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속의 매매소리


사진. 연천 고대산 2020.1.13. ⓒ 이굴기




한겨울 펄,펄,펄, 내리는 눈송이를 보면서 한여름 맴,맴,맴, 우는 매미소리를 떠올리는 버릇을 가진 지가 여러 해다. 둘이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결정적 증거를 들이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매미하고 눈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증거 또한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이런 어수선한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6월 땡볕의 매미소리를 소환하는 것으로 냉기는 한결 가시고, 괜히 얼어붙고 주눅 든 나의 어깨도 한 꺼풀 기지개를 켤 수 있는 것. 냉냉한 마음의 한 조각도 잠시 데울 수 있는 것. 냉수 먹고 속 차리는 심정으로, 작년 여름에 적었던 글을 꺼내보면서 유독 어수선한 겨울 하루를 달래보느니...........



아주 오래 전. 서른의 깔딱고개를 넘을 무렵. 일은 안 풀리고 미래는 답답하고 응급처치라도 아니 하면 하루도 건사하기 힘들어 해묵은 공책에 빽빽하게 글씨를 쓰던 날이 있었다. 是甚嗎, 喫茶去, 放下著....이래저래 주워들은 화두의 흉내를 내며 한 글자를 빽빽히 썼다.


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

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

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覺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나면 흰 종이에 검은 매미들이 달라붙어 한꺼번에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 같았다. 넌 대체 뭐 하는 놈이냐? 나처럼 울지도 못하느냐? 혀를 차는 것 같기도 하였다.


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쯧


요행히 환갑을 맞이하게 된 육십의 여름. 놓았다 들었다 일은 여전히 안 풀리고 하루 건너기가 힘들고 시간은 마구 졸아들어 이젠 미래도 많이 남지 않았다. 세월을 너무 탕진하고, 함부로 다 까먹었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미구에 저녁이 들이닥치고 나의 생도 그 끝이 훤히 보일락말락 하는 육십의 여름. 논어 첫 구절 學而時習之不亦說乎를 풀이하는 책을 뒤적거리다가 내 뒷통수를 때리는 네 글자를 만났다.


學者覺也*


옛날 빽빽하게 썼던 공책은 어디에서 잃어버렸을까. 그날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창 너머 길가의 상수리나무를 붙들고 통곡하는 매미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學者覺也 학자각야: 배우는 것은 곧 깨닫는 것이다. <論語集疏>의 한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