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地理) 없는 나라는 행복하도다.”
- 사키(H. H. 먼로)
구글 어스 덕분에, 이제 우리는 지구의 구석구석을 컴퓨터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지구는 오렌지처럼 푸르다”는 엘뤼아르의 직관을 확인해주듯 위성들이 우주 공간으로부터 보여주는 푸른 별 지구나, 너무나 느려서 인간의 눈으로는 그 움직임을 알 수 없는 대륙들의 이동, 대륙들을 촘촘히 가로지르는 핏줄 같은 하천들과 흉터 같은 산맥들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숲과 골짜기, 도시와 마을, 개인들의 집과 뒷마당까지 볼 수 있게 해준다. 지구 저편에서부터 팀북투에 사는 누군가의 거실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통가에 모인 가족의 잔치를 훔쳐볼 수도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율리시스처럼 미지의 나라로 돛을 달고 떠나갈 수 없게 되었다. 단테가 율리시스의 입을 빌어 말하는 저 “미친 듯한 질주(folle volo)”(지옥편 제26곡 125행)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인간의 눈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없애버리고 말았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세상에는 아직 탐험되고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역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어서 아직 묘사되지 않은 풍경들을 상상해보는 일이 가능했다. 어린 시절 내 책상 위의 지구본에는 지명이 별로 표시되지 않은 분홍색 지역들이 더러 있었는데, 나는 공식적인 점과 선들로 표시되고 대문자로 명기된, 국경이 엄격히 표시된 나라들보다 그런 밋밋한 빈칸들에 더 끌렸다. 여기 이 부분이 루마니아이고, 저기 저 점이 부크레슈티라는 기정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아프리카나 극지방의 분홍색 빈칸을 놓고 내 멋대로 만들어낸 지리를 펼쳐보는 것이 더 좋았다. 탕가니카보다 더 신비한 이름, 티티카카 호수보다 더 매혹적인 경관이 있는 지리 말이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도 그런 자유를 잃게 되었고 드물게 남아 있던 미지의 장소들마저 다 이름 붙여진, 알려진 곳이 되어버렸다. 내 탐험은 여행안내서의 안전한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에 자니 과달루피를 만났다. 나는 밀라노에서 프랑코 마리아 리치 출판사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자니는 그 회사의 중견 편집자였고,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자니의 방대한 지적 호기심, 총기 넘치는 유머 감각, 티내지 않는 박학함 같은 것이 내게는 큰 매력이었고, 얼마 안 가 우리는 우리가 하던 일을 뒤엎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자니는 기묘한 역사책들(특히 “만일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식의 가상 역사, 가령 만일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이겼다면, 한니발이 패배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등등)과 도감(圖鑑)류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몸을 움직여 여행하기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래된 지도나 베데커 여행안내서에서 묘사된 여정을 따라가 보기를 즐겼다. 그는 그런 책들을 잔뜩 모았으며, 나중에는 아로나의 닭장을 개조하여 만든 서재에 그 희귀한 장서들을 꽂아놓았다. 천장은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서투른 솜씨로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하고.
리치의 사무실에서, 우리는 죽이 아주 잘 맞는 동료였다. 우리는 자료를 모아(때로는 우리가 지어내어) 여러 권의 앤솔로지를 엮었고, 온갖 이야기와 에세이를 시적 자유 이상의 자유를 가지고서 번역했으며(내가 영어를 에스파냐어로 옮기면, 자니가 에스파냐어에서 이탈리아어로 옮기는 식이었다), 리치의 뉴스레터 중 꽤 여러 호를 함께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즐거운 일은 책과 독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자니는 내게 자기가 발견한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폴 페발의 《흡혈귀 도시》라는 작품이었는데, 자니는 그 흡혈귀 도시에 대한 일종의 관광안내서를 써보면 재미있겠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곳에 가서, 어디서 묵고 어디서 먹으며, 무슨 구경을 하면 좋을지……. 모두 소설에서 추려낸 사실들에 국한하고, 아무것도 지어내지는 않기로 했다. 우리는 즉시 작업에 착수하여, 페발의 도시에 가는 여행자를 위한 네댓 페이지의 안내서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그만두라는 법이 어디 있어? 자니가 물었다. 다른 상상 도시들에 대해서도 안내서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도시만이 아니라 나라들, 대륙들까지 넣지 말라는 법은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생각나는 대로 상상 속 장소들의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항목 수는 금방 수백 개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가 곧 깨닫게 된 사실은 상상의 지리는 실제 세계의 지리보다 훨씬 더 광대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작업, 즉 용적과 중량을 갖는 실제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지형이나 생물들을 불러내는 작업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 선조들이 그 위계질서를 논하던 천사들이나, 에테르니 플로지스톤이니 하는 신비한 물질, 또는 완벽한 민주주의라든가 만인의 선의 같은 관념들이 그렇듯이, 상상의 장소들도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데는 아무런 물적 기반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유토피아, 원더랜드, 아틀란티스, 엘도라도 등은 비록 어떤 공식적인 지도에도 정확한 위치를 표시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항상 존재해왔다. “그것은 어떤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진짜 장소들은 으레 그렇다”고 허먼 멜빌은 이른바 실제 세계라는 것을 볼 만큼 본 다음에 말한 바 있다. 자니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무한정한 상상의 세계에 어느 정도의 한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책이 너무 방대해지지 않게끔, 우리는 천국과 지옥, 그리고 지구상에 있지 않은 장소들은 배제해야 했다. 또,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 카운티나 프루스트의 발벡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의 이름만 바꾼 상상의 장소들도 넣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평행 세계들이나 미래의 장소들도 제외시켰다. 왜냐하면 (우리 사전의 논리상) 그런 장소들은 우리의 ‘현재적’ 상상의 장소들과 모순되거나 겹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제한을 두었는데도, 우리 사전은 수천 개의 항목을 망라하게 되었다. 물론 상상의 장소들은 늘 새로이 생겨나고 있으므로, 우리 사전도 두 차례나 개정・증보되었다. 이 책은 사실상 세 번째 판이다.
자니는 2005년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방랑벽은 우리의 이 책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젊음만이 가능케 했던 활력과 끈기로 이 책을 쓰면서, 우리는 우리가 정한 규칙—상상의 장소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기사를 쓰되 원작에 없는 사실은 전혀 덧붙이지 않는다는—을 엄격히 지켰으나, 단 두 가지 예외를 두었다. 우리는 각자 한 항목씩, 가상의 저자와 서지를 갖춘 상상의 장소를 지어내기로 했던 것이다. 자니가 쓴 항목은 위트와 독창성이 넘치고 정말이지 그럴싸했다. 그 ‘가짜’ 장소들이 무엇 무엇이었는지는 밝히지 않겠다. 다만, <뉴욕타임스>에 이 책의 서평을 쓴 서평가가 그 두 항목 중 하나를 특히 지적하여 칭찬했다는 사실만 말해둔다. 그는 그 항목이 들어가서 정말 기쁘다, 자기도 어렸을 때 문제의 그 책을 읽고 무척 좋아했었는데 그 후로는 아무도 그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허구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자니는 그 힘을 그토록 총기 있게 믿었었다.
2013년 봄, 나는 한국의 한 시인을 처음으로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들로밖에는 그분의 작품을 접할 수 없었지만 그 후로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황지우란 분이다. 한국 문자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황지우 시인 같은 분의 시들을 접하면, 혹시나 한국어에 대한 무지 때문에, 내가 그 나라의 문학에 깃든 풍요로움에 대해 귀가 먹거나 눈이 먼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귀가 멀고 눈이 먼 다음 해에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 관장에 임명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임명된 것은 하느님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분은 내게 책과 밤을 동시에 주셨다.” 황지우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나 역시 그런 인상을 받았다. 내가 읽지 못하는 언어로 된 문학작품들로 가득찬 어마어마한 도서관이 여기 있었구나.
황지우 시인의 <연혁(沿革)>이란 시의 끝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륙(內陸)에 어느 나라가 망하고 그 대신 자욱한 앞바다에 때 아닌 배추꽃들이 떠올랐습니다.”
내 생각에 이 시구절은 자니 과달루피와 나 자신이 이 책에서 시도한 것들을 저 멀리서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요약한 것처럼 여겨졌다.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무지를 한국의 독자들께서는 기꺼이 용서해주시고, 이 항해를 즐겨주시리라 믿는다.
2013년 8월, 몽디옹.
알베르토 망겔
(- 위 본문은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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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독서가 알베르토 망겔과 이탈리아 최고의 여행작가 자니 과달루피가 이 책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에서 주목한 것은 인류 역사 전체에 걸쳐, 무수한 작가들이 창조해온 매혹과 공포와 기쁨의 놀랍도록 다양한 상상의 장소들이다.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뿐 아니라 영화, 음악, 오페라 등 500여 작가들(가르시아 마르케스, 조지 가모브, 닐 게이먼, 그림 형제, 알퐁스 도데, 아서 코난 도일, 도스토예프스키, 동방삭, 프랑수아 라블레, 아르튀르 랭보, 존 레넌, J. K. 롤링, 어슐러 K. 르 귄, C. S. 루이스, 토머스 멜러리, 발터 뫼르스, 무라카미 하루키, 앙리 미쇼, L. 프랭크 바움,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쥘 베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볼테르, 토머스 불핀치, 레이 브래드버리, 주제 사라마구, 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스타인벡, 미하일 엔데, 움베르토 에코, 이탈로 칼비노, 프란츠 카프카, 마이클 크라이튼, 찰스 킹즐리, 톨킨, 샤를 페로, 올더스 헉슬리, 호메로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 등)의 760여 개 작품 속에 존재하는 흥미로운 상상의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펴낸 이 책에는 아틀란티스에서 드라큘라의 성, 톨킨의 미들어스에서 바스커빌 저택, 유토피아에서 어스시, 마법의 나라 오즈에서 나니아, 쥐라기 공원, 하루키의 세계의 끝,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 등 총 1300여 곳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의 구성 및 특징 - 사전의 활용에 대하여
◆ 책 속의 상상 장소들은 가나다순으로 정렬되어 있지만, 처음부터 차례로 읽어나갈 필요는 없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항목부터 골라 읽는 것도 새롭고 흥미로울 것이다. 참고로 큰 차례는 다음과 같다.
· ㉠ : 가고일 나라 ~ 꿈의 호수
· ㉡ : 나니아 ~ 님파탄
· ㉢ : 다고를라드 ~ 뜀쟁이 나라
· ㉣ : 라가도 ~ 링컨 섬
· ㉤ : 마그레비니아 ~ 밀크
· ㉥ : 바곤 ~ 뿔쟁이 나라
· ㉦ : 사구 ~ 쓰이지 않은 책들의 묘지
· ㉧ : 아가르타 ~ 잉카 터널
· ㉨ : 자라의 왕국 ~ 진홍 탑의 섬
· ㉩ : 차모니아 ~ 칭페
· ㉪ : 카가얀 살루 ~ 킹콩의 섬
· ㉫ : 타나시아 ~ 틸위스 테그
· ㉬ : 파나라 ~ 핑기스월드
· ㉭ : 하늘을가만놔둬 ~ 히페르보레아
◆ 권말 부록에는 두 가지의 찾아보기가 있어, 원하는 표제어를 찾아 읽는 효율적 독서가 가능하다.
· 작가별 작품 찾아보기 : 다양한 언어권의 작가들과 그 작품을 가나다순으로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작품명들의 말미에 안내되어 있는 표제어를 통해 원하는 본문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다.
· 표제어 찾아보기 : 책 속에 등재된 표제어들이 원어와 함께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해당 단어 옆에 표시된 쪽수를 확인한 뒤 본문으로 이동할 수 있다.
◆ 본문 21쪽의 〈일러두기〉에서는 표제어 표기의 방침과 항목의 원어 구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다. 사전에 읽어두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 책 속의 곳곳에는 상상 세계의 여행을 돕기 위해 곁들인 지도와 삽화들이 있다. 이 그림들은 각 항목에 제시된 길들을 따라가면서 많은 이야기의 배경을 도해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 본문의 표제어들은 손가락 표시(☞) 를 통해 상호 참조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해당 항목과 연관된 다른 항목을 표시해주는 것으로, 글을 읽다가 궁금하면 바로 점핑하여 찾아 읽기가 가능하다.
◆ 본문 구성 예시 및 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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