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할 것! 당신 머리는 당신 발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다!



궁리에서 펴낸 <길 위의 수학자>는 조금 독특한 수학책이다. 아인슈타인도 감탄했다는 내용도 그렇거니와 폴 엘뤼아르의 <자유>를 연상케하는 그 형식도 그렇다. 수학자인 아내가 쓰고 삽화가인 남편이 그림을 그린 책.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씨들을 위한 수학적 사고법을 제공하는 책. 궁리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지 않는 책이 어디 있으랴만 이 책에는 특히 지난여름의 고된 땀방울이 알알이 맺혀 있다. 1942년 처음 출간되어 세대를 뛰어넘는 수학의 고전으로 읽히다가 이제사 한글옷을 입은 책이다. 수학이라면 보통 씨에 불과한 자로서 몇 장면을 엮어본다. #1. <지붕 뚫고 하이킥>은 오래전 방송되었던 일일 시트콤이다. 당시 인기가 정말 지붕이라도 뚫을 기세여서 아직도 어느 케이블에서 재방송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제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본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심심하면 빵꾸똥꾸를 내지르는 왈가닥 손녀가 수학에는 영 젬병이다. 시험을 쳤다 하면 빵점이다. 안되겠다 싶어 엄마(오현경분)와 아빠(정보석분)이 나서 특별 교육을 시킨다. 3-2=1를 설명하는데 이런 식이다. 네 손에 사탕 3개가 있어 두 개를 먹었어. 그럼 몇 개 남았니? 1개밖에 안 남지. 그래, 그거야. 그럼 삼 빼기 이는 얼마니? 그러자 빵꾸똥꾸가 하는 말이 걸작이다. 아니 도대체 사탕 세 개와 삼이 무슨 상관이냐구! 이 대목에서 엄마와 아빠는 분통이 터지고 아이한테 두 손을 들고 만다. 말하자면 빵꾸똥꾸는 사물을 추상화하는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이는 실은 빵꾸똥꾸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어릴 적 산수를 배울 때 3원+5원=8원임은 정확하게 알았지만 3+5=8을 잘 모른다.) ‘일반화’와 함께 ‘추상화’는 수학의 주요한 개념이다. 이에 대해 <길 위의 수학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추상화하는 능력이야말로/ 사람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하는/ 두드러진 특징이지./ 추상화 능력은/ 수학자뿐 아니라/ 화가, 음악가, 시인을 비롯해/ 모든 사람이 발휘하는 힘이야./ 어쩌면 언젠가는/ 한 사람이 사람임을 나타내는/ 기준은 지능이 아니라/ 추상화하는 능력으로/ 정하게 될지도 몰라./ (.......) / 명심할 것/ 쥐가 아니라 사람이 되자.”(79-82쪽) #2. 사무실 근처 심학산에 오른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경사는 퍽 심하다. 깔딱 고개가 있어 정상에 도달하려면 한 바가지의 땀을 쏟아야 한다. 산은 도립한 포물선 같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내가 일정한 기울기로 그 포물선에 접근하는 것과 같다. 지금 나는 지구의 표면과 접선하면서 이동 중이다. 나의 등산화 뒤축이 일직선이 아니라 둥그렇게 닳는 건 둥근 지구와 접촉한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말하자면 나뭇잎이나 열매, 산의 능선, 달무리의 둥근 표면들과 교합을 맞추는 건 나도 이 우주의 엄연한 일원이라는 표시! 경사가 심한 산에 오를 때, 힘이 들면 간단한 처치방법이 있다. 보폭을 대폭 줄이는 된다. 그것은 산의 기울기를 미분하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곡선에 접선을 그음으로써 미분이라는 신세계를 개척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면 산을 오르는 것이 평지를 걷는 것과 같은 셈이 된다. 우리는 마분지 같은 종이가 아니라 입체의 공간에서, 사진처럼 정지한 세계가 아니라 영화처럼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런 역동적인 세계를 설명하는 도구인 미적분과 관련해서 이 책은 이렇게 읊는다. “자연에 존재하는 문제들은 대부분/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일어나지./ 아주 작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밝혀줄/ 미분방정식과/ 행성의 전체 궤도 같은/ 거대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밝혀줄/ 적분방정식이 탄생한 거야./ (......)/ 빠르게 변하는 역동적인 세상을/ 연구할 수 있는 장비가 미적분이야./ 그러니까 미적분을/ 수학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어?/ 하지만 2부를 보기 전까지는 단정하지 말자고!” (112-114쪽) #3.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하차벨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횡단보도를 한참 지나쳐 정류소가 있었다. 버스 안에 서서 버스가 서기를 기다리는 동안 거리를 헤아리면 퍽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차에서 내려 두 발로 직접 걸으면 버스정류장에서 횡단보도까지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이라도 적게 걷자는 편한 생각에 심리적 거리가 길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일견 허황된 질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아주 근사한 대답을 해준다. “우리는 지금 적도를 따라가는/긴 여행을 하고 있어./당신 키가 182.88센티미터라면/당신 머리는 당신 발보다/얼마나 더 멀리 갈까?/(.....)/그런 생각은 상식에 어긋난다고/생각할지도 모르겠어./하지만 아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당신 발이/안쪽 원을 따라 도는 동안/당신 머리는 분명히/바깥쪽 점선을 따라 돌 테니까./명심할 것!/당신 머리는 당신 발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다!(42쪽)”




#4. 시원했다. 심학산 정상에서 겨드랑이를 벌려 온 몸에 바람을 통과시켰다.통쾌했다. 저무는 해를 보내고 떠오르는 달도 바라보았다. 그 누구의 매개도 없이, 허락이나 보고도 없이 그저 내 눈으로 바라보면 그대로 바라보이는 저 천체의 궤도!


내려오는 길이다. 무슨 기척이 있어 뒤를 돌아보면 익어가는 도토리가 떨어져 발밑에 구를 뿐. 내가 막 빠져나온 저곳에 나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 조금 전까지 내가 확실히 있던 곳에서 내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면서 이런 궁리도 해본다. 있다와 없다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하지만 관찰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둘은 서로 철썩같이 들러붙어 있다. 무슨 접착제가 아니라 그냥 에너지로 딱 붙어 있다. 인간(人間)이나 나무들이 나사못처럼 둘을 연결시키고 있는 중이다. ‘있어요?’와 ‘없어요?’라는 질문은 사실상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똑같은 말의 무게이다. ‘있다’와 ‘없다’의 성질에 왜 이런 일면의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일까.


무릇 모든 책이 활자와 여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눈을 가진 자에게 활자가 있는 것이라면 여백은 없는 것이다. <길 위의 수학자>는 활자와 여백이 자물쇠와 열쇠처럼 긴밀히 서로를 꽉 맞물고 있다. 또한 수학자인 아내를 위해 화가인 남편이 그린 삽화도 한 몫을 한다. 이런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요소들이 결합하여 수학의 자장을 벗어나 이런 문장들을 낳는다.


“사람의 지식은/ 일시적이기 때문에(208쪽)/ 사람은 반드시/ 변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214쪽)” “인간의 본성은/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다른 사람의 숨통을 끊는 것이 아니야!/ 사람은 훨씬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생명체라고!(218쪽)” “사람이 성취하려면/ 반드시/ 민주주의가 있어야 해(66쪽)/ 하지만 반드시 기본원리에 충실해야 돼.(66쪽)”


#5. 수학과는 오래 전 담을 쌓았으나 그래도 수학은 아름답다는 경지는 있다고 믿는 편이다.눈앞의 모든 사물이 자연이 던진 어떤 언어요 기호일진대 그걸 해독하는 방편은 수학 아니고는 방법이 없다. ㄱㄴㄷ이나 abc로 어찌 저 거대한 자연의 한 귀퉁이나마에게 한마디라도 말을 걸 수가 있으랴. 거의 내려왔는가. 어느 새 컴컴한 어둠이 몰려오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이런 시 한편이 떠올라 보통 씨의 둔한 머리를 씻겨주었다. 


“어떤 늙은이가 내 뒤를 바짝 달라붙는다./​ 돌아보니 조막만한 다 으그러진 내 그림자다.// 늦여름 지는 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김춘수의 산보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