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이 밥맛을 풍기며 연기를 토한다


사진. 백령도 2019.8.19. ⓒ 이굴기



여행 갈 때, 전봇대와 굴뚝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멀리 전봇대는 성큼성큼 달아나 숲으로 들어가, 결국에는 멀리멀리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인간이 사는 동네를 지나칠 때 전봇대는 무슨 사연을 싣고 몰려가는가. 윙,윙,윙 소리가 난다. 가까이 굴뚝은 지붕에 꼼짝없이 매달려 마을에 머문다. 집안의 장남처럼 쓰러져가는 집을 부축하고 있는 굴뚝.


두루미 보러 철원 가는 길.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이 연속된 곳이 많았지만 외따로이 멀찍이 자리잡은 고독한 산간 마을도 있다. 연기가 뭉클뭉클 솟아나는 굴뚝을 기대했건만 이제 그런 집은 드물었다. 마을을 떠나 빈집도 많은 듯.


여행길에 페루의 국민시인 세사르 바예호의 시선집,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과 동행했다. 무심코 펼친 한 대목에서 만난 한 구절에 깜짝 놀란다. 이제껏 듣도보도 못했던 참신한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굴뚝이 밥맛을 풍기며 연기를 토한다”


하늘 높이 뜬 두루미를 관찰하고 저물 무렵에 도피안사(到彼岸寺)에 잠깐 들렀다. 신라시대에 창건한 유서깊은 절이다. 어수선한 시절 탓인가. 걸어다니는 이가 우리들뿐이다. 종각 앞의 산뽕나무를 한참 보는데 처사님이 저녁 공양을 같이 하자고 하신다.


소박한 밥상. 수제비와 함께 철원쌀밥을 주셨다. 도피안사는 야생화로도 유명하다. 깽깽이풀, 노루귀, 삼지구엽초, 복수초 등이 지천으로 피어난다고 한다. 스님, 보살님, 처사님과 단촐하게 함께 한 식탁에서 꽃 이야기를 많이 했다. 모두들 법력뿐만 아니라 꽃에 대한 안목이 보통이 아니었다. 쌀밥 사이로 드나드는 야생화 덕분에 공양간이 꽃들의 야단법석(野壇法席)!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산중공양. 합장하고 물러나와 봄기운이 들끓기 직전의 화단을 보고 야생화가 몰려나오려는 산자락을 보고, 뒤로 돌아가 요사채 굴뚝에도 특히 눈길을 힘껏 주었다. 입안에 가득한 철원쌀밥의 향기를 머금으며 바예호의 시를 또 중얼거려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었다. 굴뚝이 밥맛을 풍기며 연기를 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