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위의 참선


여행 첫째 날: 1968년 7월 8일 월요일 [ZAMM 1장부터 3장까지]


여정: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Minnesota Minneapolis)를 출발하여

          레드 리버 밸리(Red River Valley)를 거쳐

          노스다코타 오크스(North Dakota Oakes)에 도착


숙소: E&I 모텔 (오크스 소재)

영화에 ‘로드 무비’라는 장르가 있다. 문학에는 그런 식으로 장르를 구분하여 지칭하는 말이 없지만, 그건 드물어서가 아니라 지극히 당연하여 굳이 장르로 구획할 필요가 없어 그러지 싶다. 문학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크든 작든 편력이 깃들어 있다. 저 멀리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가까이 『파이 이야기(Life of Pi)』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로드 문학’ 아닌 게 드물다. 사실, 길 떠나는 여행자와 그 여행의 풍경을 제재로 삼지 않는 예술이 있을까.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고 인간을 여행자에 비유하는 것조차 이미 죽은 은유가 되어도 한참 된 터인데.


굳이 말하면 ZAMM도 연원이 깊은 ‘길 위의 문학’이다. 첫 장면부터 여행자 상념이 드러난다. 화자는 세상의 수많은 여행자처럼 하루 여행길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과 이튿날 일어나 하루 여행길을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여행자 상념에 잠긴 채 그것을 공책에 옮겨 적는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ZAMM에선 이런 기술이 독자가 잠시 숨 고를 수 있도록 작자가 배려한 것일 뿐이다. 작품 내내 이런 낭만적 정서가 고개를 내밀지만, 오히려 그것은 거세게 몰아치는 정신의 폭풍 사이에서 얼핏 비치다 마는 적막 고요일 뿐이고, 중심은 가벼운 상념 사이에 놓인 정신의 거대한 폭풍에 있다. 매번 그 강도를 더하며, 책 전반을 흐르는 정신의 폭풍을 화자는 ‘쇼토쿠아(chautauqua)’라 이름한다.



아이오와 오드볼트에서 개최된 쇼토쿠아. 연대 미상.



원래 쇼토쿠아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널리 유행했던 대중 교양 집회를 가리키는데, 뉴욕 주 쇼토쿠아 호숫가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여 쇼토쿠아라고 불린다. 쇼토쿠아가 열리면 미국 전역의 여러 저명한 연사와 예술가들이 초대되어 강연과 공연을 펼친다. 요즘으로 치면 인문학 순회 강좌인 셈이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쇼토쿠아를 “가장 미국적인 것”이라고 부를 정도로 쇼토쿠아는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렸지만, 라디오와 같은 전파 매체 보급으로 급속히 퇴화하였다.


화자는 이번 모터사이클 여행이 자신만의 쇼토쿠아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60년대엔 이미 죽은 낱말이 되다시피 한 ‘쇼토쿠아’를 화자가 다시 끌어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화자는 자신의 의도가 “[오늘날]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은 더 빨라지고 더 넓어지긴 했지만, 그 흐름의 깊이는 오히려 얕아진 듯”1보이므로 침전물로 얕아진 “옛 물길을 더 깊이 파는 일”2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옛 물길’이란 미국인의 정신사에서 가장 고양되었다고 할 수 있는, 쇼토쿠아 전성 시절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이다. 화자는 자신의 임무가 그 깊고도 뚜렷한 의식의 흐름으로 지금의 정신을 돌려놓는 것이기에 그 방법으로 쇼토쿠아를 말한다.


그런데 쇼토쿠아는 동양 불교문화의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닮았다. 세월 풍파에 전의되어 지금은 세속의 소란한 짓거리를 일컫는 말이 되었지만, 본디 불교 문화에서 ‘야단법석’이란 야외에 강단을 만들어놓고 사부대중[四部大衆] 앞에서 법을 설하는 귀한 자리였다. 그 연원을 영산회상(靈山會上)에 두는데, 영산회상은 부처가 그 자리에서 법화경을 설했다고 하는 인도 영취산 법회를 가리킨다. 어쨌든 배움의 자리라는 점에서 쇼토쿠아와 야단법석은 닮았고, 하나의 축제처럼 치러졌다는 점에서 둘은 더할 나위 없이 닮았다. 화자가 아들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는 여지없이 본래 의미 그대로의 ‘야단법석’이다.


물론 화자는 쇼토쿠아라는 이름 아래 토론이나 강설만 하는 게 아니다. 참선[參禪]도 한다. 그의 참선은 가만히 앉아서 참선하는 쪽이 아니라 생활하는 가운데 참선하는 쪽이다. 좌선[坐禪]보다 매우 요령 넘치는 행선[行禪]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의 인용들을 보자.



(가)“모터사이클 위에 올라타면, 그 프레임은 사라진다. 만물과 온전히 만난다.”3


(나)“ (…)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면 풍경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풍경과 하나가 된다. 당연히 폭풍우도 그것과 하나다.”4


(다)“소리지르는 걸 좋아하지 않고서야, 모터사이클을 달리면서 진중한 대화를 하기란 어렵다. 대신 그 순간 삼라만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것을 관조할 수 있다.”5


(라)“이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과 그치지 않는 바람 속에서도 그녀는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단조로움과 따분함을 인정할 때 간혹 그 모습을 드러내는 그 무언가를. 지금 그것은 여기에 있으나, 나는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른다.6


(마)“방기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굴함 없이 따져보고, 쉼 없이 궁리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겠다. 좋아서가 아니라 마음에 켕긴 바 오매불망 할 도리 외엔 없기 때문이다.”7



(가), (나), (다)는 무엇보다 행선의 묘미를 하나하나 잘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몰아’니 ‘명상’이니 하는 표현들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화자에게 모터사이클은 그저 탈 것이 아니라, 참선 수행의 한 방편인 것이다. 행선을 하는 화자는 모터사이클 위에서 참선 수행을 하는 자다. 그리고 (라)는 참선의 고비라 할 수 있는 단조로움이나 따분함과 같은 수행의 마디를 가리키는 동시에 선불교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불립문자[不立文字]나 언어도단[言語道斷]를 잘 보여준다.

끝으로 (마)는 참선의 태도라 할 수 있는 오매불망과 용맹정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선가에 그런 말이 있다. 한 번 쇠뿔을 당기매 그것이 빠질 때까지 놓지 말라는. 이리 보면 쇼토쿠아의 주제는 하나하나가 일종의 ‘화두’인 셈이다. 여러 작은 화두는 하나의 큰 화두로 나아가는 길이 되는데, 화자가 잡고 있는 하나의 큰 화두를 화자는 책 전반에 이렇게 밝힌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그 점을 주목하고 조금이나마 궁구해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간 존재와 인간 행위가 이처럼 기이하게 분열된 상황에서 이 20세기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과연 우리가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8



어느 여름, 화자가 아들과 떠난 모터사이클 여행은 구도 여행에 다름 아니다. 구도 여행의 방편 은 야단법석과 참선이다. 야단법석은 부처의 가르침을 전해 들을 길이 드문 대중을 위해 법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며, 선은 자기 마음자리를 밝혀 어리석음과 미혹으로부터 스스로 깨치는 것이 목적이라 할 수 있는데, ZAMM에선 ‘쇼토쿠아’라는 표현 아래 이 둘을 모두 아우른다. 모터사이클이 멈추는 자리에서 화자는 사람들과 ‘야단법석’의 자리를 만들고, 모터사이클이 움직이는 데서 화자는 선을 수행한다.



25주년 기념판 ZAMM 표지 그림. 연꽃 꽃받침에 스패너 꽃술이 돋은 그림.


그런데 그는 동양사상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야단법석을 마련하고 참선을 했을까?


1948년, 화자는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미네소타 대학 철학과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한다. 그리고 1951년에는 인도 베나레스 힌두 대학교로 유학까지 간다. 선에 대한 이해와 실천은 이 시기와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양사상은 그때만해도 그에게 어떤 답을 제시해줄 수 있는 깜냥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마야’, 즉 환영으로 본다는 인도인 철학 교수의 말에 그는 절망적인 한계를 느꼈다.


그럼에도 동양사상에서 길을 찾아 보려 했던 이 역정은 그의 잠재의식 속에 어떤 이미지를 심어 놓았는데, 그게 바로 ‘선’이었다. 선은 그에게 환상을 제거하는 최상의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이미지로 무의식에 자리했다. 하지만, 한때 그에게 있어 환상을 제거하는 유일의 방법은 논리와 경험이었다. 그런 그에게 동양의 선이란 신비적 방법론으로서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대환란을 겪으며 그에게 있어 유일무이의 절대적 방법론이었던 논리와 경험이 파국을 맞고 난 뒤, 그는 무의식에 잠재된 이미지였던 ‘선’을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침내 그 인연을 짓기에 이른다.




1.  … the stream of national consciousness moves faster now, and is broader, but it seems to run less deep (7-8)


2.but simply dig deeper into old ones (8)


3.On a cycle the frame is gone. You’re completely in contact with it all. (4)


4.(…) on a cycle you’re in the scene, not just watching it, and storms are definitely part of it. (21)


5.Unless you’re fond of hollering you don’t make great conversations on a running cycle. Instead you spend your time being aware of things and meditating on them. (7)


6.I thought maybe in this endless grass and wind she would see a thing that sometimes comes when monotony and boredom are accepted. It’s here, but I have no names for it. (21)


7.You can never leave it alone. You have to probe it, work around it, push on it, think about it, not because it’s enjoyable but because it’s on your mind and it won’t get off your mind. (11)


8.On this trip I think we should notice it, explore it a little, to see if in that strange separation of what man is from what man does we may have some clues as to what the hell has gone wrong in this twenties century.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