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먼저인가, 음악이 먼저인가 - 연극과 음악 1


고대 그리스 비극을 패러디한 우디 앨런의 영화 <마이티 아프로디테>




약 2천여 년이 흐른 1598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첫 번째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이슬람과 동방교회를 통해 전해진 고대 지중해 문명의 유산이 ‘인본주의’와 만나 찬란하게 꽃을 피운 결과이다. ‘오페라’(opera)는 라틴어 ‘오푸스’(opus)의 복수이다. 곧 개별적인 시, 음악, 미술, 연극, 춤이라는 오푸스가 결합한 것이 오페라이다. 첫 오페라인 자코포 페리(Jacopo Peri)의 <다프네>(Dafne)는 현재 전하지 않지만, 일단 물꼬를 튼 르네상스의 꽃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의 <오르페오>(1607)라는 걸작으로 정점을 이룬다. 여러 예술가가 지분을 가졌지만, 그리스 문명의 영향이 컸던 것일까, 아직 음악은 시를 돋보이게 하는 시녀(侍女)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탈리아의 음악가들은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룬 프랑스에서 각광을 받았다. 루이 14세는 하늘에서 부여받은 왕권을 오페라를 통해 이상화(理想化)했다. 그는 몰리에르(1622-1673)의 말과 장 바티스트 륄리(1632-1687)의 음악을 자기 자신의 춤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그 대표작이 『서민귀족』(Le Bourgeois gentilhomme, 1670)이다. 몰리에르는 장 바티스트 륄리의 음악을 더해 발레를 만들었고, 루이 14세는 터키 사신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이 오페라 발레를 공연토록 했다. 세 사람의 관계는 영화 <왕의 춤>(Le Roi danse, 1992)을 통해 멋지게 소개되었다. 극의 내용은 이렇다.



성공한 중산층 주르댕은 돈으로는 남부러울 것이 없고 오로지 신분 상승이 꿈이다. 그는 귀족의 흉내를 내서 철학과 검술, 시와 음악을 배우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그런 주르댕 앞에 몰락한 귀족 도랑트가 나타나 자기가 귀족이 되는 걸 돕겠다고 속이고, 빚을 대신 갚게 한다. 주르댕의 꿈은 더욱 부풀어 후작부인과의 결혼을 꿈꾸게 된다.

한편 주르댕의 딸 루실은 가난한 클레옹트와 사랑하지만, 아버지는 딸을 높은 신분의 가문에 시집보내려고 하기 때문에 그를 반대한다. 클레옹트는 꾀를 내어 터키 술탄의 아들로 변장하고 주르댕에게 청혼의 뜻을 전한다. 희극은 외국의 왕실과 사돈이 될 생각에 클레옹트를 맞이하는 주르댕의 우스꽝스러운 터키풍 연회로 끝을 맺는다.


후작부인에게 인사하는 예절을 배우는 주르댕





흥미로운 것은 주르댕의 철학 선생이다. 그는 아직 개념도 없던 거창한 인식론이나 관념론, 변증법 따위를 강의하는 사람이 아니다. 철학 선생의 과목은 작문이다. 뭘 쓰기 위함인가? 바로 연애편지이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전하는 역할이 바로 철학 선생의 몫인 것이다. 루이 14세를 위한 작품이니만큼 춤이 매우 중요하다. 음악은 바로 세련된 궁정 예술의 꽃인 춤을 추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이때부터 프랑스 오페라에는 발레가 필수도 들어가게 되었다. 막과 막 사이 휴식 동안에도 여흥(餘興)을 위해 발레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를 ‘디베르티스망’, 곧 희유곡(嬉遊曲)이라고 불렀다.


한 세대를 겪으며 주류 예술로 성장한 오페라 장르에 당연히 모두에 언급한 알력이 생겼다.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만큼 이해관계는 복잡했다. 좋은 뜻으로 손을 잡았던 여러 예술이 이제는 서로 주도권을 갖고자 했다. 한 작품 안에서도 그랬지만, 전체 여가(餘暇) 시장을 놓고서도 시와 음악이라는 대주주는 대결 양상이었다. 대륙의 정치 경제적인 패권을 가져간 18세기 영국에서 가장 첨예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은 원래 독일 작곡가였지만, 성공을 위해 이탈리아의 앞선 오페라를 배우고자 로마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가장 큰 시장이 있는 런던으로 옮긴다. 처음에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가 주도하는 오페라는 태생이 제작비가 많이 드는 장르였다. 참여 인원이 많고 연습 기간도 길었으며 무엇보다 당시 오페라는 마치 오늘날 영화관이 그렇듯이 매년 신작을 무대에 올려야했다. 가장 큰 핸디캡은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말로 공연해야 했다는 점이다. 반면 연극은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에 레퍼토리가 된 고전(古典)을, 그것도 모국어로 반복해서 상연했다. 오페라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이렇게 해서 오페라에서 연극적인 요소를 거둬내고, 사람들에게 익숙한 소재, 곧 성서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작곡한 것이 ‘오라토리오’였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힘이 세진 음악이 공동투자에서 연극을 배제하고 독립한 것이다. 어쩌면 연극 입장에서 보아도 고분고분하지 않은 음악이라는 혹을 붙이고 가느니 독자 노선을 걷게 된 것이 속편할지 몰랐다.



연극의 요소를 버린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가운데 할렐루야






ⓒ 정준호. 2013. 0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