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눈썹경례를 하였다
등록일:2017-09-01, 조회수:149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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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도서관 근처에 약속이 있어 모처럼 나들이를 했다. 여유 있게 나섰지만 자유로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은 꽉 막혔다. 겨우겨우 도심으로 진입하는데 사람들 냄새가 물씬했다. 이렇게 많은 인파 사이에서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끼는 게 이상했다.

단골인 구하산방(九霞山房)에 들러 붓 몇 자루를 사고 인사동 거리를 뚫고 지나갔다. 예전에 자주 가던 호프집 “머시 걱정인가”를 지나 풍문여고 앞 횡단보도에 섰다. 버릇대로 전방을 보는데 숨이 컥, 막혔다. 아연 전방에서 인왕산이 확, 덮치는 게 아닌가. 인왕은 내 눈알을 훅, 후벼파는 게 아닌가. 나는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훌쩍 들어 경례(敬禮)를 했다.

거수경례는 그야말로 손을 들어 하는 경례를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싫다. 그 옛날 교련시간, 군대 시절에 질리도록 많이 들었던 말이다. 경례, 경건히 예의를 갖춘다는 뜻. 예(禮)는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마도 <논어>와도 긴밀히 연결되는 말일 것이다. 그런 뿌리 깊은 말임에도 거수경례라는 낱말은 적어도 나에게는 퍽 많이도 오염된 네 글자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지나 눈썹에 손가락을 갖다대었다. 짙은 눈썹의 밑둥이 흔들렸던가. 눈썹의 뿌리가 우지끈 꿈틀했던가. 비록 내가 나를 볼 수는 없지만 석양에 흠뻑 젖은 나의 남루한 존재가 확실히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의 일부를 만져보았다. 그러자 붐비는 이 거리에서 내가 새삼 뚜렷하게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뒤늦은 이립(而立)! 그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말을 만들어 중얼거렸다. 인왕이시여, 나의 눈썹경례를 받으오소서!

몇 발짝 떨어져 교통경찰이 서 있었다. 눈썹경례를 마치고 얼른 사진을 찍었다. 이윽고 파란불이 들어오고 차들이 으르렁,으르렁,부르렁 대기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거리를 횡단하기 시작했다. 문득 옆을 보다가 아차, 싶었다. 한 발짝 내가 빨랐다. 사진을 조금만 더 늦게 찍었더라면 제법 좋은 풍경 하나를 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앞으로 젊은 연인이 손을 꼭 붙들고 지나가고, 후줄그레한 신사가 뒤따르고, 여학생 둘이 지저귀며 지나가고, 빨간 반바지 차림의 아가씨가 종종종 갔다. 그리고 띵띵한 한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승복을 입은 두 사람이 걸었다. 한 스님은 돛단배 같은 모자를 머리에 걸었고, 또 한 스님은 파르라니 깍은 머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자세히 보니 비구니 스님이었다.

비구니 스님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촛불정국에서 나도 많이 들었던 어느 팸플릿을 연상케 하는 그것은 빨간색에 흰 글씨가 도드라지는 내용이었다. 짐작이 갔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조계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그곳에서 집회를 마치고 가는 스님들이었다. 부지런히 앞을 보고 걷는 스님의 손에 들린 굵직한 글씨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횡단보도는 조금은 특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저곳, 이편에서 저편, 이승에서 저승, 몇 발짝 앞의 저곳은 피안의 언덕으로 은유될 수 있는 그런 공간이기도 하다.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는 동안,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 횡단보도를 건너고 뒤돌아보는 동안. 내 존재의 시원에서 출발해서 그 존재의 종말로 헤엄쳐간다는... 그런 생각을 펼치기에 딱 알맞은 곳.

나를 깜짝 놀라게 한 단어는 ‘저승’이었다. 이 횡단보도에서 저승이라니 싶었는데 다시 보니 ‘자승’이었다. 그 옆에 ‘OUT’ 영어 단어가 나란히 있었다. “자승 OUT”. 짐작이 갔다. 뉴스에서 본 바이지만 자세한 곡절은 나로선 알 수 없는 사항이었다. 발 아래로 축 처졌던 시선을 다시 멀리 던지기로 했다. 오늘 만든 말인 눈썹경례를 다시 한번 했다. 역시나, 팽팽한 시선 끝의 인왕산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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