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일단 용기가 있어야 한다. 조리가 있으면 더 좋다. 이 둘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오랜 세월 자기 성찰의 모범으로 꼽히는 것은 이렇게 쉽지 않은 고백의 선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주교라는 교회의 지도자였음에도, 육욕을 참지 못했고 사이비 신앙에 기울었던 젊은 날의 모습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는 방탕과 일탈을 무용담 삼는 치기(稚氣)가 아니라, 자신과 같이 평범했던 사람이 어떻게 하늘의 은총으로 지금과 같은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담담하게 참회하고자 한 것이다. ‘노력하는 한 길을 잃는다’라는 『파우스트』의 이야기가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앞서 『고백록』에 대한 강좌에 덧붙여 소개했던 음악은 두 개가 더 있었다. 작품 전체가 고해의 과정인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과 같은 작품도 고려했지만, 한정된 시간에 그 방대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꼭 적절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또 다른 종류의 고백을 떠올렸다. 성배의 기사 파르지팔의 아들 로엔그린에 대한 이야기이다.
로엔그린 역시 바그너의 오페라로 거듭난 중세 기사이다. 그는 백조의 기사라고도 불리며, 파르지팔이 다스리는 성배의 나라에서 왔다. 로렌그린은 난세에 정통성을 위협받는 왕실의 적통, 엘자와 그의 남동생을 구하고 엘자와 결혼한다. 그러나 속세에서 인연을 맺는 성스러운 기사는 한 가지 조건을 내세운다. 자신의 신분과 정체에 대해 일체의 의문을 제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는 아무도 이 신출귀몰한 기사가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금기란 깨라고 있는 것! 엘자는 첫날 밤 물어서는 안 될 것을 묻고 만다. 로엔그린은 할 수 없이 말하지 않으려 했던 진실을 얘기한다.
머나먼 나라 여러분 발길로 닿을 수 없는 곳 그곳에 성이 있습니다 몬살바트라고 부르지요 빛이 가득한 사원이 거기에 있습니다 지상의 어느 곳보다 아름답습니다 그 안엔 놀라운 축복의 잔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물로 보호받습니다 가장 순수한 사람들이 그것을 지킵니다 천사의 무리가 가져온 것입니다 매년 하늘에서 비둘기가 내려옵니다 놀라운 힘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지요 그것은 성배라고 부릅니다 가장 순수하고 축복받은 신앙이 그것을 통해 기사들에게 전해집니다 성배를 섬기도록 뽑힌 사람은 누구나 하늘의 힘으로 무장합니다 그 어떤 악도 그에게 대항할 수 없지요 그것을 보는 순간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집니다 성배가 먼 곳으로 보낸 사람조차 덕망 있는 투사가 되어 신성한 힘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가 성배의 기사로서 알려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성배의 축복은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알려지면 성배는 모르는 사람들 눈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니 아무도 기사를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알려지면 그는 여러분을 떠나야 합니다 이제 들으십시오 금지된 질문에 답할 테니! 난 성배가 보낸 사람입니다 내 아버지 파르지팔은 왕이십니다 나는 그 기사로 로엔그린이라고 합니다
로엔그린의 자기소개를 부르는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마지막 고백 또한 오페라의 한 장면이다.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는 프랑스 혁명 당시 실존 인물을 타이틀롤로 한 작품이다. 시인이자 혁명가였던 셰니에는 귀족 태생이었지만, 그를 통해 삶과 사랑에 대해 눈을 뜬 맛달레나는 형장의 이슬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내가 들려준 것은 맛달레나가 부르는 ‘사모곡’이다. 이 유명한 아리아는 톰 행크스와 덴젤 워싱턴 콤비가 열연한 영화 <필라델피아>에 삽입되어 두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으로 직장에서 해고된 변호사가 자신을 돕는 흑인 변호사(또 다른 소수자)에게 심경을 대변하는 음악을 들려준다. 워싱턴과 같이 오페라가 익숙지 않은, 이탈리아 말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장면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내 어머니를 내 방 문 앞에서 죽였어요 나를 구하려다 돌아가셨죠 나중에 죽음의 밤에 베르시와 방황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두운 거리를 비추는 침침한 불빛을 봤어요. 나는 봤어요! 내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불타고 있는 것을! 나는 혼자가 되었고, 곁에 아무것도 없었어요! 배고픔과 가난, 약탈과 위험 나는 병이 났고, 착하고 순수한 베르시는 나를 위해 아름다움을 팔았어요! 난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행만 안겨줘요 그때였어요. 비참한 내게 사랑이 찾아 왔어요! 달콤하고 아름다운 곡조의 목소리가 속삭였죠 “살아야 해. 나는 생명이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눈물을 내 가슴에 떨어뜨리려무나! 내가 너와 함께 걷고 너를 도와줄게! 웃고 희망을 가져! 난 사랑이야! 네 주위에 피와 수렁뿐이니? 난 신이야! 난 네 기억을 지울 수 있어! 난 신이야!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와 지상을 천국으로 만들지! 아! 난 사랑이야, 사랑, 사랑!
<안드레아 셰니에> 가운데 ‘어머니는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
영화 <필라델피아>는 이 아름다운 노래를 가감 없이 모두 들려주는 데서 더 나아가, 톰 행크스의 집을 나선 덴젤 워싱턴이 자기 집에서 잠든 가족을 돌아보는 장면에서 똑같은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한 번 들려준다. 영화는 알아서 찾아보시고, 거기에 입힌 실제 칼라스의 노래를 만나보자. 음악은 결국 모두 ‘고백’ 아닌가!
ⓒ 정준호. 2013.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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