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영월 동강 2020.3. 8. ⓒ 이굴기
나무가 처음부터 제자리에 머문 건 아니었으니 짐승들을 피해 달아나기도 하고, 고사리의 간지러움을 피해 바위를 따라가다가 절벽 위에 멈추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래로, 앞으로 뻗어 나간 뿌리가 제 허리를 뒤에서 부여잡는 것을 보고 나무는 알게 되었다. 아, 이 지구는 둥근 물체로구나.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 보아도 언젠가는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제 꼬리를 잡아먹는 도마뱀처럼 나무는 알게 되었다.
외국에도 가보고, 외출도 해보고, 섬에도 건너가 보았으나 손오공이 부처님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듯 다 큰 나무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원점 회귀하듯 귀가해야 하는 바, 이 또한 세상이 둥글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리라.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 머리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통통배, 둥글게 휘어진 타원 모양이 지구가 둥글다는 유력한 증거로 배웠다. 이 편평한 땅이 실은 둥글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도 믿기가 힘들다. 어쩌면 우리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지구를 조종하는 우주인들의 음모론 같기도 하다. 대체 밤낮없이 흘러간 물이 바다로 갔다가 종내에는 하늘로 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저 구름이 파도의 아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확인할 수 없는 건 매달리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러기엔 내 인생이 너무 짧은 것. 이젠 나의 관심사항은 정해졌다. 저 둥글게 휘어진 수평선은 대괄호이다. 뭇생명이 바다에서 온 것처럼 나도 저 큰 괄호을 열고 이곳으로 왔다. 이제 머지 않아 제자리에서 살아가는 나무의 둥근 기둥이 나머지 나의 괄호를 닫아주리라.
......나무는 왜 제자리에서 현자처럼 살아가는 것일까. 한때 문지방이 닳도록 탐닉했던 맥주집의 소란을 뒤로 하고 책상 앞에 무겁게 앉아 형광등을 끌어당기며 노자의 한 자락을 펼치는 심정.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노자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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