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갤러리

펜과 키보드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등록일 : 2009-10-28
트위터로 공유하기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미투데이로 공유하기
1888년 10월 30일


전라도 강진. 먹물을 머금은 붓이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과 걱정을 종이 위에 담아 내고 있다. "편지가 오니 마음에 위안이 된다. 중아의 필법이 차츰 나아지고 문리도 또한 나아졌다니, 나이를 먹은 덕이냐, 아니면 때때로 익혀서 그런 것이냐 ....책을 읽고, 책을 베끼고, 글을 짓는 일에 혹시라도 방심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백아는 아무쪼록 사월에 말을 사서 타고 오게 하여라. 그러나 헤어질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괴롭구나." (다산 정약용 산문집/ 한양출판)

포연이 가득한 전장. 깃털펜이 바쁘게, 그러나 우아함을 간직한 체 움직이고 있다. "록산느 잘 있소. 마지막 편지를 쓰는 가슴이 납덩이처럼 무겁군. 오늘 나는 죽을 거요. 내 눈이 이 땅에서 다시는 보지 못하겠지? 당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 가슴이 터지는군... 마지막으로 말하겠소. 잘 있소. 내 마음은 한 번도 당신 곁을 떠난 적이 없소. 다음 세상에서도 당신만을 사랑할 거요. 당신만을 .. "(시라노/ 장폴 라프노 감독, 제라르 드 파르디유 주연)

붓이나 깃털펜으로 편지를 쓰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만년필조차도 볼펜이라는 경제적인 물건에 자리를 내준지 오래다. 동사 하나가 잊혀져 가고 있다. 글을 '쓰다'라는 동사이다. 사람들은 이제 볼펜조차 좀처럼 사용하려 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키보드로 글자를 '치거나' 또는 '입력한다'. 펜으로 적는 것과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받아쓰기 시험을 지금도 치르는지 모르지만, 받아쓰기가 아니라 받아 '치기' 또는 '입력하기' 시험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몸 자체가 키보드화(keyboardnization)되어 버린 사람들의 글쓰기는 과연 어떤 색깔을 지니게 될까?




1888년 10월 30일. 미국인 존 라우드가 볼펜의 특허권을 얻었다. 그러나 볼펜이 실용화된 것은 그보다도 훨씬 후인 1945년의 일이었고, 가격도 50센트로 지금에 비해 훨씬 비쌌다. 우리 나라에서 볼펜이 처음 생산, 시판된 것은 1963년이었고, 소비자 가격은 15원이었다. (지금도 전국 대부분의 동네 문구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그 유명한 153볼펜. 바로 위의 그림) 볼펜이 종이 위에 어떤 원리로 글자들을 만들어 내는지 궁금하다면, <도구와 기계의 원리 1> (진선출판사)의 149쪽을 보면 된다. <문자의 역사>(시공사)는 정확하고도 아름다운 글씨 쓰기를 향한 인류의 열정을 다루고 있다.

날짜로 보는 책과 인물 ⓒ 장석봉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