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재하 시험을 하다 - 건축 일기 9


우리가 새털같이 가벼운 몸으로 이슬만 먹고 산다면 가랑잎 같은 집에 살 수 있을까. 옷장 가득 검은 옷들, 장롱속의 이불, 검은 머리통을 받치는 베개, 화장실의 변기 그리고 날마다 쌓이는 무거운 근심들. 짧게 열거해보아도 어느 것 하나 생활필수품이 아닌 것 없으니 가랑잎에 거주할 수 있는 조건을 나는 갖추지 못했다.


아니다. 말을 잘못했다. 가랑잎이라도 바람만 불면 움직이니 정처를 정할 수 없다. 그것은 정주하는 자의 집으로는 적당하지 못하다. 나의 집이란 구청에서 정해주는 지번(地番) 위에 정확히 얹혀야 한다. 그러니 집을 짓는다는 것은 요약하자면 건물을 땅에 튼튼히 비끄러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고 비가 와도 주저앉지 않고 지진이 와도 부서지지 않도록.


우리가 어느 건물에 들어섰을 때 육중한 느낌을 갖는 것은 나의 육체가 실로 보잘것없이 작고 여린 탓도 있지만 그게 실은 바닥에서 오는 어떤 둔중한 힘이라는 것을 안다. 보이지 않아도 내 전신을 덮쳐오는 그것이 전봇대처럼 생긴 phc 파일이 전해주는 힘이란 것을 이제는 알았다. 집은 그냥 대지 위에 슥슥 무겁게 얹어놓는 게 아니다. 그랬다가는 여름철 태풍 한방이면 듣도보도 못한 주소지로 날아가 처박히는 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파일을 땅속 깊숙이 찔러넣는 것이다. 철근과 시멘트로 만든 파일이라고 냥 무턱대고 땅에 꽂아서도 안 된다. 그게 힘을 받으려면 땅속에서 의지처가 있어야 한다. 땅은 인체처럼 피부와 뼈로 이루어져 있다. 그 파일을 물렁물렁한 살이 아니라 뼈에 단단히 고정시켜야 힘을 받는 것이다.


야속했던 땅의 마음을 알고 보니 우리가 준비했던 15미터 파일로는 길이가 짧다는 것을 알았다. 급하게 수배를 해서 5미터짜리를 확보했다. 그리고 본격 시공에 들어갔다. 주차장이 들어서는 지하에서를 3미터를 더 판다. 그러니 총 23미터 깊이를 파고 들어가 지반을 만나 그 위에 파일을 얹어놓는 셈이었다. 이제 총 51곳, 153개의 파일이 우리 집을 지탱하는 것이다.


그 작업은 조금 복잡했다. 먼저 드릴로 구멍을 뚫고 15미터짜리 파일을 넣은 뒤 다시 5미터짜리 파일을 일일이 용접해서 쿵, 아래로 떨어뜨렸다. 위험하기에 아주 가까이 가보지는 못했지만 지하 암반으로 가 닿는 소리가 내 발밑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국수가락은 그 딱딱함이 아니라 삶은 상태의 풀어짐으로 인간에게 힘을 공급한다. 국수가락보다 엄청나게 굵고 건장하다 해서 입안이 아니라 땅속으로 들어가는 파일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땅을 보건대 그냥 가만히 있다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땅은 바닷물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순간순간 출렁대고 이동하고 엄청난 압력이 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파일을 박고, 그 위에 원두막처럼 기초바닥을 세우고, 그 위에 주차장, 1층, 2층, 3층, 4층을 세운다. 아까 말한 옷장 가득 검은 옷들, 장롱속의 이불, 검은 머리를 받치는 베개, 화장실의 변기 그리고 날마다 쌓이는 무거운 근심들. 짧게 열거해보아도 어느 것 하나 생활필수품을 하나하나 들이는 것이 건물이다. 더구나 우리 건물은 단순한 주택이 아니다. 이곳의 주생산품은 그 무겁고 무겁다는 세상의 지혜를 가득 품고 있는 책이 아닌가!


그래서 파일이 과연 제가 짊어질 이러한 무게들을 모두 감당할 만큼 튼튼한 지를 검사해야 한다. 그 시험을 “말뚝 동재하시험”이라고 했다.


재하를 검색해보았더니 이런저런 설명이 나왔다. 한자를 알려고 했더니 나와 있지를 아니 했다. 추측컨대 재하는 載荷일 것 같았다. 하중을 실은 정도라는 뜻이겠다. 재하 시험은 동(動)재하와 정(定)재하가 있다고 했다. 우리 공사는 동재하만으로 된다고 했다. 이는 삽입된 파일(말뚝)을 다시 때려서 그 들어가는 정도를 실펴서 ‘항타력, 타격에너지, 말뚝의 건전도, 말뚝의 선단지지력’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말뚝이 몇 개 들어가고 어느 하나를 샘플링 해서 동재하 시험을 했다. 검사업체에서 나온 직원은 젊은이였다. 흰 가운은 안 입었지만 검사 장비를 들고 안전모를 쓴 모습이 왕진의사 같았다. 그는 천천히 파일을 뚫는 현장으로 천천히 접근해서 신속하게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설계된 것보다 안전한 수치 이내에 든다, 라고 했다. (이로부터 며칠 후 받은 시험보고서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궁리사옥 신축공사 현장의 42번 파일(관입 깊이 23.9미터)의 동재하 시험 결과 말뚝의 지지력은 86.60ton/本으로 나타났다. 이는 설계하중 60.0ton/本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것으로 사료된다.)


물이 나와서 낭패를 볼 뻔 했다가,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안전하게 깊이 천공을 한 셈이 되었고, 동재하 시험도 가뿐하게 통과했고, 이제 파일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다. 공사 중에 안전사고만 예방하고 땅의 속마음을 훔치는 일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