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푸집을 만들기 시작하다 – 건축 일기 18


뗏목! 이란 말은 탁월한 안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서 고정 불변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만이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단단한 지반과 그 지반에 얹힌 철근과 콘크리트를 강물에 놓인 흔들리는 뗏목으로 파악하는 것은 남다른 의미였던 것이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이 건물을 완공하기까지, 또 완공해서 유지하고 건사하려면 많은 일들을 겪어야 할 것이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아찔한 현기증이나 멀미는 바닷물 위에서만 경험하는 게 결코 아닌 것이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어디 아무렇게나 뱉는 단순한 수사이겠는가.


기둥으로 발전할 철근만 남기도 그 어지럽던 바닥의 모든 철근은 홀연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고요한 콘크리트만이 드넓은 적막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육중한 기중기가 등장하더니 철근과 목재를 지하로 옮기기 시작했다. 고요와 적막의 지배는 잠깐이었고 다시 뗏목은 출렁출렁 어지러움으로 요동쳤다.


공사장으로 공사장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망치질 소리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거푸집 공사가 시작되면서 드디어 망치질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지하에서 울려나는 그 소리는 이곳이 궁리의 집을 만드는 곳이라는 사실을 천하에 일깨우기라도 하겠다는 듯 돌림노래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잠깐, 생각해본다. 건축이란 집을 짓는 것이다. 그것은 바닥을 만들고, 기둥을 세우고, 기둥을 연결하여 벽을 만들고, 지붕을 덮는 구체적인 행위이다. 바퀴벌레가 바퀴벌레의 집에 살고 또 개미가 개미집에 살듯 우리는 우리들의 집에 산다. 우리가 집에 산다함은 바닥에 들러붙고, 기둥을 타고 오르고, 벽에 걸터앉고, 지붕에 매달린다는 게 아니다. 곤충들에게나 있을 법한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


집이란 그 집 안에서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집이란 건물 자체가 아니라 집이 만드는 공간이 요체이다. 따라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곧 허공과 싸우는 것이다. 허공이 완강하게 가지고 있는 공간에서 지극히 일부를 떼내어 집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거푸집 공사가 시작되었다. 철근을 위로 올리고 넓게 조립된 거푸집을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이 거푸집 사이로 콘크리트를 채워넣으면 그게 곧 지하층의 벽면이 되고 기둥이 된다. 건물의 형태가 서서히 꼴을 갖추어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사방에서 거푸집이 오르면서 드디어 희미하게나마 궁리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날씨가 몹시 쌀쌀했다. 장작으로 화톳불도 피웠다. 싸늘해진 공기가 공사장을 감돌았지만 이곳은 공기는 후끈했다. 지하 바닥으로 처음 내려가 보았다. 육중한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안온한 느낌도 들었다. 이제 서서히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손가락을 꺼내 궁리의 것으로 변하는 허공의 한 자락을 만지작거려 보았다. 촉감이 좋았다.


오래 지하에서 지하를 쳐다보았더니 공간감각을 잠시 잃어버렸다. 지하에 가서도 그냥 바깥의 나대지 풍경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하의 벽이 일층까지 치고 오르자 이제 건물과 바깥은 완전히 구분이 되었다, 그곳은 와부와는 차단된 새로운 공화국이 되었다. 그 둘레에 해자(垓字)처럼 깊은 하공의 둘레가 채워졌다. 물로 채운다면 이곳은 사방과 분리된 완벽한 공화국이 될 것 같았다.


시시각각 공사장은 변했다. 지하에서 1층까지의 공사는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거푸집을 대고 노리쇠 같은 쇠뭉치로 잇고 천장에는 둥근 쇠막대로 지지대를 만들었다. 나중 콘크리트를 들이부을 때 압력이 상당하다. 잘못하면 콘크리트가 터지기도 하고 물이 나오기도 해서 낭패에 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 만사는 불여튼튼. 이웃의 어느 공사장과는 다른 달콤한 망치질 소리가 끊임없이 지하에서 올라왔다.


오늘의 해가 하룻만에 하늘을 가로질러 건너가면 공사장도 마감을 했다. 작업자들이 하나 둘, 작업장을 빠져나가고 한켠의 수도가에서 땀에 절은 몸을 씻는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그 소리마저 자동차 소리와 함께 사라지자 공사장은 돌연한 침묵 속에 빠졌다.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사물들만 남은 것이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한 채 편한 저녁을 준비하고 밤을 기다렸다. 소슬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 기운이란 그냥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하루 종일 고단한 몸을 놀린 많은 분들이 협동한 끝에 이룬 흔적의 결과일 것이다. 그런 흔적을 보면 숙연한 기운이, 엄숙한 기운이,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선물과도 같은 그 묵직한 침묵이 심학산의 땅거미와 함께 찾아오면 문득 세상의 고요가 이곳으로 집중되는 듯 했다.


궁리 사무실에는 작은 조각품이 하나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궁리’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운영하는 마당에 로댕의 저 유명한 작품 하나는 비치해 두고 싶었다. 모조품이라지만 국내에서 구입하려니 가격이 제법 만만찮았다. 어느 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가는 길에 파리에 들렀다. 그리고 로댕미술관에 가서 그 작품을 구입했다. 세금까지 공제받으니 국내에서 사는 가격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제법 무겁긴 했지만 (생각하는 사람인데 안 무겁다면 오히려 이상했겠지!) 낑낑거리고 직접 운반해 온 작품이다.


아마 로댕도 거푸집을 만들어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품을 완성했을 것이다. 지금 궁리의 사옥도 그와 똑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지상에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