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아침 출근길에 만난 개미와 어느 곤충
등록일:2017-07-06, 조회수:163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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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이다. 간밤 심학산도 잘 주무셨는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호랑이 눈알처럼 신호등은 밤새 깜빡거렸다. 꺼질 줄 모르고 아무런 소용도 모른 채 쉬지도 못하는 무정물이지만 안쓰럽다. 보아주는 이 없지만 그저 깜빡깜빡.

잠자리를 박차고 나온 새소리도 싱그럽다. 어제하고 다른 성량에 성조도 더욱 깨끗해진 듯 했다. 저 가느다란 소리가 이 그림에서 빠진다면 이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신호일 것이다. 해도 슬슬 모습을 드러내고 순조롭게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흔들리는 나무, 나는 새, 졸졸 흐르는 개울, 깨끗이 수거한 쓰레기통.... 모두 성실함 그 자체로 어우러진 풍경에 나도 슬쩍 몸을 끼워넣는다. 세계의 성실한 질서에 편입하는 각오로 심학산을 다시 한 번 우러르며 심호흡을 하고 걸어가는데, 어라, 발밑에 뭔가 있다.

인공의 흔적과는 구별이 확 되는 조형물이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웬 곤충(곤충의 이름을 몰라 곤충한테 죄송!)을 둘러싼 언덕 같은 모래들. 고개를 더 숙이고 찬찬이 관찰한 결과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모두들 정지한 가운데 부지런히 오고가는 작은 개미들이 사정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개미(개미의 정확한 이름을 몰라 개미한테 죄송!)보다 덩치가 수십 배에 해당하는 곤충은 간밤에 정통으로 당한 듯했다. 일군의 개미한테 습격을 받고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곳은 개미들이 임시로 설치한 곤충의 무덤, 아니 먹이의 보관창고였다. 한 알갱이를 물어도 입이 꽉 차는 개미들이 밤새 이 모래를 운반하여 모처럼 포획한 식량을 지키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 누구 편을 들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흘러 보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다만, 곧 출근하는 발걸음으로부터 이 상황을 지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사무실로 가서 먹을 갈아 얼른 안내문을 만들었다.

足下有情(족하유정). 밟지마세요. 窮理出版.

모래에 둘러싸인 임시 먹이창고는 하나 더 있었다. 궁리 사무실의 중정 가까이에 하나 더 조성되어 있었다. 그 언젠가 말했듯, 중정의 빈 공간에 조형물로 무덤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나보다 개미가 먼저 이 공간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었다.



날은 점점 더 밝아지는 가운데 차도 점점 많아지고, 분주해지는 발걸음들이 늘어나고, 사무실에 불이 켜지는 등등의 일이 거대한 인간들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편 텅 비어 고요할 것만 같은 중정의 한 귀퉁이에서도 똑같은 햇빛을 공유하면서 인간들에게 못지 않는 곤충들의 하루가 치열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추신. 근무하는 내내 중정 한 귀퉁이 개미의 동향과 먹이의 상태가 궁금했다. 신경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족하유정의 정도가 아니었다. 오늘 전신에 퍼져 있는 나의 정(情)은 2층에서 1층으로 흘렀다. 10시경 가 보았더니 무덤 근처에 살아있는 곤충이 배회하고 있었다. 녀석은 짝을 잃은 것일까. 식구를 잃은 것일까. 길을 잃고 갈팡질팡했다. 그 녀석도 개미들이 집중공격을 당하고 있었지만 너끈히 뿌리치고 있었다. 퇴근 무렵 다시 한번 가 보았다. 놀라웠다. 먹이는 등껍질 부분만 남기고 몸통은 사라지고 없었다. 개미들이 분해해서 저들의 소굴로 옮겨간 것이 분명했다. 아침에 모래들도 싱싱해 보였는데, 먹이가 사라지자 의욕을 잃은 듯 모래들도 시들시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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