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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국가부도경제학>을 펴낸 이희재 작가 인터뷰




Q∥ 2017년 『번역전쟁』을 펴낸 이후 3년만에 『국가부도경제학』이라는 신작을 펴내고 독자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간 영국에서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을 들려주십시오.

A∥먼저 저는 처음부터 번역자로서 글과 인연을 맺었고 지금도 작가가 아니라 번역자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저 나라 말을 이 나라 말로 옮기는 번역자였다면 지금은 우리네 삶(현실)을 잘못 담아낸 말을 바로잡는 일도 넓은 뜻에서 번역이라고 생각해서요. 어떻게 보면 번역자가 아니라 교정자인지도 모르죠. 


『번역전쟁』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다수를 위한 정책을 펴려는 정치인은 제아무리 광고주를 섬기는 좌우 불문 범상업 언론이 ‘포퓰리스트’로 매도해도 ‘서민주의자’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번역전쟁』에서 저는 ‘포퓰리즘’, ‘극우’, ‘진보’, ‘홀로코스트’, ‘음모론’, ‘중립’처럼 우리가 자주 쓰고 많은 경우 우리가 자기 주장의 최종 근거로 삼기도 하는 말들의 기반이 얼마나 엉성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말들은 현실을 겨누는 척하지만 실은 현실을 오조준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떤 말이 현실을 오조준하고 주류 언론이 그 말을 띄워줄 때는 반드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습니다. 금권 집단이죠. 오조준된 말 뒤로 숨을 수 있으니까요.


가령 지금 미국에서는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저항 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미국 주류 언론에서도 크게 띄워줍니다. 왜 그럴까요. 전례 없는 빈부 격차에서 초래되는 갈등을 인종 갈등으로 물타기하려는 겁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번지면서 경제가 흔들리자 미국 정부는 국민에게 찔끔 지원금을 줬지만 금융 투기꾼들의 어마어마한 부실 채권도 살려줬습니다. 국민에게 주는 지원금이 곧 끊기면 다수 서민의 집은 2008년 금융 위기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금융 투기꾼들에게 차압당할 겁니다. 인종을 넘어선 다수 서민의 분노가 금권 세력에게 집중되지 못하도록 인종 카드를 써먹는 겁니다. 


『번역전쟁』을 쓴 뒤로는 주로 돈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세상을 정확히 알려면 금권 집단이 말을 어떻게 주무르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면 돈을 어떻게 주무르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과 미국에서 가르치고 한국의 절대 다수 경제학자와 관료가 신봉하는 영미경제학은 어떻게 해서든 국가를 무책임한 권력으로 낙인찍어 나라를 사유화하여 결국 국가부도를 유도하는 경제학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국가부도경제학』은 『영미주류경제학』의 다른 이름입니다.  



Q∥ 『국가부도경제학』을 쓰게 된 계기가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고 나서라고 했습니다. 영화 속 국가부도의 주체는 한국이었는데, 그렇다면 책 속 국가부도의 주체도 우리 한국을 가리키는 건지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영미금융 침략전쟁의 기원’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경제와 역사 분야가 교차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A∥『국가부도경제학』 서문에서도 썼지만 <국가부도의 날>의 주어는 한국이지만 수동태 문장입니다. ‘한국이 국가부도를 당한 날’이란 뜻입니다. 수동태 문장의 주어는 목적어입니다. 진짜 주어는 뒤에 있죠. 누가 한국의 국가부도를 일으켰을까.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진짜 주어를 명시하지 않지만 『국가부도경제학』은 주어가 미국임을 적시합니다.


그런데 『국가부도경제학』은 미국도 실은 목적어임을 전합니다. 미국도 국가부도를 당했다는 뜻입니다. 언제? 민간은행들이 연방준비은행이라는 사이비 중앙은행을 만들어 통화주권을 장악한 1913년에요. 미국은 지금 국가 부채가 24조 달러에 이릅니다. 미국 경제 규모와 맞먹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국가부도를 당했다고 『국가부도경제학』이 말하는 건 미국의 국가부채가 단순히 천문학적 규모라서만은 아닙니다. 국가가 지는 빚이 다수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수 자산가 위주로 쓰여서 그렇습니다. 


주류 역사학에서는 미국이 1776년에 독립했다고 말하지만 『국가부도경제학』은 펜실베이니아 식민지가 토지은행을 만들어 자체 발행한 돈으로 세금을 안 걷고도 풍요를 누리기 시작한 1723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고 말합니다. 식민지 주민들이 본국에 기대지 않고 번영을 구가하자 영국은 식민지의 통화주권을 박탈하여 파운드화만 돈으로 쓰도록 강요했고 식민지 경제는 단숨에 추락했습니다. 여기에 반발하여 일어난 것이 독립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치르느라 식민지 자치체는 영국계 민간은행들에게 빚을 져야 했고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어도 공동체의 공익이 아니라 자산가의 사익을 추구하는 사이비 중앙은행을 받아들여 경제적으로는 지난날의 식민지 시절처럼 예속되어야 했습니다. 미국은 한때 나라빚을 다 갚고 진정한 독립을 이루는가 싶었지만 1913년 결국 통화주권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국가부도에도 진짜 주어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이지요. 그런데 영국도 1694년 민간 사이비 중앙은행 잉글랜드은행에게 통화주권을 잃으면서 국가부도를 맞이했습니다. 맥락은 비슷합니다. 


『국가부도경제학』은 한국, 미국, 영국은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이며 진짜 주어는 300년 전 영국을 삼켰다가 100년 전 미국을 삼켰다가 30년 전 한국을 삼킨 금권 집단이라고 말합니다. 『국가부도경제학』의 시제는 현재완료진행형입니다. 경제학을 깊이 공부했다는 사람들이 모두 금권 집단이 용인하는 경제 정책만을 신봉하니까요.  



Q∥ 저자 약력에 “20여 년 동안 말과 말을 잇는 번역가로 활동하다가 말을 지배하는 돈의 힘에 눈뜬 뒤로 말과 앎을 잇는 저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대목이 특히 눈에 띕니다. ‘말을 지배하는 돈의 힘’을 처음 목격하고 주시하게 된 시기는 언제쯤부터인지요? 

A∥미국도 그렇고 영국도 그렇고 나라빚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면서 긴축을 밀어붙이면서도 왜 크고 작은 전쟁을 계속 벌이는 걸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을 벌이면 나라빚이 뻔히 더 늘어날 텐데 왜 저렇게 불리한 일을 저지르는 걸까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금권 집단은 나라가 전쟁을 벌일수록 떼돈을 벌더군요.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정부는 국채를 발행합니다. 국채를 누가 사느냐? 금권 집단이 삽니다. 국채처럼 안전한 자산이 없지요. 나라빚이 늘어나면 정부는 나라 재산을 팔아야 합니다. 전기, 철도, 수도, 농지, 도로, 항구, 공항 … 다 팔아넘겨야 합니다. 누가 사느냐? 금권 집단이 삽니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들의 힘을 누가 위협하는지에 금권 집단처럼 예민한 집단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론을 장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금권 집단은 적자가 난다고 신문 방송을 팔아치우지 않습니다. 평소에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세력을 언론을 통해 국민 다수에게 악마로 각인시키는 게 얼마나 남는 장사인데요. 


1차대전은 깡패 독일이 일으킨 게 아니라 독일이 금융을 제어하면서 산업을 일으켜 무섭게 따라오니까 전쟁을 일으키기 몇 년 전부터 독일을 악마로 집요하게 그려댄 영국의 금권 집단이 일으킨 전쟁이었습니다. 서방 언론이 지금 중국과 러시아를 악마로 집요하게 그려대는 데도 비슷한 이유가 있습니다. 악마에 가까운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파괴와 전쟁으로 돈을 버는 세력이 중심을 꿰어찬 나라이지 건설과 생산으로 돈을 벌려는 나라가 아닙니다. 



Q∥ 영국에 정착해 20년이라는 시간을 지내왔습니다. 저자가 바라본 영국의 진짜 얼굴은 어떠했는지요? 이 책은 물론 『번역전쟁』에는 금벌, 금권세력이라는 단어가 핵심어로 정말 자주 등장합니다. 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그들의 실체는 과연 무엇입니까? 

A∥영국은 신사의 나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점잖은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영국이라는 나라를 움직이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영국을 움직이는 것은 런던이고 런던을 움직이는 것은 시티(오브런던)라는 가로 일 마일 세로 일 마일밖에 안 되는 금융구역입니다. 영국은 오직 시티 민간은행들을 소유한 금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나라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은행이 뭐냐고 물으면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도 천 명 중 구백구십구 명은 사람들이 아껴서 예금한 돈을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해주고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의 차익으로 먹고 사는 곳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은행이 빌려주는 돈 중에는 그런 코 묻은 돈도 있죠. 하지만 은행이 빌려주는 돈은 대부분 허공에서 만들어내는 돈입니다. 옛날에는 금이라는 담보의 범위 안에서 빌려주는 척이라도 했지만 금본위제가 무너진 지금은 그마저도 없죠.


금벌은 자기들이 주무르는 돈의 기반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잘 압니다. 그래서 그 허무맹랑한 기반을 드러내거나 위협하는 체제가 어디인지를 알아내려고 이십사 시간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그리고 기어이 그런 체제가 보인다 싶으면 전쟁이나 경제 제재로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그 점을 짚어내는 사람들을 자기들이 소유한 언론을 통해 음모론자로 몰죠. 음모론자라는 말 뒤로 음모자가 숨는 구조가 이렇게 지속됩니다. 그리고 유학이라도 좀 다녀오고 뉴욕타임스, 가디언, 르몽드, 지차이트 같은 외국 신문을 원어로 읽는다는 사람들은 ‘음모론’으로 규정된 대상은 무조건 불신합니다. 스탈린, 히틀러 같은 단어와 마주치면 그들은 사고가 정지됩니다. 체코, 폴란드로 쳐들어간 전쟁광 히틀러의 이미지만 있지 영국과 미국을 믿고 소수민 독일인을 잔인하게 도륙하던 체코, 폴란드의 만행 앞에서 치를 떨던 히틀러의 모습은 서양 주류 역사에 안 나오니까 없었던 것으로 치부됩니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전쟁억지력이 없었다면 영국과 미국의 금벌은 진작에 3차대전을 일으켰을 겁니다. 그리고 영미 언론의 중국 러시아 악마화 작업에 세뇌된 사람들은 1차대전 2차대전에 이어 또 한 번의 정의로운 전쟁에 박수를 보낼 겁니다. 미국 언론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심각성을 중국 정부가 1월 중순에 알고서도 1주일쯤 숨기는 바람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면서 공산 정권은 정보 은폐에 능하다는 고정관념에 기대어 중국 때리기에 열중합니다. 하지만 미국 정보 당국은 중국 우한에서 심각한 바이러스가 번지고 있다는 내부 보고를 이미 전해 11월 말에 했다는 보도가 미국 ABC방송에서 스치듯이 나왔습니다. 중국 정부도 모르는 우한 바이러스 감염을 어떻게 미국 정보부는 두 달 가까이 전에 알았을까요. 그리고 왜 알면서도 중국 정부에 알리지 않았던 걸까요. 



Q∥ 이 책에서는 ‘다수의 이익을 지키는 베네수엘라’ 사례의 긍정적인 면모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 언론에서 인플레이션 및 석유생산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부분들만 집중조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들 사이의 차이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고 좀더 균형있게 바라보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A∥가장 좋은 방법은 신문 방송을 안 보는 겁니다. 영국에서 공영방송 BBC를 보려면 한 달에 이 만원이 넘는 수신료를 내야 합니다. 저는 칠팔 년 전부터 수신료를 안 내고 BBC를 안 봅니다. 시리아전쟁을 왜곡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있지도 않았던 생화학전을 날조하면서 시리아 정부에게 뒤집어씌우는 BBC를 보면서 이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뒤로는 굵직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여기저기 뒤지면서 배경을 파악하는 게 좀 고달프긴 했지만 덕분에 제 나름대로는 세상을 더 넓고 깊고 바르게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전쟁』도 BBC의 눈에서 벗어난 덕분에 쓰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요.


심청전을 다룬 최인훈의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에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을 압송하던 포졸들에게 피난길에 있던 백성이 장군에게 드리라며 귀한 음식을 전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만약 임진왜란 당시에 지금의 한국 언론 같은 언론이 여론을 주도했다면 피난을 가던 백성들은 너 때문에 우리가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며 이순신 장군에게 침을 뱉었을 겁니다. 한국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좌우를 막론하고 주류 언론의 존재 이유는 금벌의 이익을 지켜주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인종 갈등을 부추기고 세대 갈등을 부추기고 남녀 갈등을 부추기고 민족 갈등을 부추깁니다. 그런 갈등은 금벌의 이익을 위협하지 않거든요. 신문 방송을 안 보면 세상을 덜 알지는 몰라도 더 속지는 않게 됩니다. 



Q∥ 『국가부도경제학』은 ‘정조준과 오조준’ 시리즈의 첫책입니다. 이 시리즈는 경제 분야를 시작으로 정치, 언론, 학문, 종교까지 사회의 다양한 영역을 우리가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각성하게 하는 내용들일 것 같은데요. 각 주제를 어떻게 써나갈지 주요 뼈대를 들려주신다면요? 

A∥핵심은 돈이 단지 경제뿐 아니라 정치, 언론, 학문, 종교까지 지배해왔고 지금도 그렇다는 내용입니다. 『왕정과 공화정』(정치), 『감옥 밖의 감옥』(언론), 『환상의 자유』(학문), 『구약: 총수탈체제』(종교)라는 제목으로 앞으로 네 권을 더 쓰려고 합니다. 


금벌은 왕정과 공화정을 대립시키려고 하지만 그건 금벌의 이익에 복무하는 역사관에서만 그렇습니다.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좋은 왕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다수 백성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지금은 왕정은 거의 사라지고 공화정이 주류지만 무늬만 공화정이지 사실은 소수 자산가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지향하는 나라가 대부분이라서 귀족정인 셈입니다. 옛날 귀족은 자비를 들여 전쟁에 나가 싸우기라도 했지만 지금 금벌 귀족은 전쟁을 벌여 뒤에서 돈을 벌지요. 


『감옥 밖의 감옥』은 우리는 감옥에 갇힌 죄수를 가엾게 여기지만 우리도 언론을 지배하는 금벌이 유통을 허용하는 지식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커다란 감옥에서 살아가는 셈이라는 내용입니다. 


『환상의 자유』는 그런 감옥은 특히 현대 경제학이 심하지만 학문, 특히 인문사회과학의 경우에도 엄존한다는 내용입니다. 경제사를 전공한 학자는 미국 대학에서 더이상 임용되지 않습니다. 경제사를 많이 가르치면 지금의 주류 경제학이 얼마나 사상누각인지가 드러나거든요. 그래서 경제학이 마치 자연과학처럼 엄밀한 과학인 것처럼 하나도 안 들어맞는 수학 공식을 남발하면서 장난을 치지요. 


『구약: 총수탈체제』는 유대교는 종교가 아니라 작게는 유대 민족 크게는 인류 전체를 지배하는 데 주안점을 둔 수탈체제라는 내용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을 지배하는 주류 집단은 유대인이고 유대인 엘리트 집단을 지배하는 것은 유대교이므로 유대교가 어떤 종교인지를 사람들이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Q∥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A∥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돈은 딸기가 아니라 딸기 바구니일 뿐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돈은 주역이 아니라 조역이라야 합니다. 딸기 농사가 잘 돼서 딸기가 넘쳐나고 딸기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도 넘쳐나는데 바구니 제작사의 횡포로 바구니 조달이 안 되는 바람에 딸기 유통이 막혀 딸기가 썩어나간다면 말이 안 되겠죠. 민간은행에게 돈줄을 맡기는 영미금융 체제는 바구니 회사가 딸기 생산과 소비를 좌지우지하도록 허용하는 셈입니다. 


중세 영국 왕은 나무가지를 돈으로 찍으면서도 영국 돈의 가치를 200년이 넘도록 98퍼센트나 지켰습니다. 사이비 민간 중앙은행 잉글랜드은행이 만들어진 뒤 파운드는 가치를 200년 동안 98퍼센트 잃었습니다. 누가 공동체를 위해 더 책임 있게 돈을 관리했나요. 왕으로 상징되는 공권력인가요 민간 투자자로 미화되는 투기꾼인가요. 1차대전 직후 독일에서 일어난 초인플레는 독일 중앙은행이 정부에 떠밀려 돈을 마구 찍어내는 바람에 일어난 게 아니라 전승국 영국과 미국의 압력으로 독립한 독일 중앙은행이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면서 투기꾼을 위한 통화 정책을 추구하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생산력이 낮은 수준일 때는 과도한 통화 공급이 문제를 낳을 수 있지만 생산력이 높은 수준일 때는 부족한 통화 공급이 문제를 낳습니다. 일하고 싶은 사람이 많고 사먹고 싶은 사람이 많을 때는 국가가 나서서 돈을 공급해야 합니다. 국가가 스스로 찍은 돈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 돈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힘은 주권자에게 있어야지 투기꾼에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권자는 옛날에는 왕이었고 지금은 국민이고 국민이 투표로 선출하는 지도자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투기꾼들에게 빼앗긴 통화주권을 되찾는 것입니다. 


세금에 기대는 기본소득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기본소득당은 오조준입니다. 정조준은 통화주권당입니다. 청년당도 오조준입니다. 정조준은 아기당입니다. 인생은 이 한 몸 즐기다가 가는 것이라며 아기를 안 낳고 세금을 많이 내는 고소득 욜로족 부부는 세금을 거의 안 내고 혼자서 아기를 키우는 비혼모보다 공동체 입장에서는 훨씬 덜 반가운 존재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갈등과 대립 관계로 보았지만 역시 오조준입니다.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기에 조금만 생각이 있는 자본가들이라면 노동자의 소비력 유지가 기업에도 유리하다는 걸 압니다. 자본가와 노동자는 모두 생산이라는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입니다. 돈을 풀었다 줄였다 하면서 그런 생산의 배를 끝없이 위협하는 것은 바로 민간은행이라는 불로소득 집단입니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이 있지만 조금 더 나아가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돈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수혜를 공동체 다수가 누리려면 공기보다 더 소중한 공공재인 돈의 공급권을 투기꾼들로부터 되찾으려는 유권자가 늘어나야 합니다. 『국가부도경제학』을 그런 뜻으로 읽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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