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곰씨부엌에서 닭곰탕을 먹다가 벚나무와 눈이 마주치다.
등록일:2019-05-29, 조회수:335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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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 연결된 사람의 몸. 아무리 고급한 생각을 많이 한다 해도 밥 한 톨 삼키지 못한다면 그 생각을 건사할 수가 없다. 맹자는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항산(恒産)이라야 항심(恒心)이라고 했다. 그건 내 몸에서도 정확히 적용된다. 삼시 세끼. 이보다도 일상에서 더 필수불가결한 것도 달리 없을 것이다. 오죽 했으면 삼식이,라는 참으로 모멸찬 별명이 등장했을까. 몸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끔찍하리만큼 귀찮고 정확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어디에서 오는지 도무지 그 정체를 모르겠는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배꼽시계가 뻐꾸기처럼 울었다. 꼼짝없이 모두 일어서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아니 먹고는 오후를 견딜 수가 없다. 아무리 희미한 생각일지라도 밥 한 톨이 제공하는 에너지가 없다면 그 생각을 맞이할 방도가 없다. 오늘도 도래한 점심. 이번에는 뭘 먹을까. 이는 늘상 부딪히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중간 끼니는 출판도시 1단지에 최근에 문을 연 식당으로 순간적으로 정했다. 닭곰탕과 닭개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옥호도 사뭇 다정스런 곰씨부엌. 말하지 않아도 곰처럼 우직한 분들이 묵직한 국물의 음식을 끓여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직원들과 함께 가니 간판에서부터 벌써 그런 분위기가 설설 풍기는 것 같았다.

메뉴도 마음에 든다. 닭곰탕이나 닭개장은 닭의 살코기를 잘게 저며서 바글바글 끓인 국. 닭고기가 들어간 건 나에겐 특별한 추억도 있다. 칼국수를 워낙 좋아했다. 아마 도시락으로 싸주셨다면 좀 퍼지기는 해도 서슴없이 들고 갔을 것이다. 해서 저녁이면 어머니는 밀가루 반죽으로 늘상 바쁘셨다. 밍밍한 칼국수에 감자만 넣어도 홀랑 혀가 장구를 치는 마당에 어쩌다 집에 귀한 손님이 오는 날이라야 먹을 수 있었던 닭칼국수. 홍두깨로 일일이 밀어서 만드느라 늘 성치 않았을 어머니의 손목 사정은 한번도 살피지 않고 그저 홀랑홀랑 잘도 먹었던 칼국수.





식당 안. 여러 메뉴가 즐비하지만 서슴없이 닭곰탕을 주문했다. 둘은 6천원과 7천원으로 착한 가격이다. 맛은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도 육안에서 차이가 난다. 붉고 뜨거운 성질의 개장과 희고 순한 성질의 곰탕. 좋은 식당은 배고픈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이내 주문한 닭이 나오고 젓가락을 집었다.

첫술이 들어가고 들척한 국물이 목울대를 휘젓고 내려갈 때, 옛날 생각이 거슬러 올라왔다. 참새 새끼처럼 짹짹거리는 내 식욕을 달래느라, 그 간단없는 삼시 세끼를 감당하느라 고단했을 어머니 생각이 특히 났다. 이윽고 배가 반쯤 차는가. 허기가 다스려지고, 국물이 바닥을 점점 보일 무렵 이내 맛도 처음보다 조금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굽었던 허리를 펴면서 숟가락을 그릇에 놓는 여유를 찾았다. 비교적 먹는 속도를 줄이면서 저작운동을 하는 일방, 자연스럽게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았다. 그간 식당 안과 내 몫의 그릇에만 신경을 쏟아 부었는데 비로소 통유리창 바깥의 사정을 헤아리기 시작한 것이다. 입안을 비우고 다시 숟가락을 들면서 힐끗 바깥을 보다가 아, 나는 알게 되었다.

곰씨부엌 앞마당의 울울한 나무. 5월의 푸르른 신록이 도드라지는 벚나무들. 그들이 식당을 환히 쳐다보고 있지 않겠는가. 바깥은 생생한 현실이었다.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 닿은 나무들이 흔들리고, 그 흔들리는 나무에 잎사귀는 춤을 추고, 그리고 우리처럼 끼니를 찾는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곳이었다. 그들도 나처럼 빈틈없는 몸을 가진 분들. 그러면서 나는 나무들을 새삼스럽게 보다가 알았다.

나무들도 식사 중!
이 환한 햇빛 아래에서 소풍 나온 듯!!





나의 입안이 씰룩거릴 때마다 정확하게 리듬을 맞추며 흔들리는 벚나무 잎사귀들의 동작. 목구멍 너머로 꿀떡 삼킬 때면 크게 끄떡이는 잎사귀들의 움직임. 그것은 나의 저작운동과 궁합을 맞추는 나무들의 식사법이 아닌가. 언젠가 인왕산에서 찬물에 밥 말아 먹을 때, 가끔 입을 벌리면 낭랑한 매미소리가 때맞추어 입속으로 들어왔다. 매미소리와 멸치뽁음을 함께 씹어먹는 꿀맛! 그때 그 시절을 연상케 하는 나무들과의 합동 점심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는가.


***

<논어> 향당편은 공자님의 일상생활에 관한 내용들이다.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을 비롯해 의식주에 관한 예절이 주를 이룬다. 그중의 마지막 대목은 다음과 같다.

色斯擧矣, 翔而後集. (색사거의 상이후집)
曰 “山梁雌雉, 時哉時哉!” (왈 산량자치 시재시재)
子路共之, 三嗅而作. ( 자로공지 삼후이작.)

(까투리가)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는 훌쩍 날아오르더니 한 번 빙 날고서야 내려앉았다.
공자 말씀하시다. 산중 돌다리 옆 까투리들, 때로구나 때로구나!
자로가 잡아서 바치니 세 번 냄새 맡으시고는 일어나시다

----한글 세대가 본 논어, 배병삼 옮김  


***


곰씨부엌에서 홀린 듯 닭곰탕을 먹고 며칠 후, 유투브에서 도올의  논어 강의를 듣다가 우연히 위에 소개한 대목과 맞춤하게 만났다. 그 내용을 거칠게 옮기면 다음과 같다. “꿩이 사람의 인기척을 보아서 곧 나른다. 그렇게 빙 날았다가 새가 다시 나무 위에 앉는다. 공자가 말하길 산에 있는 암꿩들이 사람의 시중(市中)이랄까, 때를 아는구나, 새들도 때를 상황에 맞게 파악해서, 때에 맞게 새들도 잘 하는구나, 감탄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자로가 옆에서 아, 밥때다, 밥때다, 새들도 거취가 때에 맞게 하는데, 공자가 배고프다 배고프다 하는 것으로 오해해서 꿩을 잡아 드렸다. 공자는 자로를 나무라지도 못하고 세 번 냄새를 맡고 훌쩍 일어나가셨다는 말씀이지.(하하하)”

...... 그렇게 도올의 카랑카랑한 쇳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아, 곰씨부엌 마당의 벚나무도 때에 맞춰 이렇게! 時哉時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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