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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불로동 무덤에서 불로막걸리를 마셨다
등록일:2019-04-03, 조회수:734
이굴기의 1분 영상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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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큰 생선이 아니라 큰 언덕이라는 뜻의 대구(大邱). 구(邱)는 일반적으로 언덕을 뜻하기도 하지만 구릉, 무덤, 분묘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 대구는 큰 무덤을 뜻하기도 하는 말이겠다. 그 특별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불로동은 짐작하는 대로 不老洞으로 표기한다. 말은 그렇게 불로라 해놓았지만 역설적으로 어마어마한 무덤군이 있다. 

불로면 당연히 불사일 텐데, 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그럴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천하를 쥐락펴락 하든 진시황도 백골이 진토된 지 오래다. 진시황이 불사했더라면 우린들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을까. 아무튼, 옛날 그이들의 불로가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도 없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겠다. 안내판에 따르면 “이 무덤들은 대개 5세기 전후경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며,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 지배세력의 집단무덤으로 추정된다.” 

수십 기의 크고 작은 무덤은 정확한 주인을 모른다. 해서 무덤 앞에 아라비아 숫자로 제00호로 표시하고 있을 뿐이다. 무덤을 무의 덤이라고도 한다지만 몸이 흙과 섞이듯 이름은 숫자에 이리저리 섞이고 말았다. 그게 무덤 바깥에서 임시로 지내는 이에게 문제가 될지 모르지만 무덤 안의 주인에게는 무슨 문제이겠는가. 이름으로도 가둘 수 없는 존재들이 되고 흔연히 말았다.

얼마나 양지바른 곳이었기에 이리도 많은 무덤을 모으게 했을까. 사방에서 아파트, 공장, 도로 등등의 인공물이 위협하며 옥죄어 오지만 튼튼하게 자기 자리를 지킨다. 그 당시에야 울창한 숲들에 둘러싸였을 테지만 이제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초라할 뿐이다. 하지만 하늘과 바로 내통하는 무덤의 정기는 살아 있어 무덤 주위에는 신기하고 다양한 꽃들이 피고지기를 되풀이 한다. 해서 야생화에 관심이 있는 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무덤 곁을 지나치기라도 할 때 이제 나도 무덤 근처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일어나기도 한다. 아무리 불로동에 드나든다 한들, 탱자나무 가시로 막는다 한들, 운동을 하며 알통을 키우고 건강식을 먹는다 한들, 불로불사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호주머니 속의 금쪽같은 시간이 점점 쫄아들고 있다.

무덤은 무덤. 언제나 다정하고, 봉긋하고, 포근한 곳. 언제고 살아 있는 자라면 모두 가야할 곳. 지난 일요일 오후 2시, 나는 불로동 무덤 앞에 있었다. 나로서는 2년 만의 두번째 방문이었으니 나는 또 정확히 2년만큼 늙은 몸이었다. 점점 졸아드는 시간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옛날로 치면 상노인에 해당하는 회갑이 올해다.







불로동 공원 입구의 용성손칼국수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2년 전에도 내 끼니를 해결해 준 고마운 칼국수집이다. 어머니 대신 큰아들이 주방을 지키고 있다. “정구지 전은 어머이가 결혼식장에 가고 없어 안됩니더......” 아쉬웠지만 깎두기로 안주 삼아 막걸리로 간단한 낮술을 했다. 마침 불로막걸리가 있다. 탈렌트 안재모씨가 모델이 되어 선전하는 막걸리다. 

잘 먹는 재주밖에 없는 자로서 이 불로동에서 그나마 터득한 게 있다. 불로동 무덤군에 갈 때는 조금 불콰한 기분으로 가는 게 좋다. 오늘 불로동에서 불로막걸리를 마시고 불로동고분군을 거니는 기분은 딱 흡족하다. 무덤 사이로 난 길 옆에서 조개나물, 개쑥, 호제비꽃, 민들레, 애기자운을 보았다. 그리고도 아직 남은 막걸리 기운.

살아 있을 때 살아야 하는 것처럼, 불로동에서 불로막걸리를 마신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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