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를 번역한 장석봉 인터뷰


Q제임스 버크의 『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는 국내에서 한동안 절판되어 많은 독자들이 애타게 재출간을 기다려온 책 중 하나로 꼽히곤 합니다. 잘 아는 분들도 있겠지만, 어떤 책일까 궁금해할 독자분들도 있을 텐데요. 간단히 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우주가 바뀌던 날』은 과학사 책입니다. 좀 더 확장한다면 문화사가 되겠지요. 이 책은 역사의 큰 줄기가 바뀌는 순간, 세상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과학을 중심으로 풀어쓰고 있습니다. 저자 제임스 버크는 역사에는 굽이굽이마다 변화의 순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순간을 만들어낸 것은 지식, 더 정확히는 과학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단지 하나의 지식 체계가 또 다른 하나의 지식 체계로 바뀌는 것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절대왕권이 지배하던 사회가 무너지고 다른 모습의 사회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의학의 발전 역시 그랬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죄인 취급을 받던 정신질환자들이 이제는 병에 걸린 ‘사람’으로 대우를 받게 된 것입니다. 다윈의 진화론 역시 그랬습니다.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은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인구에 회자되면서, 각국의 경제정책이나 복지정책에 부정적 혹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자는 이런 변화의 순간들을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섞어가면서 솜씨 있게 요리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지식은 여러 사람에게 공유되어야 하며, 당신에게도 그런 권리가 있으며,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입니다.


Q제임스 버크의 『핀볼 효과』도 번역하셨습니다. 평소 저자의 다른 책들도 즐겨 읽는 편이라고요. 제임스 버크의 책은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A제임스 버크의 책을 읽는 즐거움은 퍼즐 게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버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방대한 역사적 지식(주로 과학과 관련된 지식)들을 이러 저리 꿰어맞춰 거기에 맥락과 의미를 부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습니다. 특히 『핀볼 효과』 같은 책은 독자도 퍼즐 맞추기에 참여해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터랙티브한 종이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이 책보다 앞선 책인 『커넥션』 그리고 이 책들 모두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독자 여러분들도 구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뛰어난 능력이 있습니다.


Q주로 인문/자연과학 책들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번역 작업을 할 때 직역과 의역의 경계 혹은 언어와 문화 관련 문제를 다룰 때 어떤 고민과 기준들을 갖고 있는지요?

A직역과 의역이라……. 정확성과 가독성으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을 이 오래된 문제에 사실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애매한 타협을 했습니다. 번역을 할 때 초고는 용어를 정확하게 옮기는 일과 문법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는 데만 주력합니다. 이렇게 번역하면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지만, 우리말 가독성이 떨어지는 원고가 나옵니다. 때로는 저만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난삽한 문장이 나오기도 하고요. 그런 다음 원고를 다듬습니다. 이때는 해당 원문을 거의 보지 않고, 가독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문장을 손봅니다. 이 두 번째 작업을 얼마나 충실하게 하느냐에 가독성이 높은 번역이 나오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이 나겠지요.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저는 두 번째 작업보다는 첫 번째 작업에 더 비중을 둡니다. 처음 번역 일을 할 때는 저자가 쓴 마침표의 개수와 우리말 번역에 나오는 마침표의 개수까지 똑같아야 한다는 강박증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최선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요.


Q말씀을 들어보니, 번역가에게 국어 실력은 기본이라는 이야기로도 들립니다. 덧붙여 번역가 지망생들에게 국어 실력을 키우기 위한 노하우를 전해주시면 어떨까요?

A말씀 그대로 번역의 질은 해당 언어에 대한 지식만큼이나, 우리말 실력이 중요합니다.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번역과 관련해 우리말 실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제가 추천할 만한 방법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번역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번역문을 원서의 단어 하나하나와 꼼꼼히 대조해가며 읽어보는 것입니다. 해당 언어의 단어나 문장을 그 사람은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살펴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옮겼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좀 더 정확하고 적합한 번역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특히 중요한 일인데, 사전을 참조할 때는 표제어의 1번 뜻만이 아니라 9번 10번 뜻까지도 꼼꼼하게 검토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Q어린이 책과 일반 단행본을 넘나들며 번역 작업을 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독자의 연령대에 주안점을 두어 번역에 임해야 하는 만큼, 그 재미나 어려움이 제각기 다를 듯합니다.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A어린이 책은 일단 번역할 양이 적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들이는 품은 일반 단행본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게다가 일반인 대상 책이라면 고민 없이 쓸 수 있는 평이한 번역어들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더 쉬운 단어로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 또한 만만한 일은 아니지요.


Q출판기획자로도 활동 중인데, 관심을 가지고 주력하는 분야가 있다면요? 덧붙여 책의 미래는 어떠하리라 보시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연표나 사전 등 공구서에 관심이 많습니다. 궁리출판사의 『세계만물 그림사전』 출간에 참여한 것도 그 연장선이고요. 한 나라의 지적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저는 바로 공구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종이책은 적어도 우리 세대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까지는 분명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 이후까지야 제가 점쟁이가 아닌 다음에야 알 수 없는 일이고요. 한 가지만 생각해보면 될 것입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나오자 이제 종이 사용량이 많이 줄어들 거라고 예측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보다 종이 사용량이 더 늘었습니다. 종이책에는 역시 쉽게 포기 못할 미덕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쉽사리 그것을 포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사전류라든지, 가벼운 읽을거리 등등은 주도권이 전자책으로 넘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어학사전들은 이미 종이책이 전자책에 완전히 눌린 상태이고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시중에 나와 있는 전자책 사전들도 기존의 종이책의 포맷을 바꾼 것에 불과하고, 전자책만을 겨냥해서 나온 사전은 아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상당 기간 어떤 사전이 새로 나온다면, 전자책 형태보다는 종이책이 먼저 나올 것입니다.


Q약력에 늘 ‘베어스의 아주 오래된 팬이다’라는 문구를 넣고, 또 이 책의 옮긴이의 말에는 야구 관련 소재를 도입부에 쓸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는데, 어떤 특별한 계기나 에피소드를 들려주신다면요?

A‘베어스의 아주 오래된 팬이다’라는 제 소개는 과장이 아닙니다. 아주라는 부사에 따옴표를 다섯 개쯤 칠 수도 있습니다. 제 전자우편 주소들은 모두 bears16으로 시작합니다. bears가 무얼 뜻하는지는 쉽게 눈치챌 수 있을 터이니 따로 설명드리지 않기로 하고, 16은 제 나이 열여섯 살 때 우리나라에 프로 야구가 시작되었고, 그때부터 베어스 팀(절대 OB나 두산 베어스가 아닙니다)의 팬이었다는 뜻입니다. 여담이지만 제 딸아이는 태어나는 날 바로 베어스 어린이 팬클럽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입되었습니다. 아이가 전자우편을 쓰게 된다면 주소는 아마도 bears0 혹은 bears1이 되겠죠. 남들은 부모의 폭력이나 독재라는 단어들을 동원해 제게 애정 어린 질책을 하기도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부모 잘 만나서 좋은 취미 하나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아참! 아이가 자라서, 물론 그럴리야 없겠지만, 곰이 아니라 사자나 호랑이가 좋다고 하면, 그때는 아이의 뜻을 기꺼이 따를 그 정도 ‘상식’은 있답니다. :-)


Q앞으로 어떤 집필/번역 작업을 해보고 싶은지요?

A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공구서류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마도 그런 책들을 만드는 데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참여할 것입니다. 지금은 과학사 연표와 인용구 사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장래에, 정말 멀지 않은 장래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야구 사전을 한 권 집필할 생각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