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귀 맞은 영혼>,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하여



이런 일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잔뜩 기대에 부풀어 극장의 매표소로 갑니다. 한데 바로 내 앞 사람에게 오늘의 마지막 표가 주어집니다. 사무실에서는 동료 직원이 어쩌다 그런 실수를 했느냐면서 사뭇 훈계조입니다. 애인은 다른 친구를 사귀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서로간에 거리를 좀 두잡니다.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꺼내 보니, 내가 지원했던 자리에 유감스럽지만 딴 사람이 채용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잘 아는 사람이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한데 나는 초대받은 적이 없습니다. 친구에게 멋진 선물을 보내놓고서 소포 잘 받았다는 연락이 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지만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멀어진 후, 지금까지 받았던 호의와 관심을 아쉬워합니다. 나에게 무척 소중한 관계였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일들이나 이와 비슷한 많은 일들이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마음상함이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마음을 다쳤다고 느낄 때 일어날 수 있는 반응 전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스스로의 가치가 깎인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이런 사건은 대개 비난·배척·거절·따돌림, 또는 무시 같은 것들입니다. 가치 폄하는 우리의 인격과 행위 또는 다른 사람에게 우리 자신이 갖는 중요성과 관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존중되거나 존경받지 못하고, 받아들여지지도 이해받지도 못한다고 느끼게 하므로, 무시당했다는 가치 폄하의 경험은 우리의 자존감을 직접적으로 건드립니다.


마음상함은 자기 자신을 온전하고 한결같은 존재로 경험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감정에 상처를 입힙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깊은 불안에 빠지게 되고, 무력감과 실망·고통·분노·경멸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상대로부터 완강히 돌아서서, 복수와 응보(應報)를 끊임없이 궁리합니다. 마음을 다친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절대로 그렇게는 안 돼. 그런 식이라면 나는 손떼겠어”라고 말입니다.


마음상함이라는 반응과 자존감, 이 둘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서로를 조건지우기조차 합니다. 마음상함은 자존감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으며, 그 결과 자기 회의에 빠지고 정체감이 흔들리게 됩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평소에 ‘예민한’ 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상처를 잘 받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존감이 매우 쉽게 흔들립니다. 모욕감을 잘 느끼고 아주 작은 꼬투리만 있어도 금세 자기 속으로 들어가버려, 한동안 말도 걸 수 없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병이 들었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이 너무나도 커서 몹시 괴로움을 당하는 편에 속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중에는 실제로 만성적으로 마음상한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데 이들이 이렇게 자주 마음을 다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자업자득인 면도 없지 않습니다. 즉, 평소 이들의 태도가 하도 어정쩡하다 보니 그것을 갑갑하게 느낀 상대방이 어느 순간 그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불쑥 한마디하게 되는 것이지요.


좀 신경질적인 어조라든가 거친 단어, 또는 치켜 올라간 눈썹 등으로 나타나는 상대방의 이 퉁명스러움이야말로 이들에게는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아주 확실한 충분조건으로 작용합니다. 일이 이쯤 되면 어리둥절한 것은 오히려 상대편입니다. 왜 저 사람이 저렇게 화를 내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반응으로 보건대 아마도 내가 뭔가 자극을 한 모양이다, 하고 짐작하는 게 고작이지요.


마음이 상하는 건 삶의 한부분입니다. 마치 우리가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자신의 자존감에 공격을 받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비판받고 거절당하고 따돌림당하는가 하면, 버림받기도 하고 배척당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남들에게 사랑받고 받아들여지고 칭찬받고 선망받기도 합니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진심으로 바란다 해도, 남들의 거부를 겪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상했음을 주관적으로는 무력감·분노·경멸·실망, 그리고 고집 같은 반응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반응들 뒤에는 고통과 불안·수치심 같은 감정이 숨겨져 있는데, 많은 경우 당사자 자신은 이것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표현하지도 못합니다. 그 대신, 이렇게 마음이 상하면 대개는 폭력적인 형태로 ‘가해자’를 공격합니다. 동시에, 분노와 경멸 같은 감정은 마음을 다친 아픔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반응이기도 합니다. 마음상한 고통을 종식시키고 중화하는 게 그 목적이지요.(...)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마음상함을 계속 경험합니다. 배척이나 한계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에 다르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는 있겠지요. 노화나 죽음 같은 실존적인 마음상함조차, 하기에 따라서는 극복되고 의미 있는 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마음상했다고 느끼는 사실이, 실은 마음을 상하게 하는 그 행위 자체보다는 우리 자신과 더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늙어가는 것은 겁쟁이들의 몫이 아니다”고 베테 다비스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현실을 마주하고 능동적으로 현실에 대처해갈 용기를 일궈낼 때에만 우리는 우리가 당한 일, 우리에게 충격을 준 일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만 마음상함이 우리의 삶에 독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