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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기┃『 셀링 사이언스 : 언론은 과학기술을 어떻게 다루는가』(3/5 출간)


옮긴이의 말 l 과학언론의 올바른 역할을 생각하며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사람들의 삶 깊숙이까지 침투해 있다. 사람들의 생활은 과학기술의 산물에 크게 의존하고, 일견 간단해 보이는 일상에서의 선택(유전자변형 식품을 먹어도 괜찮은지, 자외선차단 크림을 발라야 하는지, 집 주위에 소각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할 것인지 등등)에도 과학기술과 관련된 판단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 내지 국가 전체의 정책(어떤 부문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할 것인지, 특정한 거대 기술 프로젝트의 추진이 과연 정당성을 갖는지, 상이한 정책목표들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등등)을 결정하는 데도 그러한 판단은 깊숙이 관여한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러한 판단에 필요한 과학기술 정보와 지식을 얻는 데 직접적인 경험이나 공식 교육보다는 신문이나 방송 같은 언론매체의 역할에 크게 의존한다. 과학 연구를 직업으로 하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일반시민들―정치인 같은 정책결정자들도 포함해서―에게 과학언론은 사실상 유일한 정보의 원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과학언론의 사회적 역할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과학과 관련된 특정 쟁점에 관해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시민들과 정책결정자들이 그러한 판단을 제대로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과학언론은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이 책의 저자인 사회학자 도로시 넬킨은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고 단언한다. 주로 미국의 과학언론을 역사적․사회학적으로 분석한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과학언론은 과학의 구체적 내용이나 연구의 과정보다는 ‘대약진’이나 ‘혁명’에 초점을 맞추고, 수많은 연구자와 지원 단위를 필요로 하는 현대과학의 성격을 무시한 채 ‘스타 과학자’를 부각시키며, 과학의 불확실성과 한계를 지적하기보다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 원천으로 과학을 신비화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학 언론보도의 속성은 사람들에게 현대과학에 대한 왜곡된 상을 심어줄 뿐 아니라, 사람들을 계몽하고 권한을 부여하기보다는 무기력증과 냉소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넬킨은 이 책에서 과학언론이 그러한 속성을 갖게 된 연유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미국에서 20세기 초에 과학언론이라는 전문직이 처음 등장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과학의 힘을 우러러보는 과학 기자들의 태도와 새롭고 잘 팔리는 뉴스거리를 쫓는 언론의 속성이 합쳐져 그런 문제가 배태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여기에 최근 과학의 상업화와 함께 언론을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배가되면서 과학언론의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녀는 이런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과학자와 기자라는 두 개의 전문직이 상호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 부분에서 조언하고 있다.


넬킨의 논의는 한국에 있는 우리들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수년 전에 ‘황우석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난리를 이미 겪은 탓이다. 황우석 사태는 획기적 연구성과와 스타 과학자를 쫓는 과학언론의 속성이 국가주의․생산력주의적인 한국의 과학 풍토와 합쳐졌을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황우석 사태가 한창 진행중이던 2005년 11월 말에는 한국과학기자협회가 그동안의 과학보도 행태를 반성하는 자정의 목소리로 ‘과학보도에 임하는 기본자세’라는 일종의 윤리 선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신문의 과학면과 TV 뉴스 시간에 나오는 보도 내용을 보면 과연 ‘세계 최초’, ‘국내 최초’를 전면에 내세우는 보도 경향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과학언론의 현주소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다시금 되돌아볼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역자와 이 책은 제법 오래된 인연을 갖고 있다. 개정판이 출간된 직후인 1997년 초에 이미 원서를 구입해 갖고 있었고, 2001년에는 이 책의 핵심 논지를 축약해 담은 넬킨의 짧은 논문을 번역해 시민과학센터 소식지 《시민과학》에 싣기도 했으며(나중에 역자가 편집한 책 『대중과 과학기술』에도 재수록되었다), 황우석 박사의 두 번째 《사이언스》 논문 게재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2005년에는 이 책의 논지를 빌어 황 박사에 대한 언론보도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으니 짧다고 할 수 없는 인연인 셈이다. 이제 그 모든 것의 ‘원전’에 해당하는 단행본을 번역해 내놓게 되니 그동안 알게 모르게 부담이 되었던 마음의 짐을 하나 덜어놓은 듯해 홀가분하다.


썩 분량이 많지 않은 책인데도 번역하는 데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 기약 없이 늘어지는 번역 과정을 참고 기다려준 궁리출판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며, 황우석 사태 이후 희미해져가는 과학언론에 대한 경각심을 새삼 일깨우는 데 이 책의 번역 출간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10년 2월 김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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