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회인으로 산다>의 역자, 두레지원센터 사무국장 조한소 인터뷰


Q이 책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독자 여러분께 책을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A 우리네 인생사가 그러하듯, 정말 ‘우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따금 저는 생협운동과 관련해서 참고할 만한 책은 없을까 싶어 일본서적을 파는 대형서점을 찾곤 합니다. 그날도 이런저런 책을 훑어보다가 정말 운 좋게도 서가에 꽂혀 있던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사회인으로 사는 법”(社会人の生き方). 제 나름대로 의역해본 제목인데요. 이 제목이 너무도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사회인 + 사는 법’ 별 생각 없이 쓰던 단어를 이렇게 묶어놓고 보니 뭔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삶의 우여곡절을 겪다보면 싫든 좋든 생각을 하게 되지만, ‘사회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특별히 의식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 전공이 사회학인데요. 이런저런 사회학 이론을 배웠어도 ‘사회’가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고요.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요즘은 저같이 우둔한 사람도 사회학을 통해 삶을 성찰해볼 수 있도록 『세상물정의 사회학』 같은 책도 나오는데요. 참 반가운 일이죠.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도 제게는 그런 책으로 다가왔습니다. 한마디로 “이제 더 이상 회사인(경제인)으로만 살지 말고 사회인으로도 살아보라”는 ‘돌직구’를 날리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저자가 데루오카 이츠코(暉峻淑子) 선생이었습니다. 홍성태 교수께서 번역한 『부자 나라, 가난한 시민』을 읽으며 ‘아,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던 기억이 떠올라 목차와 머리말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머리말 끄트머리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사회는 역사가 축적해온, 국경을 넘어선 지혜와 경험의 보고다. 거기서 뭔가를 얻고 또 거기에 뭔가를 보태지 않는다면 과연 무슨 삶의 의미가 있을까? 사회에 도움을 받는 동시에 사회를 더 좋게 바꿔가는 사회인의 생활방식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고 싶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너무도 자명한 (그래서 아무도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명제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해주는 말을 저는 이제껏 본 적이 없습니다.


그 한 구절에 이끌려 책을 읽다보니 점점 빠져들어 갔습니다. 저 혼자 보기에는 아까워서 우리 조합원들과 함께 읽어야겠다는 마음에 무턱대고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몸담고 있는 두레생협은 몇 해 전부터 ‘먹을거리 협동’을 넘어서 ‘돌봄의 협동’에 도전하고 있는데요. 협동의 힘으로 나와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돌보고 지역사회를 돌보는 생협 조합원들의 활동이 저자가 말하는 ‘사회인’으로서의 삶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입니다. 생협으로서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온갖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어쩌면 조금은 힘이 빠졌을지도 모르는데, 데루오카 선생의 글을 통해서 뭔가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 책이 ‘응원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번역에 달려들었습니다. 번역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보니, 기왕이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정식으로 출판할 수는 없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친한 후배의 도움으로 운 좋게 저자의 전작 『부자 나라, 가난한 시민』을 펴낸 궁리출판과 인연이 닿았고요. 이렇게 출간된 책을 보고 있자니, 설레기도 긴장되기도 하네요.



Q선생님은 사회에 대한 인식을 언제, 가장 강렬하게 하셨는지요?

A 저는 이래저래 ‘늦깎이’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사회학을 전공했어도 제 안에 ‘사회’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나 관점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자기 문제로 절실하게 받아들일 만한 계기가 없었나봅니다. 그건 뒤집어 말하면 삶을 유예하며 혹은 유예받으며 살아왔다는 반증이겠죠. 대학원에서 ‘노동’ 문제를 공부했지만, 정작 ‘회사인’으로 살 때는 노동자로서의 의식도 없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IMF를 거치고 회사를 나와 NGO대학원에 다니면서 시민단체 간사생활도 했지만, 운동과 생활의 괴리감 혹은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저에게 사회는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생협을 알게 되고, “생협운동은 30년 앞을 내다보고 하는 운동”이라는 선배의 말씀에 고무되어 생협에 발을 들이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사회가 조금씩 구체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서울생활 20년 만에 동네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고 수다를 떨 이웃이 생겼다는 것, 그 이웃들과 함께 일상생활의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 그렇게 해서 조금씩 더불어 사는 삶과 협동의 재미를 느끼는 것. 그런 소소한 것들입니다. 그러면서 3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보는 거죠.


사회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존재양식의 변화’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생협을 비롯한 협동(조합)운동, 마을 만들기 운동, 사회적 경제 운동은 존재양식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의 2장에서도 저자는 ‘가까운 주변에서 사회와 관계 맺기’를 권유하고 있는데요. 그런 관계 맺기를 통한 실감이 ‘사회인’으로 살아갈 힘을 주는 것 아닐까요.



Q이 책은 절망의 시대를 외롭지 않게 견뎌내는 사회인의 생활방식을 소개합니다. 동료 만들기, 사회안전망 활용하기, 일과 개인생활, 사회 세 영역에서 균형 잡힌 생활하기, 학교에서 시민교육 하기, 정치의 구경꾼이 아닌 참여자로 나서기 등등. 여기에 덧붙일 말이 있다거나 선생님께서 팁을 하나 더 보태신다면?

A 사실 이러한 사회인의 생활방식들 하나하나가 건강하고 유쾌한 라이프스타일인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닐 겁니다. 동료가 있으면 좋겠지만 어디서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내가 기댈 수 있는 사회안전망은 무엇이 있을까요? 동료를 만드는 것도,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는 것도, 공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모두 어느 정도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하우가 필요하지요. 저자도 이 책에서 말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내 쪽에서 먼저 도움을 청하는 용기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실은 저희가 ‘선물’이라는 지역화폐(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 : LETS)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전의 ‘한밭레츠’가 유명하죠. ‘두루’라는 가상화폐를 통해 품과 물건을 나누며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사회적 도구입니다. 지역화폐를 흔히 ‘공동체를 만드는 돈’이라고도 하는데요. 여기에는 약간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공동체적인 관계가 미리 형성되어 있어야 지역화폐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한국은행권이 아닌 낯선 돈, ‘우리끼리 만들어서 쓰는 돈’이 갖는 생소함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 누군가는 열심히 거래를 일으켜야 합니다. “난 이게 필요해요.” “그거 제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하면서 ‘지름신’ 강림을 위한 푸닥거리를 하죠. 그래서 정작 본인은 ‘두루 거지’가 되지만, 그렇게 흘러간 ‘두루’가 새로운 거래를 촉발하는 구실을 하면서 비로소 거래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품앗이 (상호부조) 관계망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한밭레츠로부터 이런 귀중한 비법을 전수받았지만, 아쉽게도 저희 ‘선물’은 실패했는데요. 돌이켜보면 그렇게 내 쪽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Q두레생협 두레지원센터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어떤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 독자 여러분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희 두레지원센터는 고양파주두레생협과 울림두레생협이 함께 운영하는 협동조직입니다. 조합원 협동의 힘으로 ‘먹을거리 위기’를 극복해온 것처럼,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돌봄의 위기’를 극복해보자, 그러기 위해 생협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을 거치며 우리 사회에 ‘복지’가 화두가 되었습니다. 국민적 열망이 정치적 과정을 거치며 이상하게 굴절되는 모양새지만, 쉽게 꺼지지 않을 불씨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보편복지를 향한 공적 복지제도 정비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급선무입니다. 하지만 공적 복지제도가 모든 걸 다 해결해주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 틈새를 메우는 ‘사회적 돌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호부조 (이웃) 관계망에 기반을 둔 ‘생활복지’라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그런 생활복지의 모델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기 위한 실험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어르신을 돌보는 돌봄두레 ‘어깨동무’ 사업, 조합원들이 일상의 소소한 도움을 주고받는 ‘생활응원단’ 활동, 고립된 육아에서 벗어나 이웃을 만들고 함께 아이를 돌보는 ‘육아사랑방’ 활동, 일상적인 만남과 나눔의 장을 펼치는 사랑방 ‘선물’, 그리고 이런 돌봄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돌봄기금’ 조성 등이 현재 저희가 펼치고 있는 주요 활동입니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열정적으로 참여하시는 조합원 주체들이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봅니다.



Q생활협동조합원으로 살아가면, 이런 점은 좋다! 하는 게 있다면?

A 생협은 안전한 먹을거리 공동구매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생협운동의 근간이죠. 게다가 여성이 중심인 조직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먹을거리’에 담긴 의미일 텐데요. 솔직히 제 손으로 밥 한 끼 해본 적 없는 저로서는 도저히 짐작도 못할 많은 의미들이 ‘먹을거리’로 상징되는 ‘살림살이’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상생의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생협운동이고, 실제로도 상생의 실현을 위한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저도 어느 정도는 생협의 좋은 점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여성들이 느끼는 그 온전한 의미를 다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다행히도 생협 활동이 여성에게 갖는 의미를 분석한 논문도 여러 편 나와 있고, 저희 두레지원센터에서도 지난해 4회에 걸친 “생협의 길을 묻다”라는 포럼을 통해 약간의 정리를 한 게 있으니 그 편을 참고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옛말처럼, 생협이 그런 ‘비빌 언덕’이 되어줄 가능성이 많다는 점입니다. 도시에 살면서 생각을 나누고 생활을 나눌 ‘나와 닮은’ 동료를 만날 수 있는, 그래서 상호 인정과 지지를 통해 더욱더 자기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결코 흔하지 않은 공간이 아닐까 합니다.



Q저자는 책에서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민주주의는 토론하는 힘에서 나온다. 인생 경험도 생각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공통의 가치를 논할 토론의 장이 있어야 한다.” 선생님이 계신 생활협동조합은 어떤 식의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시나요? 함께 공유하는 소통의 원칙 같은 게 있다면 들려주세요.

A 흔히 생협을 ‘사회로 열린 창’, ‘민주주의를 배우는 학교’라고 합니다. 또한 협동조합은 주식회사의 ‘1원 1표’와 달리, ‘1인 1표’라는 민주적 원칙에 기반을 둔 조직입니다. 하지만 원칙이 자동적인 실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생협도 급속히 성장하면서 조합원과의 긴밀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결과 조합원 주권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과제에 끊임없이 직면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직 체계도 바꿔보고 다양한 의사소통 채널도 도입해보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효과를 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을 관통하는 한 가지 열쇳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조합원과의 ‘직접소통’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 위한 새로운 소통매체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노력하는데요. 사실 지금까지 일상적으로 많은 조합원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매체는 홈페이지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생협 조합원의 주축인 젊은 엄마들은 아이 돌보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는 거예요. 요즘은 스마트폰도 많이 보급되어서 얼마 전부터 SNS를 활용해보았는데요. 기대 이상으로 효과적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라면 아이를 재우면서 한 손으로도 얼마든지 읽고 쓰기를 할 수 있잖아요. 아무리 사소한 안건이라도 조합원들의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으니 실무자도 덩달아 힘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제는 그처럼 신속하고 유연하며 틀에 얽매이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조합의 공식적인 의사소통구조와 잘 결합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는 게 과제라고 봅니다.



Q평소에 어떤 책들을 즐겨 읽으시나요? 내 인생의 책 몇 권을 소개해주신다면?

A 책에 관심이 많고 책을 좋아하지만, 결코 좋은 독자는 아닙니다. “생각을 발전시키고자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닌가” 라는 구절을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내 얘기를 하는 거구나... 저의 은사님도 종종 이렇게 야단을 치셨습니다. “이보게. 자네 ‘딜레탕티즘’이라는 말 들어봤나?” “아니요, 무슨 뜻인데요?” “속물적 교양주의라고나 할까?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그저 책만 읽어대는 꼴이 꼭 자네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OTL”


그래서 ‘내 인생의 책’이라고 할 만한 게 과연 뭐가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대신에 ‘인생의 책’이 아니라 ‘인상에 남은 책’을 말한다면, 제 은사님이신 이종영 선생님의 『사랑에서 악으로』(새물결, 2004)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가능한 코뮤니즘』(太田出版 2000)을 꼽고 싶습니다.


전자는 권력에의 (무의식적)욕망이 어떻게 자본권력과 국가권력으로까지 이어지는지를 해명하는 글입니다. 선생님께서 학문하는 태도란 이러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는 ‘과학적 노동’의 전형을 보여주는 글인데요. 저도 딜레탕티즘을 넘어서 선생님처럼 집요하게 사물의 이치를 캐묻는 ‘과학적 노동’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해준 글입니다.


후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글인데요. 가라타니 선생의 전회(轉回)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트랜스크리틱』과 『세계공화국으로』 사이에 중요한 책이 3권 발간되었는데요. 『가능한 코뮤니즘』 『NAM 원리』 『NAM 생성』이 그것입니다. 그때까지 가라타니의 사유를 집대성해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이라는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 3부작이지만,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지 않고 공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현실에서 NAM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유의 모험’이 제게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라타니 같은 거장이 뭐가 아쉬워서 실패를 무릅쓰고 만년에 그런 모험을 할까... 이후 가라타니 선생의 문제의식은 ‘교환양식론’으로 발전하지만, 제게는 <NAM 3부작>의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습니다. 한때는 관심을 보이던 출판사가 있어서 초벌번역을 마친 적도 있지만, 결국 이런저런 사정으로 출판하지는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출판되기는 어렵겠죠. 아무튼 이 두 권이 제게는 깊은 인상을 남긴 책입니다.



Q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일본어 전공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번역 경험이 많지도 않은 주제에 번역을 하겠다고 덥석 덤벼들었다니, 책이 출간된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아찔합니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것이겠죠. 하지만 그런 우발적 마주침들이 결국은 사달(!)을 낸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미숙한 번역투가 읽기를 방해하기도 할 것이고, 더러는 오역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도 만나실지 모르겠습니다. 꼼꼼히 번역한다고 했으나 그것이 어설픈 번역의 변명은 되지 못하겠죠.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모든 오역의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서툰 문장보다는 데루오카 선생의 메시지에 주목해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