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만나는 작가┃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몸> 편의 공저자 독문학자 안성찬 교수


나는 이성적일까? 감성적일까?


안성찬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인간 영혼과 인간의 삶, 인간 존재에 내재해 있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양상을 두 인물로 나누어서 표현한 작품이에요. 이 소설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두 인물이 독특한 관계를 맺고, 서로 다른 길을 통해서 결국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국내에는 『지(知)와 사랑』, 『지성과 사랑』이란 제목으로도 소개됐어요. ‘나르치스’, ‘골드문트’는 두 주인공의 이름인데, 이 독일어 이름 자체에 많은 것이 암시되어 있죠. 나르치스는 어디에서 따왔는지 여러분도 잘 알고 있고 있죠? 나르치스가 누구죠?



청소년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이에요.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요.



안성찬 |그리스 신화 이름으로는 ‘나르키소스’이고, 영어로는 ‘나르시스’이죠. 프로이트는 이 이름을 따서 ‘나르시시즘’이란 용어를 만들기도 했어요. 이 글을 쓸 무렵 헤세는 프로이트의 제자 C. G. 융과 친분을 맺고 정신분석학에 깊이 몰두해 있었어요. 이 작품에는 헤세가 받아들인 정신분석학의 내용이 많이 들어 있어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헬레나가 있다면, 가장 아름다운 남자로는 나르시스가 있어요. 모든 요정들이 나르시스를 쫓아다니는데, 나르시스는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그래서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사랑해본 적이 없어요. 모든 여자들이 그를 사랑했지만, 그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독특한 인물이죠. 그런데 물을 마시려고 연못을 보다 물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고 처음으로 사랑에 빠져요. 자기 얼굴을 바라보며 붙잡으려고 하지만, 물이 자꾸 부서지죠. 그러다 결국 물에 빠져 죽고 말아요.


나르시스는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자기의 상(象)만 사랑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기애의 상징인데, 나르치스(Narziβ)는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골드문트(Goldmund)를 살펴보자면, 골드는 영어와 똑같이 ‘금’이란 뜻이에요. 문트는 독일어로 입을 가리키는 단어예요. 골드문트는 ‘황금 입’이란 뜻이죠.

나르치스는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인데, 순수한 정신 안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어요. 정신의 세계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정신밖에 알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의 정신을 알 수가 없지요. 우리는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눌 수는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정신을 인식할 수는 없다는 뜻이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사랑을 확인하는 첫 단계는 입술이에요. 그 이전에는 사랑을 예감은 하겠지만, 항상 아슬아슬하죠. 저 사람이 정말로 나를 좋아할까,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좋아할까 고민하다가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이 바로 입술이 맞닿는 때일 거예요.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황금이죠. 골드문트, 황금으로 된 입술이라니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골드문트는 바로 인간에게 있는 감각적인 부분을 상징해요. 나의 정신과 다른 사람의 정신은 하나가 될 수 없지만, 감각을 통해서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다고 느낄 수 있죠.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성향이 있는데 사람마다 성향이 조금씩 달라요. 지성·두뇌가 발달된 사람, 감성이 발달된 사람, 두 가지 성향이 골고루 발달된 사람.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게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나르치스 편인가요? 골드문트 편인가요?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요?



청소년1 |  저는 나르치스인 척하는 골드문트 같아요. 제가 범생이과거든요. 생긴 것부터. 쌓아온 이미지는 그래요. 착한 일 한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성적도 그런 대로 뽑았는데, 하다 보니까 미치겠는 거예요. 야자 하라고 하면 밖에 나가서 산책만 오지게 하다 와요.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하긴 해야 되는데, 하자니까 힘들고 나한테 못할 짓 같고……. 그런 것 때문에 나 자신하고 엄청 싸우고 있어요.


청소년2 |  아직 제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골드문트가 되고 싶긴 해요. 소설 속에서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이끌어주는 역할인데, 저는 이끌림을 받고 싶고요. 골드문트는 자기의 길을 찾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서 다 버리고 떠나잖아요.


청소년3 |  외재적 자아는 나르치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내재적 자아는 골드문트를 원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회는 나르치스를 요구하기 때문에 억눌림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외형적으로는 나르치스에 맞춰 살아가는 듯하지만, 언젠가는 골드문트처럼 내재적 자아를 이끌어내서 자유에 몸을 맡긴 사람이 되고 싶어요.


청소년4 |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행복하게 살면 나르치스든 골드문트든 상관이 없는데, 골드문트에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가끔씩 나르치스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거든요.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생각해봤는데, 개인적으로 규정이나 시스템을 싫어해요. 자기만의 스타일로 변형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어떤 법칙, 예를 들어 전통 같은 것도 반드시 필요하고, 적응하면 나름대로 안정되고 좋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아직 갈 길이 멀었어요.


청소년5 |  중학교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놀고 공부는 건성으로 했어요.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골드문트처럼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내 자신의 이상향은 골드문트인데, 사회는 나르치스를 원하잖아요.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도 저를 나르치스로 보고 있어요. 제가 사실 착하고 바르고 모범적인 아이만은 아니거든요. 내 생각이 있고, 반항적인 면도 있고, 비뚤어지고 싶기도 하거든요. 물론 가끔씩은 나르치스를 원하기도 하지만, 감성적인 면만 있는 것은 또 아니에요. 왔다 갔다 하는 경향이 있어서 적절하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섞어가면서 살고 싶어요.


청소년6 |  저는 나르치스로 살다 골드문트로 죽고 싶어요. 제가 모범생 체질이거든요. 안정된 걸 좋아해서 나르치스로 살 것 같은데, 꿈이 사람을 이끄는 선생님이나 작가예요. 그런데 살다 보면 원하는 것을 못 이룰 수도 있잖아요. 성인이 되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면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꿈을 찾아서 이루고 싶어요. 죽기 전까지 열정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은 저를 나르치스로 보고 있어요. 제가 사실 착하고 바르고 모범적인 아이만은 아니거든요.  내 생각이 있고, 반항적인 면도, 삐뚤어지고 싶기도 하거든요." "언젠가는 골드문트처럼 내재적 자아를 이끌어내서 자유에 몸을 맡긴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행복하게 살면 나르치스든 골드문트든 상관이 없는데……. *     *     *     *

안성찬 | 사회, 부모님, 학교에서 요구하는 범생이의 길……. 내 속에서 피어나는 열정과 자유에 대한 동경…….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자기 안에서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내가 고등학생일 때 ‘고교생치고 철학자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냐’라는 말이 유행했어요. 고교생은 대학진학을 앞두고 미래의 진로를 생각하며 자신과 세계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모두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었지요. 진짜 철학자는 자기 안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격렬하게 싸울 때, 고민하고 성찰하는 일을 피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요? 제가 안 시켜도 어차피 열심히 싸우겠지만, 자기와의 싸움을 잘 하고 나중에 화해도 잘 하길 바랄게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사이에서 갈등하고 대화하는 시기인 여러분이 참 부럽네요. (…)  잠들어 있는 몸의 감각을 깨워라 오늘날의 학교 교육과 제도는 개념만 중시할 뿐, 여러분의 몸이 원하는 것, 자연이 여러분에게 부여한 감각적인 속성을 끊임없이 부정하라고 요구해요. 여러분이 학교에서 느끼는 불만의 근본은 학교가 여러분의 소질을 계발하는 올바른 교육을 베풀려 하기보다는 여러분을 기존 질서와 제도에 적응시키려고만 하는 데 있을 거예요. 세상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참된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자기 교육을 해야만 해요. 요즘 ‘몸 철학’이라는 것이 철학에서 중요한 테마가 되고 있어요. 몸 철학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몸 안에 이미 정신이 있고, 몸 자체가 정신일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몸과 정신, 이 둘은 편의상 나눠놓은 것뿐이지 하나일지 모른다는 것이죠. 동양은 이것을 옛날부터 잘 파악하고 있었지만, 서양의 근대문명은 제도, 규율, 전체 시스템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몸을 부정하고 정신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여왔어요. 정신의 본질인 질서와 규율에 몸이 예속되어온 거죠. 우리나라 역시 근대문명이 요구하는 틀을 받아들이면서, 몸의 본질을 점점 망각하고 있어요. 서양은 19세기까지 철저하게 정신을 강조했지만, 시인 헤르만 헤세, 철학자 니체 같은 이들이 몸을 망각하는 것에 대해 싸움을 벌이면서 요즘에 와서 몸이 강조되고 있죠. 그런데 동양은 일찍이 이런 지혜를 알고 있었어요. 기원전 440년경에 살았던 양자(楊子)라는 인물이 있어요. 정신과 도덕을 강조했던 맹자는 양자를 개인주의자, 쾌락주의자라고 비난했지만, 사실 양자는 지나친 탐닉과 지나친 억제 모두가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하면서, 자연스러운 삶을 강조한 인물이었어요, 그가 했던 말을 읽어주는 것으로 오늘의 강의를 정리할까 해요. 

귀는 소리의 울림을 원한다. 귀에 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면 청각의 발달을 억누르는 것이다. 눈은 아름다움과 색깔을 보기를 원한다. 눈에 이것들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시각의 발달을 억누르는 것이다. 코는 향기와 좋은 냄새를 원한다. 코로 하여금 이런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해주지 않는다면 후각의 발달을 억누르는 것이다. 입은 정의와 불의에 대해 말하기를 원한다. 이에 대해 말하도록 해주지 않는다면 지혜의 발달을 억누르는 것이다. 팔은 화려한 것과 충만한 것을 즐기기를 원한다.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즐거움을 억누르는 것이다. 의지는 방해받지 않고 작용하기 원한다. 의지가 행동으로 옮겨지도록 해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는 것이다.

추상적인 정의는 원래 우리의 입과 맞닿아 있고, 추상명사인 기쁨은 우리의 살과 맞닿아 있어요. 이 둘은 원래 하나였어요. 그래서 정신을 일깨우기 원한다면,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한 몸 안의 모든 능력을 제대로 키워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헤세가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분열된 존재가 되고,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듯이 정신병에 걸려요. 참된 영혼을 갖추지 못하죠. 여러분들은 자기 안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잘 만나도록 해서 참된 의미에서의 성인(成人)이 되기를 바랄게요. 이 책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여러분이 걸어가게 될 그 길에서 좋은 지침서가 될 거예요. (…)


요즘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이 무엇인지 망각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사실 자유로운 인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자신 안에 하나가 되는 인간을 길러내는 게 인문학의 원래 목표예요. 인문학이라는 용어 자체도 이런 의미를 담고 있어요.


‘encyclopedia’라는 영어단어가 뭔지 알죠? 백과사전이라는 뜻이에요. 백과사전이라 하면 많은 지식을 담은 책을 뜻하지만, 그리스어에서 온 이 단어의 원래 뜻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요. ‘encyclo’는 ‘두루두루’를 뜻하고, ‘pedia’는 교육을 뜻해요. ‘encyclopedia’의 원래 뜻은 전인교육이었어요. 진선미를 두루 갖춘 인간, 경기장에서 운동도 하고, 예술도 할 줄 알고, 머리도 쓰고, 사회공동체를 위해서 올바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도 하는 그런 사람을 길러내야 공동체가 제대로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은 ‘encyclopedia’가 단순히 많은 지식을 담은 백과사전이라는 뜻이 되어버렸어요. 지식에 과도한 나르치스만 있고, 골드문트가 없는 현실을 ‘encyclopedia’란 단어가 오늘날 쓰이는 의미를 통해서 엿볼 수 있어요.


인문학은 원래 두루두루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소질을 계발하는 게 목표였어요. 말하자면 자신에게 주어진 귀, 눈, 코, 입, 지성 등을 두루두루 잘 계발하여, 지·정·의를 두루두루 갖춘 인간, 부품이나 노예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공동체의 참된 주인인 인간을 기르는 것이 인문학의 목표였어요. 망각된 인문학의 정신을 되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고전과 원서를 읽으며 스스로 세상을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성찬 : 서강대학교 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과 철학, 예술사를 연구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성과 감성의 평행선』『숭고의 미학』 등이 있으며,『즐거운 학문』『신화』『철학가』『나와 카민스키』『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윤리학』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출처: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_몸 『몸, 태고부터의 이모티콘』(가제) 중에서

이 책은 지난 겨울 길담서원에서 이루어진 청소년인문학교실 ‘몸’ 강좌를 엮은 것으로, 11월 중순에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