기도 했다. 제작 방식에서도 전통적인 목판, 석판 인쇄술 일변도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기술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오늘날에는 장서표가 그 본래의 용도보다는 책 주인의 예술적 취향과 개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단지 우표 수집과 같은 수집 취미의 대상으로 각광받기도 한다. 더 나아가 장서표를 상업화, 산업화하여 주문 제작 서비스를 하는 전문가 또는 업체도 생겨났다. 물론 그러한 상업화 내지는 산업화는 보다 진지한 태도로 장서표를 대하고 수집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98년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개최된 세계장서표전시회에 출품, 전시되었던,
중국의 오광군(吳光君) 씨의 장서표.
 

오늘날 장서표 제작 및 수집가들이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나라를 든다면, 포르투갈, 미국, 영국, 호주, 일본, 그리고 일부 동구권 국가들이 있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 최초의 현대적인 장서표는 도쿄 공공도서관 장서에 부착된 1875년의 것이며, 전통적인 목판, 목각 예술을 그 문화적인 토양으로 하여 사뭇 활발하게 애호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1953년에 최초로 국제적인 장서표 애호가 모임이 호주의 쿠프스테인에서 개최된 바 있고, 1966년에는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국제 장서표 협회 연합(International Federation of Bookplate Societies: FISAE)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책과 예술 ⓒ 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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