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은 왜 발바닥에서 나올까....깡촌의 시골1


사진. 북한산 2020.3. 1. ⓒ 이굴기




깡촌의 시골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심심하게 방을 뒹굴 때, 그때의 밤은 왜 그렇게 길었던가. 그때의 어둠은 왜 그렇게 까맣던가. 호롱불 아래 놀다가 장판 밑을 들추다가 바짝 마른 호박씨라도 하나 건지면 횡재한 기분이었다. 시간은 길고 좀체 잠은 아니 오고 까까머리 형들과 이런저런 놀이도 시들해질 때 형이 꿀밤 세 대를 걸고 내기를 걸어왔다.


신문지로 도배한 방. 그때는 방이 좁아도 몸이 작아서 괜찮았다. 천장이 낮고 쥐들이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한켠에 짚으로 만든 쌀가마니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어머니가 기르는 콩나무 시루가 있었다. 야, 저 콩나물 시루하고 내 발바닥 두 개 포갠 것하고 누가 더 길까? 그야 뭐 재보나마나 당근 시루라고 말했다가 꿀밤 몇 대 쥐어박힌 기억. 놀라워라, 형의 발바닥 두 개를 이어 붙이니 콩나물 시루를 간단히 눌렀다!


사람의 발바닥, 그거 함부로 볼 게 결코 아니다. 인체 표면적에서 얼마를 차지한다고 그 위에 이 무지막지한 무게를 감당케 하는가. 나무처럼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함부로 돌아다녀도 함부로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힘! 그게 다 저 호떡만한 넓이의 발바닥의 노고가 아니겠는가.


며칠 전, 모처럼 북한산의 보리사-대동사-암문-백운대-숨은벽-밤골공원 코스를 다녀왔다. 산에서는 오전에 한 일이 오후에 다 보여서 좋다. 오늘 나의 궤적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늘과 접면한 북한산의 저 울퉁불퉁한 선분이 내가 발로 그린 곡선이 아닌가. 막걸리가 기다리는 단골집으로 들어가 일행에게 막걸리 세 잔을 걸고 퀴즈 하나를 내었다.


요즘처럼 행복이라는 말이 범람하는 시대도 드뭅니다. 행복도 아마 그 바탕에는 만족을 깔고 있을 것입니다. 만족하지 못하는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자, 그렇다면 우리가 만족한다고 할 때, 왜 발 足자를 쓸까요? 인체의 가장 변방인 발, 어쩌면 참 시시하고 참으로 하찮은 발을 굳이 빌어다 만족이라는 뜻을 표현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