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차의 가호 - 건축 일기 1


2014년 2월 4일. 아침 출근길이 조금은 특별했다. 늘 향하던 사무실이 아니라 행선지가 달랐다. 오늘의 출근길이 조금 특별했다면 오늘 벌어진 일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은 궁리출판이 오래 소망해왔던 궁리사옥의 첫걸음을 떼는 날이다. 이미 아는 분들이 있겠지만 궁리는 오래전 파주출판도시에 터를 잡기로 하고 나름의 준비를 해온 터였다. 회사 형편을 고려한다면 자칫 무모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공간이 새로운 기회도 열어줄 것이란 기대를 걸고 용기를 내었다. 이제 여러 우여곡절 끝에 설계를 끝내고 시공사를 정하고 본격 건설에 착수하기로 한 것이다. 오늘은 그 준비단계의 하나로 지적공사에서 나와서 궁리의 땅의 경계를 확실히 정하는 날이다.


긴장도 되지만 가벼운 흥분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현관문, 엘리베이터, 아파트 그리고 또 자동차 등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한 뒤 올림픽도로를 탔다. 막히고 뚫리고를 반복하면서 차는 가양대교를 지나 어느덧 자유로로 접어들었다. 순식간에 한강을 건넌 것이다.


행주산성을 지나고 호수공원 이정표가 보일 무렵이었다. 앞으로 건너야 할 여러 고비를 생각하면서 차선을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고 천천히 조심운전을 하면서 가는데, 일순 낯선 차 하나가 나의 전방으로 뛰어들었다. 일반승용차도, 화물트럭도 아닌 차였다. 외양을 따진다면 아마도 지금 자유로를 달리는 차종 중에서 가장 특이한 차일 것이었다.


뒷범퍼에 ‘보훈환경’이라는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차. 그 안에 무엇을 싣고 가는지 유리창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차. 고급이나 참신한 디자인을 운운할 그런 차는 아니었지만 세상의 짐 하나를 싣고 나아가는 그런 포스를 지닌 차. 코끼리의 코보다 훨씬 더 긴 호스를 칭칭 화물칸에 두른 차. 아프리카의 초원을 묵묵히 행진하는 코끼리의 뒷모습을 나는 그 차에게서 느꼈다.


짐작하다시피 그 차는 똥차였다. 차가 더럽고 볼품이 없어서 똥차가 아니라 실제로 인간의 똥을 운반하는 똥차였다. 세상의 인심은 도로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법이라서 내차와 똥차 사이로 아무런 차도 끼어들지 않았다. 속도를 그리 내지 않은 채 우리는 한동안 고요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달렸다. 그러자니 운전을 하는 데도 한결 여유가 생겼다. 옆에 챙긴 카메라를 조심스레 조작해서 사진 한방을 찍었다.


똥차를 만나면 행운이라고 했던가. 오늘은 조금은 특별한 날이니 그 속설을 믿기로 했다. 아니 믿고 싶어졌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전 자유로를 질주하는 많은 차들 사이를 슥슥삭삭 헤치고 나의 차 앞으로 홀연히 나타난 똥차가 무슨 행운을 주려고 나타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게 아닌가.


똥차는 일산을 향하는지 장항 IC로 빠져나가면서 나의 전방에서 차선을 바꾸었다.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똥차를 보냈다. 이윽고 내 앞으로 많은 차들이 몰려들어 고요했던 차선의 평화가 깨졌다. 이윽고 나는 경기도 파주시 서패동 471-5번지에 도착했다. 궁리사옥 터였다.


이제껏 고요하던 땅에 불끈불끈 기운이 솟아나는 듯했다. 방치되어 있던 땅에 측량을 마친 기사들이 금을 표시했다. 붉은 도장처럼 스프레이로 말뚝을 박았다. 비로소 확실히 궁리출판의 땅이란 경계가 생긴 것이다. 조그만 감격이 일었다. 그게 무사히 똥으로 나올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땅의 흙을 한주먹 집어 입에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대신 경계를 걸어보았다. 보통의 내 보폭으로 서른일곱 걸음이었다.


앞으로 이 서른일곱 걸음 곱하기 서른일곱 걸음의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첫 삽을 뜨기가 어렵다는데 그래도 무사히 큰일 하나가 지나간 것은 아침에 만난 똥차의 가호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의 공사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