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이 온다, 에디션F 시리즈 6월 런칭!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 1

『내가 깨어났을 때』 옮긴이의 말


2018년 이후 여성운동이 한국 사회의 여러 지형을 뒤흔들 만큼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도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샬럿 퍼킨스 길먼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다. 길먼은 1900년대 초반 미국 사회를 대표하는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활동가, 사회주의자, 연설가로 명성을 날렸으며 남성과 국내에서 대표적인 페미니즘 소설로 자리잡은 게르트 브란튼베르크의 『이갈리아의 딸들』과 위대한 SF 페미니즘 소설의 진수로 손꼽히는 어슐리 르귄의 『어둠의 왼손』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친 소설가이자 시인이기도 하다.


1860년 7월 3일 코네티컷에서 출생한 길먼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저자 해리엇 비처 스토 가문 출신이었던 아버지 프레데릭 비처 퍼킨스에게 버림받은 길먼은 편모 슬하에서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했고, 열다섯 살까지 받은 학교 교육이 4년에 불과했을 만큼 가난했다. 하지만 생물학과 인류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탐독하면서 훗날 평생에 걸쳐 몰두한 낙관적인 진화론에 입각한 페미니즘 이론의 단초를 마련한다.


길먼은 1884년 화가 찰스 W. 스텟슨과 결혼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성역할을 원하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불행했고 이듬해 딸을 출산한 후 심각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린다. 당시 명망 높은 신경과 의사였던 사일러스 위어 미첼이 운영하는 요양소를 찾은 길먼은 1800년대 신경증이나 우울증을 앓는 여성들에게 주로 처방되었던 ‘휴식 치료’를 처방받는다. 하지만 6~8주 동안 모든 사회적 활동과 지적 활동을 금하는 ‘휴식 치료’는 오히려 우울증을 악화시켰고 신경증에 시달린다.


길먼은 1888년 딸 캐서린과 캘리포니아 패서디나로 이주한 후 1894년 남편과 이혼한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후 길먼은 여러 잡지에 소설과 시를 게재하면서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시작함과 동시에 ‘여성 동맹’과 ‘경제클럽’ 등 여성 운동 조직에서 활동한다. 이 때 길먼은 사회주의자인 조지 버나드 쇼, 진화론적 관점에서 사회 개혁을 주장한 레스터 프랭크 워드와 교류하면서 사회주의와 진화론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길먼은 1935년 유방암 진단 후 자살하기까지 『여성과 경제학(Women and Economics)』, 『아이들에 관하여(Concerning Children)』, 『가정(The Home)』, 『인간의 노동(Human Work)』, 『남자가 만든 세계(The Man-Made World)』, 『허랜드(Herland)』, 『남자의 종교와 여자의 종교(His Religion and hers)』, 자서전인 『샬럿 퍼킨스 길먼의 삶(The Living of Charlotte Perkins Gilman:An Autobiography)』 등의 책을 쓰고 자신이 창간한 잡지 《선구자(The Forerunner)》에 꾸준히 기고하는 등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특히 1898년에 출간한 『여성과 경제학』에서 평생에 걸쳐 천착한 억압받는 여성에 관한 사회구조적인 분석, 해결책으로써 육아와 가사노동의 사회화와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같은 주제를 이론화했다. 이 책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가부장적 사회구조야말로 여성이 억압되고 종속되는 원인으로 진단한 길먼은 가사노동과 육아의 사회화를 통해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으며, 남성이 독점한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기여가 늘어날수록 사회는 진화한다고 주장한다. 길먼의 이러한 주장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인 『내가 깨어났을 때(Moving The Mountain)』, 『허랜드(Herland)』, 『위드 허 인 아워랜드(With Her In Ourland)』(우리말 제목은 가제임)에 잘 구현되어 있다.


『내가 깨어났을 때』는 여행하다가 히말라야에서 사고를 당한 후 자신을 구해준 이들과 함께 티벳에 머무르던 미국인 존 로버트슨이 우연히 여동생을 만나 30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온 후 젊은 시절과는 사뭇 달라진 미국을 배워가는 일종의 ‘적응기’라고 할 수 있다. 길먼은 주인공의 여동생과 주변 인물들의 입을 빌려 빈곤에 허덕이던 미국이 30년 만에 풍요로운 사회로 전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소설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여기서 길먼은 여자의 각성과 믿음의 영역이 아닌 지식 전파자로서의 종교, 남아와 여아를 차별하지 않는 교육, 가사노동과 육아의 사회화에 따른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대전환의 힘’으로 언급한다.


<누런 벽지>를 제외한 길먼의 소설이 문학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일각의 평가와 그녀가 인간 개조를 통한 사회의 진보를 주장한 우생학을 옹호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기를 대표하는 여성운동가인 샬럿 퍼킨스 길먼의 『내가 깨어났을 때』의 초역 출간은 페미니즘이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문에서 자신이 창조한 1940년대의 미국을 ‘성장 가능성을 지닌 어린 유토피아’라고 부른 길먼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의 둘째 권 『허랜드』에서 궁극의 유토피아를 창조한다. 하지만 『허랜드』가 처녀생식을 통해 태어난 여성들만 존재하는, 지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인데 반해 『내가 깨어났을 때』 속 ‘어린 유토피아’는 일부일처제가 유지되면서 ‘가난도 노동 문제나 피부색 문제, 성문제도, 질병도, 사고도 없는 사회이자 생산의 양적, 질적 발전을 이룬 사회’로 우리가 한 발만 더 내딛는다면 닿을 듯한 사회이다. 이런 ‘어린 유토피아’가 사람들의 각성과 교육의 변화, 가사노동과 돌봄의 사회화, 여성들의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구현된다는 점은 대졸 남성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대졸 여성의 취업률,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게 만드는 경단녀 문제, 늘어가는 맞벌이에도 제자리걸음 중인 돌봄 서비스 등의 고민을 안고 있는 21세기의 한국 여성들과 그 여성의 아버지이거나 오빠, 혹은 남편인 남성들, 즉 ‘우리 모두’에게 의미심장하다.


2019년, 낙태죄가 폐지되고 여성 연예인들에게 특히 가혹했던 연예인 댓글 뉴스가 폐지되었으며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흥행하면서 평범한 일상에 깊이 뿌리 내린 성차별에 대한 폭넓은 공감이 이루어지는 등 우리 사회는 느리게나마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그럼에도 37.1%로 OECD 최고 수준인 남녀 임금 격차, 여성 고위 임원·관리직 비율 세계 153개국 중 142위, 여성 국회의원 수 108위와 같은 낯 뜨거운 숫자가 말하는 한국사회와 ‘맡은 업무가 무엇이든 여자와 남자가 완전히 동등하게 대우받으며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세상 곳곳에서 일하는’ 어린 유토피아와의 간극은 아직 크기만 하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깨어났을 때』 서문에서 길먼은 말한다.


“진심으로 깨닫고 힘을 쏟는 방향을 재설정한다면, 30년 후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이 세상 역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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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정수

『제인의 임무』 옮긴이의 말


이디스 워튼은 1862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가문이 부유했던 덕분에 유럽 각국을 여행하고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고 아버지의 커다란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자랐다. 하지만 책만 읽으려 하는 딸을 걱정한 어머니가 다그치고 결혼 전까지는 아예 소설 읽기를 금지했다. 결국 당시의 관습에 따라 머리를 올리고 어깨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채 사교계에 진출했다. 1885년 결혼하여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지냈으나 남편의 정신 질환이 심해졌고 이디스 워튼도 덩달아 우울증과 불안증에 시달리다가 치유로서의 글쓰기에 몰두했다. 20여 권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집, 시와 논픽션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조지 프레데릭 존스의 딸, 이디스 뉴볼드 존스로 태어나 미스 존스로 살다가 에드워드 로빈스 워튼과 결혼해 워튼 부인으로 살았고 이혼했지만 이디스 워튼으로 죽었다. 작품에 남편이 죽거나 이혼한 후에도 그 남자의 ‘부인’으로 불리는 여성들처럼 이디스 워튼도 남편의 성을 버리지 못했다. 참정권조차 없었던 당시 여성의 지위를 생각하면 오히려 법적인 이혼이 가능했다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여성으로 태어나 대체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고 여성 최초의 퓰리처 수상자로 문학사에 남아 있다.


번역자로서 ‘woman’은 망설임 없이 ‘여자’라고 번역하지만 ‘man’을 ‘남자’라고 해야 할지 ‘인간’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이 있다. 여성은 단순히 남성의 반대 성이 아닌 것이다, 아직도. 그러니까 남성 작가들은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고민하고 ‘인간’의 존재론을 탐구하고 ‘인간’의 소외를 묘사하지만 여성 작가들은 ‘여성’과 사회의 문제를 고민하고 ‘여성’의 존재론을 탐구하고 ‘여성’의 소외를 묘사한다. 여성들이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고 시야가 좁아서가 아니다.


남성은 보통의 인간을 대표하고 여성은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데도) 특수한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자 교수가 보통의 교수가 아닌 것처럼, 드라마 여자 주인공이 그냥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동성애 연인이 그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것처럼, 다문화 가정이 보통의 가정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특별한 이름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구분되고 배제되는 이름이 붙어 있는 한 구분되고 배제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일지 몰라도 여자가 그냥 인간이기를, 여성작가들이 여성이라는 자의식이 없이 글을 쓸 수 있기를, 동성애를 다룬 소설이 그냥 인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소설로, 다문화 가정이 그냥 이웃 가정으로, 여자 사장이, 여자 교수가, 여자 노동자가 그냥 사장과 교수, 노동자로 받아들여지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 궁리출판의 이번 기획도 그 희망을 실현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man’과 같은 높이에 ‘woman’을 올려놓으려면 편협하고 개인적이고 즉흥적이고 깊이가 없다는 여성적인 작품들을 더 많이 드러내어야 하고 그 작품 속 인물의 입을 빌어 더 많이 떠들어야 하고 독자들이 여성 작가들과 여성 주인공들과 여성의 시각에 대해 더 시끄럽게 굴어야 할 테니까. 많이 읽고 배우고 마음껏 잘난 척하며 권위를 무시하고 까탈스럽게 굴고 결코 고분고분하지도 져주지도 않는, “제인의 임무”의 제인처럼.


이 책에는 이디스 워튼의 단편 중 9편을 골라 실었다. 역자가 전문 문학연구자가 아니기도 하고 80여 편을 다 검토할 시간과 능력이 부족하기도 해서, 평론가들과 먼저 읽은 독자들의 평가를 참조하여 뽑았다. 작가의 역량을 다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분량이지만 작가의 발전과 변화를 보여줄 수 있도록 1893년부터 1934년에 걸쳐 발표된 것들을 비교적 고루 선택하였고 <다른 두 사람>, <징구>, <로마 열병>을 제외한 작품들은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것이다.


이 작품들은 절망적인 여성의 사회적 상황, 여성이 사회의 규범과 빚는 갈등, 이혼 여성에 대한 사회의 편견, 신구세대 간 갈등, 인간관계의 미묘한 질투 등을 잘 다루고 있으며 지적 허영심과 작가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풍자, 특히 인물의 심리묘사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2020년의 독자로서도 100년에 가까운 시간적 거리를 뛰어넘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라 생각한다.


그 중 <로마 열병>은 연극과 단편드라마, 오페라 등으로 제작되어 있어서 인터넷상에서 새롭게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상류사회를 그린 여러 작품의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진 워튼의 저택, The Mount는 일반인에게 관광지로 개방되어 있는데, 먼 곳에 있는 우리 독자들은 인터넷 동영상으로도 둘러보아도 좋겠다. <홀바인 풍으로>를 읽고 나서는 한스 홀바인의 목판화 <죽음의 무도>를 찾아보길 바란다. 내친 김에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배경 음악으로 사용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도 들어보면 어떨까. 모쪼록 독자들이 각 작품의 마지막 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읽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