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논어이야기 — 고제중학교 앨범을 보면서
등록일:2017-09-28, 조회수:190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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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초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행사이다. 늘 그리운 고향이지만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선뜻 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연례행사가 있어 그래도 잊을 만하면 고향을 한 번은 찾는 기회가 된다. 학교를 다녀도 결석을 하고 약속을 해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는 법인데 그간 벌초는 마흔 이후부터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다. (벌초가 연례행사로 자리 잡은 지가 실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전에는 시골에 계신 분들이 집안을 대표해서 하는 게 대부분의 실정이었다.)

지난주 고향에 가서 벌초를 마치고 모두들 각자의 방향으로 출발을 앞두고 큰집에 모였다. 전체 집안회의를 하는 자리였다. 회비도 내고 결산도 하고, 지난 일 년 간의 경비 내역도 장손이 보고를 했다. 나는 우리집의 막내라서 한구석에 자리잡고 조금은 느슨한 기분으로 귀를 세우고 있었다.

조금의 무료도 달랠 겸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가 작은방으로 슬쩍 들어왔다. 대청마루는 그 자체로 음향시설이 좋아서 작은 소리도 내 귀를 그냥 통과하는 법은 없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서 어느 귀 밝은 이는 스튜디오가 아닌 한옥의 대청마루에서 판소리를 공연을 해서 이를 녹음하기도 한다. 빈약한 서가에서 등이 시커면 책을 뽑고 보니 큰집 조카의 중학교 앨범이었다. 1983년도 고제중학교 앨범이었다.

내 고향은 경남 거창군 주상면 내오리이다. 거창읍에서 북으로 가다가 김천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무주쪽으로 가다 보면 있다. 주상면과 인접한, 그러니깐 덕유산 자락으로 더 깊은 곳에 있는 곳이 고제면이다. 주상면에는 중학교가 없어 우리 동네에서는 고제중학교로 모두 진학했다. 일부는 거창읍의 대성중학교, 거창중학교로 가기도 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이런 기회를 모두 날려야 했다. 그땐 부산으로 전학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지금은 고향의 학교 졸업생이 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우연히 빼든 고제중학교 앨범. 겉은 까맸지만 속은 대한민국 그 어떤 졸업앨범과 똑같은 체제와 편집순서를 따르고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잘 생기고 못생긴 건 학교 앨범 보면 다 안다고 했다. 이리저리 페이지를 넘기는데 참으로 송아지처럼 순한 눈망울의 고제면과 주상면 산(産) 아이들 얼굴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내 시선이 멈춘 곳은 3학년 1반 교실의 풍경이었다. 운동장에서 책걸상을 포개놓고 층층이 서서 찍은 단체 사진.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한 반의 학생수가 무려 44명. 그리고 급훈은 <확실히 한다>였다. 담인 선생님의 얼굴이 크게 박혔고, 재미있는 건 단체사진에서 선생님도 옆 반 아이한테 빌린 듯 중학교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교실에서의 수업광경 사진을 나는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듯 오래 바라보았다. 그곳에 적혀 있기를!

學而時習知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松下問童子 言師採藥去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숨막힐 듯 44명이 밀착한 교실에서 칠판을 바라보며 시간을 내어서 공부하는 고제중학교 아이들. 까까머리 뒤통수에 까만 교복을 입은 아이들에게 던져진 논어 첫 구절과 당나라 시인인 가도(賈島/779~843 )의 한시!

논어는 동양사회의 한 규범을 만든 텍스트이고 공자 이후의 모든 저작은 이를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이 벽지의 고제중학교 찰판에 쓰인 논어를 보자니 과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실감이 강하게 드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2.
틈틈이 논어를 필사하였다. 언젠가 이 코너에서 논어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올리고 난 이후부터이다.

해남의 천일식당에서 <行有餘力 則而學文>을 보고, 봉화의 송석헌을 방문하고 난 이후의 이야기를 버무려 쓴 글이다. 그때 나름의 각오로 이렇게 글을 마무리 한 바가 있었다. <논어를 읽어야겠다가 아니라 논어로 살아야겠다!>

논어로 산다는 건 내가 상투 틀고 갓 쓰고 유교식의 선비로 산다는 건 물론 아닐 테다. 그건 살아가는 동안 모종의 선택을 해야 할 때, 내 행동의 근거를 논어의 가르침으로 삼겠다는 뜻이겠다. 이런 국면에서 공자과 그의 제자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까 물어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논어로 산다는 생활 속에서 논어의 편린을 찾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총중에 벌초갔다가 조카의 앨범 속에서, 그것도 한 교실의 칠판에서 저런 구절의 논어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예전이라면 쉬이 넘어갔을 터인데 최근 내 심정의 일단이 논어에 깊숙이 꽂혔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논어는 그냥 번역된 논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자의 논어가 아니라, 주자의 논어가 아니라, 정약용의 논어가 아니라, 모모한 인사들에 의해 번역된 책, 논어가 아니라 <나의 논어!>를 말하는 것이었다. 내처 말한다면 언젠가는 <나의 논어>라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한 권의 책을 가져야겠다는 은밀한 욕망이기도 했다.



3.
이러한 사정에서 일단 논어의 틀을 머릿속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필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껏 단편적으로 조금씩 훑어보기만 하다가 제대로 끝까지 읽은 적은 없기에 더욱 절실한 작업이기도 했다. 눈으로 읽기도 하지만 손으로 쓰면 한자의 특성으로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 깊이 박히기도 할 것 같아서였다. 이제 논어의 장 이름을 외면 이제껏 없던 동네가 스무 개 내 머릿속에 건설되는 기분이 든다.

학이, 위정, 팔일, 이인, 공야장, 옹야, 술이, 태백, 자한, 향당,
선진, 안연, 자로, 헌문, 위령공, 계씨, 술이, 양화, 미자, 자장, 요왈.

어제 논어 20장의 마지막을 덮는데 가벼운 흥분이 일어났다, 무람하게도 지금의 내 나이와 연결시켜 <天命>이라는 단어도 몇 번 써 보기도 했다. 그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 예를 모르면 남 앞에 설 수가 없다.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판단할 방법이 없다.”


다시, 군자가 나온다. 군자는 논어의 첫 구절로 연결된다. 다시 고제중학교의 칠판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나는 다시 붓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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