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 건축 현장, 불국토로 변하다 - 건축 일기 36


세계 최초의, 아니 유사 이래 처음으로 시도되는 안방 정원! 그러나 그것은 건축의 문외한이 잠시 가진 머릿속 생각에 불과했고 공사는 먼지를 자욱하게 내면서 속도를 내었다. 벽 하나 뚝딱 만들어지는 게 불과 한 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벽돌을 쌓은 것도 관건은 수직과 수평을 맞추는 것이었다. 공중에서 길게 늘어뜨린 하얀 실을 기준으로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졌다.


궁리 건물의 절반은 벽돌이고 절반은 콘크리트인데 전혀 다른 물성의 두 덩어리가 사로 맞물리며 돌아가는 형국이다. 건물 내외에서 벽돌 쌓는 작업과 병행해서 주요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궁리 건물의 외벽은 유로폼 노출이다. 이는 콘크리트 벽체에 별도의 다른 재료를 덧붙이지 않고 콘크리트만으로 그대로 마감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정교하게 시공을 한다고 하지만 거칠기 짝이 없는 시멘트. 야성을 강조하는 것은 좋은데 그래도 얼마간의 손을 보아야 한다. 불에 구운 벽돌은 그 자체로 깨끗한 마감이라 손을 댈 필요가 없고, 콘크리트 노출 부분에는 화장(化粧)이 필요한 것이다.


건물 주위에 비계라고 하는 외부 작업대가 오래 전에 설치되었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비계는 튼튼하게 조립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비계를 설치하는 게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관건이기에 국가에서 약간의 보조를 해준다고 한다. 이웃 보고사는 정방형의 건물이라 그런 혜택을 누렸지만 우리는 골조 자체가 들쭉날쭉해서 규격화된 비계 제품으로 설치할 수가 없어 아쉬웠다.


외부 면처리 작업, 다시 말해 건물 외벽의 화장 작업에는 두 분이 투입되었다. 그들은 비계를 다람쥐같이 오가면서 시멘트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부분과 또는 더 튀어나온 부분, 움푹 패인 부분, 각이 나오지 않는 모서리 부분, 얼룩이 묻은 부분 등을 고운 시멘트로 바르고 문지르면서 다듬어 나갔다. 방진 마스크를 끼고 비계를 타고 넘으며 아슬아슬하게 작업하는 모습에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 방학이면 시골의 큰댁에서 한 철을 지냈다. 무딘 손으로 농사를 거들기도 했는데, 힘이 들었지만 무슨 일이든 하나 매듭을 짓고 나서 그렇게 마음이 뿌듯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마음이 맑아져 논이나 밭을 바라볼 때 던지는 백부(伯父)의 한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야야, 사람 손이 간 것치고 안 좋아지는 게 없단다! 그때 그 말씀도 상기시키면서 그들의 손이 지나간 곳은 똑부러지게 선명한 각이 세워지면서 콧날이 오똑한 얼굴로 건물이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안팎에서 공사가 진행될 때 4층에서 많이 머물렀다. 이곳은 앞으로 내 사무실로 쓸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은 이 건물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서 작업하는 현장이 훤히 보인다. 1층에서부터 기어오르던 벽돌이 2층을 지나 어느 새 3층을 통과하고 있었다.


궁리 건물을 지을 때 생각해본 것 중에 하나가 건물의 네 귀퉁이에 풍경(風磬) 달아볼까 하는 것이었다. 목탁소리와는 또 다른 맛을 주는 풍경소리. 그 소리는 말하자면 자연이 두드리는 목탁소리라고 할 수 있겠다. 바람은 딱딱 끊어 불 수가 없다. 부드럽기가 이를 데 없는 연속적인 흐름으로 이다. 그 바람이 두드려 내는 소리, 풍경소리.


나에겐 집과 사무실에 풍경이 몇 개 있다. 그러나 몇 해 째 벙어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늘상 유리창 바깥으로 지나다니는 바람의 맛을 제대로 못 보고 있는 것이다. 집의 거실에 우두커니, 멍청하게 달려 있는 풍경을 떼서 현장으로 가지고 왔다. 어느 해 해인사 경내 기념품 코너에서 산 풍경이다.


오랫동안 잘못된 환경과 주인을 만나 소리를 잃어버렸던 풍경. 그 풍경을 4층 공사 현장에 풀어놓기로 한 것이다. 너무 넓은 공간인 바깥에서는 음악을 틀어도 제 가락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작업장에서 나오는 소음도 끼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풍경소리는 언제 어디서나 바람만 만나면 한결같이 청랑한 쇳소리!


심학산이 잘 보이는 4층 유리창에 철사를 이용해서 풍경을 매달았다. 바람은 풍경을 보자마자 달려들었고, 풍경은 바람을 만나자마자 소리를 내었다. 오래도록 헤어졌던 형제가 만나서 반갑게 서로 얼싸안으면 회포를 푸는 형국이었다.


녹이 더러 슬기도 하는 풍경이 그동안 참았던 것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듯한 풍경 소리가 4층을 너머 궁리 건물의 중정으로 내려갔다. 작업장에서 울리는 작은 소리들을 뒤덮으며 풍경소리는 이곳의 모든 사람들의 귓전에도 내려앉았다. 부산하면서도 조용한 궁리의 건축 현장이 일거에 소슬한 불국토(佛國土)로 화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