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에 생명을 불어넣다 – 건축 일기 34


내부에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아올리는 것과 병행해서 내부는 내부대로 바쁘게 돌아갔다. 이렇게 힘들게 공들여 건물을 그냥 시멘트 덩어리로 방치할 수는 없다면서 정교한 작업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제까지 튼튼한 뼈대를 세웠다면 살을 붙이고 핏줄을 연결해서 건물을 하나의 유기체로 생명을 불어넣은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상 위의 컴퓨터에도 인풋과 아웃풋이 있듯 건물이 건물로서 기능하려면 들어가는 것과 나오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하늘이 제공하는 바람이나 햇빛은 창문이나 벽, 발코니, 데크에 의해 영향을 받기는 하겠지만 별다른 장치가 필요치 않다. 하지만 건물의 신진대사를 위한 필수 요소인 전기, 물은 완벽하게 통제, 관리, 공급되어야 한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핸들, 거속기, 브레이크를 사용해서 각종 도로의 사정에 대비, 적응하고 속도를 자유롭게 조절하면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정확하게 도착하듯.


궁리 건물은 조금 복잡한 구조다. 공중에서 보면 중정(中庭)을 가운데 두고 미음(ㅁ)자형 건물이다. 각각의 면을 보면 층이 조금 다르다. 어쨌든 지하층을 제외한 지상층을 보면, 4개의 큰 공간에 화장실이 4개, 탕비실이 4개, 주방이 1개 등이다. 각각이 조금씩 흩어져 있으니 입관과 배관의 공사가 조금 복잡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내부 마감이 대체로 노출 마감이니 가급적 최소한의 경로를 찾아야 한다. 미관을 고려해서라도 지름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몸이 가슴에 심장이 있고 싱싱한 피를 보내는 동맥과 각종 노폐물을 수거해오는 정맥으로 나뉘듯 건물에 장착하는 배관도 기본적으로 그런 구조를 따라야 한다. 입수관과 배수관이 화장실, 탕비실, 주방으로 긴밀하게 거미줄처럼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ㄱ,ㄴ,ㄷ,ㄹ처럼.


이제껏 주방에서 물 한 컵 마시고 남은 물을 그냥 개수대에 스윽 버리고, 화장실 가서 그냥 단추 한번 스윽 누르고, 세면대에서 손 씻고 나서 꼭지 잠그고, 샤워실에서 비누 거품 칠하고 물줄기에 몸을 실컷 맡긴 뒤 수건으로 몸뚱아리를 닦으며 휘파람이라도 불며 뒷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꼼꼼하고 빈틈없는 배관들의 덕분이란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낫 놓고 기역자를 몰랐던 게 아니라, 화장실에서 기역과 니은을 몰랐던 셈이었다.



이런저런 복잡한 구조를 보면서 또 하나 알게 된 게 있다. 생각해보면 내 손가락의 길이도 키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체의 뼈가 206개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이들은 서로가 전체와의 균형 아래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처럼 내부에 설치되는 관들은 저마다 굵기가 다르고 위치가 달랐다. 관절에 해당하는 이음매와 밸브도 여러 종류였다.


그런 복잡한 설계와 고려를 바탕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라 미리 심사숙고를 해야 하는 절차는 당연했다. 예전에는 콘크리트를 타설하기 전에 관의 위치를 뚫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워낙 장비가 발달해서 구멍 뚫기는 식은 죽 먹기인 셈이라 그리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장치를 해놓았다가 콘크리트가 제대로 먹지 않는 게 오히려 나중에 더 곤란한 지경에 이른다고 한다.


먼지구덩이 속에서 공사현장을 둘러볼 때, 어느 날 문득 복도나 벽에 붉은 스프레이로 난해한 문자나 선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것은 벽에서 흘러나온 누군가의 피처럼 보이기도 했다. 행여 심학산이 화산폭발이라도 해서 이 상태 이대로 매몰되었다가 수십억 년 후, 발굴된다면 남는 건 이런 기호나 표시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때 그 시대의 어느 고고학자는 무슨 해석을 내놓을까, 혹 궁리사옥 화장실터에서 어느 성인의 피 흘린 기적을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떨지는 않을까. 그런 퍽 희한한 상상력도 발휘하게 하는 궁리 신축사옥의 배관공사 현장이었다.


설치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 도면대로라면 3층 기숙사의 주방과 욕실로 가는 배관이 2층 궁리 사무실의 중앙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이제껏 뻥 뚫린 공간, 기둥도 없는 쾌적한 공간을 보다가 마감도 하지 않는 사무실 천장에 배관들이 지나간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노출을 그대로 둘 수는 없고 마감재로 천장을 가려야 할 것 같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노출로 설계한 애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노련한 감독관이 대안을 제시하였다. 지하에서 올라와 각층마다 있는 계단과 화장실에서 꺾어지는 게 아니라 아예 지하층에서 배관을 꺾는 것이었다. 지하의 천장으로 배관이 지나간다고 해서 주차된 자동차들이 항의할 리도 만무했다. 동선을 그렇게 바꾸자 배관도 한결 깔끔해지고 정리가 되었다. 지하에서 3층까지 최적화된 지름길을 현장에서 찾은 셈이었다. 공사를 시작한 이래, 작업모를 쓰고 공사장을 이리저리 쫓아다닌 이래 나로서는 가장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이었다.


공사는 꼼지락꼼지락 진행되었다. 더디 가도 제대로 가는 길이었다. 이제 시간이 흘러 모든 관들이 자리를 잡고, 밸브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스위치가 작동하는 날이 머지않았다. 그러면 간이화장실로 가는 불편도 없고, 수도를 틀면 물이 콸콸 쏟아지고, 형광등이 환히 빛나 방을 밝힐 것이다. 그날이 와서 그런 동작을 할 때 그냥 무심코 아무렇지 않게 해서는 아니 될 것 같았다. 이제껏 그들이 궁리 건물에 들어와 아무렇지 않게 그냥 스르륵 자리잡은 건 아니었다. 또 그걸 내가 목격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궁리 건물에 설치된 시설을 처음 내 두 손으로 가동시킬 때. 기합을 넣을까, 구호를 외칠까, 아니면 무슨 기도라도 할까. 제법 즐거운 공상을 하면서 지하실로 내려갔다. 아직 정리가 덜 된 가운데 (실은 이 지하층에 무슨 공사가 더 벌어져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외부에서 끌어들인 전등이 빛나고 있었다. 그 지하층의 한켠에 있는 기계실에 가보았다.


기계실은 복잡했다. 궁리 건물에서 가장 복잡한 설비가 장치된 곳이다. 인체에 기운을 공급하는 심장이 가슴에 있듯 건물에 동력을 배급하는 기계실은 지하에 있다. 여기에서 뻗어나간 각종 관을 통해 전기가 나가고, 깨끗한 물을 보내고, 오수를 받아서 배출한다. 또한 예비 전동기가 있어 혹 정전이라도 되었을 때를 대비한다. 큰 비라도 내려 물이 찼을 때 배수시설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하의 기계실은 큰 규모는 아니지만 궁리건물이라고는 독립된 시설의 지휘부였다. 몇 번 갔을 땐 그냥 어두컴컴했는데 오늘 가서 보니, 많은 시설이 들어 서 있었다. 증기기관차의 기관실 같은 장치도 있고 물탱크도 있었다. 그리고 또 있었다. 그 복잡한 기계들 아래로 깔려있는 건 아주 육중한 시멘트 시설물. 길게 누워있는 그것은 천장에 달려있는 관(管)이 아니라 관(棺) 같았다. 마치 로마의 지하의 카타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