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경제학>, 영미 금권집단이 퍼뜨리는 잘못된 신화 다섯 가지



국가부도를 유도하는 영미 경제학의 허상

돈은 바구니에 불과하다. 딸기 농사가 잘 돼서 딸기가 넘쳐나고 딸기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도 넘쳐나는데 바구니 만드는 회사의 횡포로 바구니 조달이 안 되는 바람에 딸기 유통이 중단되어 딸기가 썩어나간다면 말이 될까. 민간금융이 돈의 공급을 주도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바구니 회사가 딸기 생산과 소비를 좌지우지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나 같다.


한두 세기 전만 해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부가 통화 공급을 주도했다. 그런데 지금은 초국가 금융 카르텔이 퍼뜨린 국가 불신론에 모두가 세뇌되어 국가가 국민을 위해 써야 할 핵심 주권인 발권력을 ‘독립’ 중앙은행과 민간은행들에게 빼앗기고도 국가주권을 잃었는지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가 급증하는데도 국가는 시장의 눈치만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른다. 그런 나라는 국가가 부도난 나라다. 허공에서 돈을 찍으며 사익을 탐하는 시장이 중심을 꿰차고 돈을 주무르는 경제가 선진 경제라고 가르치는 영미 경제학은 국가부도를 지향하는 경제학이다.


국가부도경제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경제의 구심점에서 국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금권집단을 앉히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하도록 몇 가지 신화를 퍼뜨렸다. 이 책에서 그 신화를 부수려고 한다.



신화 하나. “물가를 관리하는 것이 독립된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한국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앙은행은 물가가 2%를 안 넘어가도록 관리하는 것을 주된 소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국가부도경제학이 작성하는 물가 집계에는 절대 다수 국민의 생활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집값이 빠져 있다. 영세한 편의점주의 수입에서도 편의점에서 일하는 알바생의 수입에서도 절반은 집세로 월세로 빠져나간다.


영세 자영업자의 고혈을 빠는 것은 알바생의 시급이 아니라, 건물주에게 수십억 수백억을 꿔주면서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켜 가게세를 살인적 수준으로 높여가는 민간은행이다. 물가에서 집값이 빠지니 은행이 찍는 돈으로 아무리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도 물가에는 반영이 안 되고 은행은 물가 상승을 걱정 안 하면서 마음껏 돈놀이를 할 수 있다. 국가부도를 막으려는 진짜 중앙은행이라면 목표를 물가 2% 미만 유지에 둘 것이 아니라 실업률 2% 미만 유지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실업률이 2%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 국가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려고 벌이려는 공공사업에 아낌없이 자금을 뒷받침해야 한다.



신화 둘. “경기는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로 관리된다.”


국가부도경제학에서는 금리가 내리면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쉽게 빌릴 수 있어 투자가 늘어나고 경기가 살아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기업의 투자를 늘리는 것은 금리가 아니라 국민 다수의 소비력이다. 국민의 소비력이 높아서 물건이 잘 팔리면 기업은 아무리 금리가 높아도 투자를 늘린다. 국민의 소비력이 낮을 때 중앙은행이 낮추는 금리는 부동산 투기만 더욱 살려 오히려 국민의 주거비 부담을 높이면서 국민의 소비력을 더욱 떨어뜨린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는 것을 흔히 돈을 푼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풀려난 돈이 가는 곳은 국민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투기꾼의 지갑이다. 일본이 금리를 제로로 낮춰도 인플레는커녕 디플레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는 풀린 돈이 국민의 호주머니로 못 들어가서 그렇다.



신화 셋. “국가는 거둬들인 세금의 범위 안에서 돈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다. 가정살림과 나라살림은 다르다. 가정은 돈을 마음대로 찍을 수 없기에 빚을 늘리면 곤란하지만 국가는 금권집단에게 발권력을 잃은 몇백 년을 빼고는 돈을 생산에 부응해서 국민 경제에 공급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라가 가령 핵융합, 풍력발전, 수소충전소, 국방과학 등 공동체의 건강한 재부 생산 토대를 마련하려고 쓰는 돈에다 이자를 물려선 안 된다. 국가가 이자를 물어야 하는 국채는 허공에서 찍어낸 돈을 은행에서 싸게 빌린 투기꾼에게 돈벌이 기회만 준다. 투기꾼의 돈벌이 기회보장이 우선인 영미 ‘선진’ 금융에서는 중앙은행이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정부로부터 직접 매입하는 것이 불법이지만 다행히 한국은 아직 그렇지 않다.


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국가 소유이므로 정부의 국채를 직접 매입한 한국은행에 국가가 지급하는 이자는 한국은행의 인건비를 빼고 고스란히 국고로 환수된다. 국채 발행에 따르는 이자 부담이 줄어드니 국민의 소비력은 늘어난다. 영국과 미국 같은 ‘선진’ 금용체제에서는 국가가 중앙은행에 바로 국채를 못 팔고 반드시 민간 채권시장에서 팔아야 하므로, 국채 발행에 따르는 이자 부담은 고스란이 납세자에게 돌아와 국민 소비력이 감소하고 국민 경제가 위축된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국채를 국가로부터 바로 사주면 국가가 이자 부담 없이 집행하는 사업으로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 국민 소비력이 증대되고 국민 경제가 확대된다.


자동화로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기본소득을 부르짖기에 앞서 국가의 통화주권을 되찾아야 한다. 세금에 기대는 기본소득은 지속가능성이 약하다. 세금에 기대는 기본소득은 납세자의 반감을 부르기 십상이다. 기본소득보다 더 현실적이고 중요한 것은 국가가 교통, 주택, 에너지, 수도 등 공동체의 생산 기반 영역에 이자 부담 없이 과감히 투자해서 일자리를 늘리고 공동체 성원의 생활비 부담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통화주권을 되찾은 국가는 세금을 안 걷어도 얼마든지 나라살림을 알차게 꾸려갈 수 있음을 통화주권을 잃기 전 식민지 미국의 역사가 실증한다.



신화 넷. “기축통화가 아니면 국가가 통화 공급을 함부로 늘려선 안 된다.”


그렇지 않다. 발달한 공업력이 있는 한, 폭발적 생산 잠재력이 있는 한, 딸기를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고 생산된 딸기를 먹고 싶어하는 소비자가 넘쳐나는 한, 국가는 돈이라는 딸기 바구니가 부족하지 않도록 일자리를 열심히 만들어내야 한다. 오히려 기축통화 지위에 기대다가 공업력을 잃어가는 영국, 미국, 일본의 현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지난날 한국이 원화라는 자국 통화가 있었음에도 외채에 의존해야 했던 것은 공업력이 없어서였다. 공업력이 없으니 원료뿐 아니라 기술, 생산 설비까지 모두 외화로 치러야 해서였다.


지금은 안 그렇다. 발달한 공업력이 있는 나라는 기축통화가 없더라도 자신이 만든 공산품을 외국에 넘기고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국에 공업력이 있으니 러시아 같은 자원 부국과 척을 지지 않는 한 설령 기축통화국이 한국 원화를 공격한다 해도 한국 경제는 안 무너진다. 기축통화의 신화를 퍼뜨리는 이들은 기축통화국이 무책임하게 찍어내는 돈으로 이루어지는 부동산 투기와 주식 투기로 돈을 버는 것만을 선진 경제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국가부도경제학에 세뇌된 경제 전문가들이 아니라 통계 전문가들 손에 집값이 반영된 물가 기록을 토대로 생산과 수요 잠재력에 부응해서 국민 경제에 통화를 공급하는 책임을 맡기면, 중세 영국 왕이 나무가지돈의 가치를 지켰던 것처럼 원화의 가치를 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 생산력이 낮았던 중세 영국 농업사회에서도 가능했는데 생산력이 더없이 높은 현대 한국 공업사회에서랴.



신화 다섯. “주가는 경제실력의 지표다.”


공동체 안에 있는 돈이 생산과 연동되어 있을 때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생산과 무관한 투기성 자금이 끌어올리는 주가는 경제를 망가뜨린다. 미국이 좋은 예다. 좋은 일자리가 급감해서 가처분 소득이 감소해도 미국 주가는 상승일로다. 미국 주가 상승의 비결은 저금리 덕에 은행에서 싸게 빌린 돈으로 너도 나도 주식을 사들인 데 있다.


개인투자자뿐 아니라 기업도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자기 회사 주가를 끌어올린다. 주가가 높고 주주에게 배당금을 많이 주어야 유능한 경영인으로 평가받아서 그렇다. 결국 경영인은 주가가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주식을 팔아 튀고 기업은 빚더미에 올라 투자은행에 구조조정당한다.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이유는 주가를 기업 실력의 척도로 삼는 투기 문화 탓에 있다.


경제실력의 척도는 높은 주가가 아니라 낮은 실업률과 높은 정규직 비율이다. 국가가 직접 조달한 자금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면 국민의 소비력이 늘어 기업실적이 좋아지고 기업과 취업자가 내는 세금도 늘어난다. 주가도 당연히 오른다. 이렇게 생산소비와 연동된 주가 상승만이 경제실력의 척도다. 이렇게 과감한 지출로 마중물 노릇을 하면서 움츠러든 소비를 늘려 국민과 기업의 지갑을 두둑이 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반면 국가가 채권시장에 국채를 팔아 자금을 조성하면 이자를 꼬박꼬박 물어야 하고 이것은 고스란히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온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인 국채를 사들인 사채업자에게 국가가 빚을 갚으려면 세금을 올려야 하고 세금이 오르면 국민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니 소비가 줄어 기업실적이 나빠진다. 주가도 내려가고 세수도 줄어든다. 악순환이다.


주가를 높이려면 배당금을 높여야 하고 배당금을 높이려면 직원의 임금을 줄여야 한다. 주식시장은 건강한 경제의 지표가 될 수 없다. 미국 같은 기축통화국이 양적완화의 이름으로 푸는 돈은 미국 국민의 자산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채권 같은 투기은행의 자산만을 지켜준다. 국가의 구제금융으로 살아난 투기은행은 서민의 집을 차압하여 돈을 버는 것도 모자라 양적완화로 배정받은 공돈으로 전 세계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기업 위에 군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