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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골조를 완성하다 – 건축 일기 29


지하가 어느 정도 완성되고 1층도 자재를 걷어내면서 내부가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유리창도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창문을 통해서 바깥을 보는 풍경은 바깥에서 바깥을 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비로소 내부와 외부가 분리되었다. 그것은 한 경계를 통해서 다른 경계를 넘는다는 것이었다. 유리창을 달면 그 창안으로 그림 같은 풍경이 쫄깃하게 수렴되는 것이다.


1층 출입구의 주위에 공구리를 칠 때 작은 사고가 있었다. 거푸집의 약한 고리가 떨어져나가면서 벽으로 밀려드는 콘크리트의 무게와 압력을 견디지 못해 벽이 툭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 힘은 대단해서 철제 지지대를 휘게 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다행이 그 정도로 수습이 되었고 이제 거푸집을 떼고 그 정도를 살펴볼 참이었다.


궁리 건물은 조금 복잡하다. 중앙에 중정을 두었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내부는 그게 곧 외부이기도 한다. 건물 안의 중정이 아니라 건물 바깥의 중정이기도 한 것이다. 사고가 난 곳은 절묘하게도 중정으로 벽이 꼬부라져 들어가는 곳이었다. 얼른 보기에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해도 될 만큼 보기에 흉하지는 않았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철근 콘크리트도 두부 자르듯 원하는 만큼 잘라낼 수가 있다고 한다. 아무튼 전체 외관을 다 완성한 후에 그 튀어나온 부분의 처리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다.


2층까지 완성되고 나자 일의 절반이 확 줄어들었다. 궁리 건물은 전체적으로 보아서 미음자(ㅁ)형이다. 그중 한 변에는 1층을 올려서 3층이 되고, 다른 한 변에는 2층을 올려 4층이 된다. 나머지 두 변은 그냥 데크로 두었다. 그래서 바람도 잘 통하고 햇볕도 전체에 골고루 잘 스며들게 되었다.


2층까지 완공이 되었지만 아직 계단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중력이 수직으로 작용하는 천정 부분에는 아직도 지지대를 철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콘크리트가 더욱 바짝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궁리 작업 현장의 바로 옆에는 보고사 건물이 착착 올라가고 있다. 궁리보다 한 달 늦게 시작했지만 작업 속도가 빨라서 거의 비슷하게 준공을 할 정도로 진행이 빠르다. 보고사는 정사각형의 건물이라 안전펜스를 둘렀다. 궁리 건물은 이리저리 들쭉날쭉한 건물이라 장치를 할 수가 없다.


3층과 4층의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규모가 작으니 콘크리트 양도 적었다. 마지막 공구리를 치는 날, 보고사의 안전펜스 위로 올라가서 궁리 건물의 작업 현장을 지켜보았다. 제법 상당한 높이가 드디어 완성되고 마지막 공구리를 무사히 쳤다. 이제까지 한 번의 안전사고도 없이 무사히 궁리 건물이 대지에 튼튼히 뿌리를 박은 것이다.


지하에서 1층으로,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몸을 조금만 숙이거나 돌리면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천정을 받치는 최소한의 받침대를 제외하고 모두 철거되었다. 1층과 2층은 내부를 제대로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벽으로 둘러싼 아늑한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유리창에 유리는 없었지만 바깥과 내부가 확연히 구분되는 공간이었다.


궁리 건물은 중앙에 중정(中庭)이 있다. 이 중정이 있어 내부는 외부와 통하고 외부는 내부와 섞인다. 어쩌면 이 중정을 만들기 위해 사면의 벽이 들러리로 서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중정은 스스로 만들어 지는 게 아니었다. 각층이 만들어지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유능한 금속공예장이라도 손가락이 들어가는 반지의 구멍을 직접 만들 수는 없다. 그 구멍은 구리 반지를 만들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그렇다. 구리로 반지를 만들면 허공이 반지구멍을 찾아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1층, 2층이 만들어지면서 중정이 서서히 모양을 갖추더니 3층 4층이 올라가고 드디어 중정이 완성되었다. 말하자면 각 층을 벽으로 삼는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이 중정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재미있는 궁리로 등장하였다. 나무를 심을까. 돌확을 비치할까, 대나무를 심을까, 아니면 그냥 텅 빈 공간으로 둘까. 그것도 아니라면 흙을 도톰하게 일구어 봉분처럼 조성해볼까.


마지막 공구를 치기 며칠 전, 감독관이 나를 불렀다. 이제 무사히 한 매듭을 지어가는 이때, 상량판을 준비해줄 테니 붓글씨으로 상량문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생각을 아니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 그 판을 쓰려고, 또 상량식을 하려니 잘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 또 이런 날이 올까 싶기도 했다.


잘 다듬은 상량판을 받아 사무실로 오는 날, 기분이 묘했다. 드디어 건물에 관한한 한 매듭을 짓는구나 하는 실감이 왔다. 붓글씨로 상량문 연습에 돌입하기로 마음먹고 심학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궁리 건물을 바라보았다. 삐쭉삐쭉 박혀 있는 철근 자국, 누가 해 놓은 저 천의무봉한 바느질 자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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