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가 딱딱하게 굳었다. 보기 좋게 굳었다. 건축을 함에 있어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기초공사이다. 이 기초골격을 튼튼히 세우면 절반은 끝난 셈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이제 나머지는 방수, 소방, 그리고 외벽에 벽돌을 붙이고, 배선을 하고 기타 시설을 하는 것이 남았다. 내부 공사이니 비가 와도 전체 공정에는 차질이 없다. 그럭저럭 큰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콘크리트가 제대로 나왔을까. 궁리 건물은 반은 벽돌로 붙이고 나머지 절반은 노출 외벽이라서 콘크리트가 그대로 외벽이 된다. 지하층이야 문제가 되질 않겠지만 1층부터는 콘크리트의 품질이 아주 중요하다. 거푸집을 떼어내자 콘크리트 맨살이 드러났다. 단단하게 굳은 벽이 튼튼하게 섰다.
되메우기도 했다. 해자처럼 푹 파여 있던 곳을 흙으로 메우자 궁리의 지하층은 그야말로 지하로 사라졌다. 처음 흙을 파던 순간이 생각났다. 어떻게 저 딱딱한 땅을 파고 건물을 들어앉을까 몹시 그 과정이 궁금했었다. 그러나 이제 두부 자르듯 흙을 파내고 들어내고 우리가 원했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빈 공간을 흙으로 채운 것이다.
이젠 지상에서 지하로 마음대로 갈 수가 없게 되었다. 대신 지상에서 지상으로 바로 갈 수 있다. 작은 섬처럼 떠 있고 작은 외나무다리로 연결되었던 공사 현장이 이제 육지와 바로 연결된 것이다. 예전에 비해 접근성이야 좋았지만 아직 건물의 잔해와 버팀목, 거푸집 등으로 현장은 여전히 어지러웠다.
정리해본다. 버림 콘크리트를 치고 먹줄을 놓고 지하 바닥을 쳤다. 이제 지하의 벽과 1층의 바닥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하실의 공간이 생기고 1층 바닥이 완성된 것이다. 2층으로 연결되는 벽의 철근만이 남고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건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좋은 게 하나 있다. 잘 되든 못 되든 (아니, 못 되면 절대 안 된다!) 다음 국면으로 깨끗하게 넘어간다는 것을 육안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제 지하로 갈 것은 지하로 가고 위로 갈 것만 남아서 1층 바닥에 대기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공사가 다 된 줄로 알았더니 지하는 지하대로 분주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벽의 거푸집은 하루 만에 떼내었지만 바닥의 밑부분에 댄 거푸집은 콘크리트가 더 굳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곳은 중력이 그대로 작용되어 힘을 받는 부분이라서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버팀목이 삼림처럼 빽빽했다.
그 규모는 조금 다를 뿐, 다시 동일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1층 바닥에 다시 먹줄을 놓고 2층으로 올라가는 외벽과 2층의 바닥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1층부터는 외부로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니 디자인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품질에도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궁리 건물은 내부 면적을 꽉 채운 건물이 아니다. 규모를 최적화해서 내부에 중정을 두었다. 하늘에서 본다면 미음자형 건물이다. 표면적이 그만큼 넓다. 외부가 내부에도 있는 셈이다. 그러니 바깥에도 벽을 만들고 중정에도 작은 벽을 만들어야 한다. 공사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외부에는 서포터가 둘러쳐져 공사장의 분위기를 더욱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회랑처럼 길게 돌아가는 발판으로 작업자들이 분주했고 벽에 매달려서 망치로 못을 박기도 했다. 제법 높은 1층의 벽. 안전사고에 그 어느 때보다도 유념해야 했다.
거푸집은 기성품이다. 기둥이나 좁은 면적에는 그냥 대기도 했지만 벽은 여러 개를 연결해서 크게 만들어야 했다. 이것은 만들기도 옮기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벽은 바깥에서 만들어 기중기로 들어 날랐다. 뚝딱뚝딱 망치소리가 드높았고 코팅된 검은 합판으로 1층 벽의 자리로 가서 제자리를 찾아 착착 들어섰다. 얼핏 보면 연극 무대를 꾸미는 작업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생은 연극이라는 진부한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집이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극장인 것은 옳고도 맞다. 애초 미술이나 음악은 건축에 비한다면 예술의 한 부분집합에 불과하다. 그림은 집의 벽에 걸리기 위해서, 시는 응접실에서 낭송하기 위해서, 음악은 건물의 공간에서 울려퍼지기 위해서 발달한 장르라는 것이다. 건축이야말로 종합예술인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어느 책의 한 인상적인 대목을 떠올리면서 심학산을 배경으로 노을 속의 궁리 건물을 바라보았다. 2층의 볼륨감은 지하에 파묻혀 있을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고개가 아플 정도는 아니었지만 쳐다보는 데 압도감을 충분히 주는 게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 건물 외벽에 둘러쳐진 수직과 수평의 지지대와 우뚝 솟은 철근을 보자니 중학교 때 배운 그림 하나가 불쑥 떠올랐으니, 그것은 그 유명한 몬드리안의 추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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