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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허랜드 :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 2』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임현정 옮김




무모한 전진


우리가 착륙한 바위에서 저 마지막의 마을까지의 거리는 15킬로미터에서 25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기분이 잔뜩 부푼 와중에도 숲을 통해 조심해서 이동하는 게 현명하겠다고 생각했다. 테리조차 분명히 남자들이 있을 거라는 굳은 확신 때문인지 열정을 억누르고 있었으며 모두가 각자 충분한 양의 실탄을 소지하고 있었다.

“제프 말대로 모계 중심 사회 뭐 그런 곳이어서 남자들 수가 적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 남자들은 저기 보이는 산속에 살면서 여자들만 이곳에 살도록 하는지도 모르고. 말하자면 국가가 관리하는 일종의 하렘인 셈이지! 어쨌든 어딘가에 남자들이 있을 거야. 자네들, 아이들을 보지 못했어?”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지자 크고 작은 아이들이 도처에서 눈에 띄었다. 성인의 경우 옷차림만으로 성별을 확실히 구별하기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남자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 ‘신을 믿어라, 그러나 우선 낙타는 묶어둬라’라는 아랍속담을 좋아했지.” 제프가 중얼거렸다. 우리는 모두 무기를 손에 든 채 숲속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우리가 나아가는 동안 테리는 숲을 살폈다.

테리가 들뜬 마음을 누른 채 작은 소리로 외쳤다. “문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난 독일에서조차 이렇게 잘 가꿔진 숲을 본 적이 없어. 봐봐, 죽은 가지가 하나도 없어. 넝쿨들도 잘 가꾸어져 있고. 그리고 여기 좀봐.” 테리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제프를 불러 주위의 온갖 종류의 나무들을 보게 했다.

내가 표시석 역할을 맡아 자리를 지키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양 갈래로 흩어져 잠깐 주위를 둘러보고 왔다.

“대부분이 유실수로군. 나머지는 멋진 활엽수고. 이게 숲이라고? 말도 안 돼. 여긴 채소 농장이야!”

“식물학자가 옆에 있으니 좋군. 약용식물이 없는 건 확실해? 관상수는?” 내가 응수했다.

사실 그들 말이 맞았다. 이 우뚝 솟은 나무들은 마치 수많은 양배추처럼 세심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다른 때라면 아마 이 숲은 미모의 수목관리인들과 과일을 따는 이들로 붐볐을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는 시끄러울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물체였으며 여자들은 조심스러웠다.

우리가 숲을 지나면서 본 건 새들뿐이었다. 생김새가 화려한 새들도 있었고, 노랫소리가 아름다운 새들도 있었는데, 너무나 잘 길들여진 새들의 있는 모습이 문명에 대한 우리 생각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가끔 마주치는 숲속의 작은 공터에서 맑은 분수대 옆으로 드리워진 나무 그늘 안에 놓인 돌을 깎아 만든 의자와 테이블, 물이 얕은 새 물통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테리가 말했다. “사람들이 새는 죽이지 않는데 고양이는 죽이는 것 같아. 여기 분명히 남자가 있을 거야. 잠깐!”

무슨 소리가 들렸다. 적어도 새 노랫소리는 아니고, 소리를 삼킨 웃음소리 같았다. 작지만 즐거움이 가득한 웃음소리가 이내 잠잠해졌다. 우리는 죽은 듯 멈췄다가 재빠르고 조심스럽게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폈다.

“먼 곳일 리가 없어. 혹시 이 큰 나무 위에?” 테리가 신나서 말했다. 우리가막 들어선 빈터에는 크고 아름다운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굵은 가지들이 너도밤나무나 소나무처럼 활짝 펼친 부채 모양으로 넓게 늘어져 있었다. 나무는 아래에서 5미터 정도 되는 높이까지 잘 다듬어져 있었다. 그곳에 서 있는 나무 모양은 마치 거대한 우산 같았으며 그 아래에는 의자들이 빙 둘러 놓여 있었다.

테리가 말을 이었다. “봐봐, 낮은 그루터기들이 있어서 나무를 타고 오르기 쉽겠어. 분명히 저 나무 위에 누군가가 있을 거야.”

우리는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갔다.

“눈에 독화살을 맞을 수도 있어, 조심해,” 내가 말했지만 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가더니 의자 등받이로 냉큼 뛰어오르면서 나무 몸통을 잡았다. “심장에 맞을 가능성이 훨씬 커. 이런, 친구들, 봐봐!”

우리는 가까이 몰려가서 위를 쳐다보았다. 머리 위에 있는 나뭇가지 사이에 무언가가 하나 있었다. 아니, 하나보다 더 많은 그것은 처음에는 커다란 나무 몸통에 미동도 없이 매달려 있더니 우리가 나무에 오르기 시작하자 세 개의 형체로 나뉜 후 날렵하게 위쪽으로 달아났다. 우리가 나무에 오르자 그들이 우리 위로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세 남자

가 더 이상 오르기 힘든 지점에 간신히 도달했을 때 그들은 나무 몸통에서 바깥쪽 줄기로 이동했고, 자신들의 체중 때문에 위아래로 출렁이는긴 가지 위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불안했던 우리는 오르기를 멈췄다. 만약 우리가 좀 더 움직이면 나뭇가지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러질 게 뻔했다. 물론 가지를 흔들어서 그들을 떨어뜨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누구도 그럴 마음은 없었다.

빠르게 오르느라 숨이 찬 우리는 높은 나뭇가지 사이로 부드럽게 아른거리는 빛 속에서 우리가 쫓는 대상을 관찰하면서 잠시 쉬었다. 반면에 그들은 술래잡기를 하면서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처럼 아무 두려움이 없어 보였고, 위태로운 자태로 횃대에 앉아 있는 크고 빛나는 새들마냥 나뭇가지에 앉아서는 솔직하고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후략)



* 이 책은 9월 초 여러분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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