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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과 전체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록일 : 200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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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미리 예측하고 싶어 한다. 아이작 뉴턴에 따른다면 그러한 예측은 가능하다. 특정 위치에서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고 해보자. 우리는 그 물체의 현재 속도와 진행 방향, 위치 등을 바탕으로 그것이 앞으로 어느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공을 던지면 공은 아래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1932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에 따르면, 우리는 자연 현상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전자(電子)의 위치를 보다 정확하게 알려면 가능한 한 짧은 파장의 빛으로 관찰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빛의 파장이 짧아질수록 전자는 더욱 불규칙하게 그리고 보다 자주 움직인다고 한다. 결국 전자의 운동에 대해서 부정확하게 알 수밖에 없어진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어느 현상을 관찰하는 사람의 행위, 즉 측정 행위 자체가 관찰의 대상이 되는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이러한 하이젠베르크의 입장을 보통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부른다. 이러한 불확정성의 원리는 결국 자연계, 특히 극히 작은 물질 단위의 세계에서는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고 다만 통계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는 '비결정론적인 세계관'이다.

한편 <부분과 전체>는 1969년에 처음 출간된 책으로, 하이젠베르크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저명한 과학자의 자선전인만큼 당연히 과학 연구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지만, 과학자로서가 아닌 그냥 한 인간으로서의 하이젠베르크의 모습이 더욱 흥미를 끄는 책이다. 하이젠베르크는 1901년에 뮌헨 대학 의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수학, 피아노, 스포츠 등에 재능을 발휘했다.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당시 세계적인 물리학자였던 뮌헨 대학의 좀머펠트 아래서 공부하여 22세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26살에 라이프찌히의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전후로 하여 미국, 영국 등으로 망명한 독일의 많은 과학자들과는 달리, 끝까지 독일에 남아 있었다. 이 때문에 1942년에는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물리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되어 히틀러의 우라늄 계획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원자탄을 보유하게 될 것을 우려하여 소규모의 원자로 실험만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일부러 독일의 원자탄 개발을 막았는지의 여부는 불확실하다. 여하튼 그는 1957년에 18명의 독일인 핵물리학자와 함께 핵무장에 받대하는 '괴팅겐 선언'을 주도하기도 했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할 무렵인
1932년의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의 특징을 든다면, 이 책이 기본적으로는 1920년대 초부터 1960년대 말까지의 약 50년에 걸친 물리학 발전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물리학이나 수학 공식이 아닌 대화와 토론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내용도 물리학 자체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현대 물리학의 탄생과 발전의 역사, 과학과 종교, 과학과 철학, 과학과 정치, 과학과 예술 등의 주제까지도 다루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물리학 또는 자연과학 일반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어도 약간의 끈기만 발휘하면 읽을 수 있다.

사실 <부분과 전체>라는 제목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과학자를 포함한 현대의 모든 학문 연구자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협소한 전공 분야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강하다. 세부적인 측면을 자세하게 파고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측면은 놓치기 십상인 것이다.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 종교, 예술, 철학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하이젠베르크의 깊은 뜻을 제목에서 알 수 있는 셈이다.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이 책에 대해 “토론과 대화에 있어서 물리학이 항상 주역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이고 철학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것은 자연 과학이 이와 같은 일반적 문제들과 분리되어서는 성립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양자역학의 에너지 법칙을 수학적으로 풀어내는데 성공한 순간을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수학적으로 하등의 모순이 없는 완전한 양자역학이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었다. 처음 순간, 나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원자현상의 표면 밑에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내적인 美의 근거를 바라보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 자연이 내 눈앞에 펼쳐 보여준 수학적 구조의 풍요함을 추적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이르자 현기증이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새벽의 여명을 뚫고 여관이 자리잡고 있는 고지의 남단에 있는 산봉우리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그곳에는 바다에 돌출하여 고고하게 서 있는 바위 탑이 있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항상 내게 등반의 유혹을 안겨주곤 했었다. 나는 큰 어려움 없이 그 탑에 올라가 꼭대기에서 일출을 기다렸다." (제5장. 아인슈타인과의 대화) 과학적 성취를 예술적, 미적 성취와 마찬가지로 느끼고 취급하는 하이젠베르크의 자세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제16장, '연구자의 책임에 대하여' 부분을 보면 자연 과학의 발전에서 비롯된 문제점에 대한 하이젠베르크의 깊은 우려를 느낄 수 있다. "원자폭탄의 존재 자체는 불행한 일이 아닐 겁니다. 그것이 불행한 까닭은 그것이 장래에 있어서 완전한 정치적 독립과 거대한 경제력을 가진 강대국을 소수로 한정시키게 될 것이기 떄문입니다. 결국 약소국가들은 한정된 독립성밖에는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자연 과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날로 발전하고 있다. 그만큼 그것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과학자들의 책임도 그만큼 커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만 갇혀 있을 때, 그리고 과학 이외의 분야에 눈길을 주지 않을 때, 과연 커지는 책임을 과학자들이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는 지금도 여전히, 어쩌면 앞으로 더욱 소중한 메시지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명저산책 ⓒ 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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