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쪽┃<과학자는 이렇게 태어난다> 진정일 엮음


예비 과학자들에게 전하는 선배들의 메시지! 1. 이공계 대학원 연구실 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실험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며 대학원생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잘 모른다. 아마 대부분이 연구실에서는 실험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연구실 안에서는 실험뿐 아니라 전공 공부와 먹고 자는 일, 연구실 사람들과의 크고 작은 사적인 일 등 여러 가지 일이 이루어진다. 연구실에서 생활할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즐겁게 추억할 수 있는 까닭은 청춘의 한때를 울고 웃으며 보낸 아지트와 같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2. 막 석사과정에 들어온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걱정은 ‘연구가 원하는 속도로 진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로는 자신의 능력에 문제가 있는지 의심하는 학생도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아니, 자네가 벌써 세계가 놀랄 만한 결과를 얻는다면 누구든지 과학자가 되려 하게? 그러다간 세상이 과학자로 넘쳐나겠네”라는 농을 던진다. 그러면서 내가 석사과정에 있을 때 몇 달 동안 노력하여 만든 유기화합물이 ‘소금’ 결정이어서 크게 실망했던 경험을 들려준다. 실험에 실패하면 좌절이 크지만 실패를 스승으로 삼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가다 보면 무엇이든 파고드는 탐구심과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얻게 된다. 또 끝까지 도전하는 지구력과 인내심을 키우면서 결실의 단맛을 느끼는 영광의 순간을 향해 매진하는 과학자의 태도를 갖추게 된다. 3. “어제 뭐했어?” 선생님이 아침에 실험실에 올 때마다 하시던 말씀이다. 밤새 새로운 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한 마음에 급하게 들어오시면서 말이다. 어떨 때는 실험 당사자인 우리를 대신해 꿈을 꾸기도 하셨다. 박사과정에 들어온 후 우리 연구실에서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DNA의 자기적 성질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여러 번 꿈을 꿨다. 실험이 워낙 어렵고 까다로워서 잠자리도 불편했던 게다. 깎아내린 듯한 절벽을 올라가는 꿈이었는데, 절벽이 움직이는 바위들로 되어 있어서 올라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고, 올라가는 중간에 절벽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실험 도중 많은 변수가 일어나 그 꿈의 내용이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선생님의 꿈은 좀더 구체적이었다. 부처님이 나타나서 실험 방법을 알려주거나 꿈에서 직접 실험을 했다는 식이다. 비록 꿈을 꾸어서 뾰족한 실험 방법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꿈에서조차 실험을 생각하는 선생님의 열정이 와 닿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4. 대학에서 43년 동안 강단에 섰고, 가르친 학부생도 3000~4000명은 넘을 것 같고, 거의 매일 생활을 같이 했던 석·박사과정 학생은 150여 명에 이른다. 이쯤 되면 스승과 제자 관계에 대해 할 말도 많고 숨겨진 이야기도 많으련만 특별히 글로 풀어낼 만한 이야기는 없다. 단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승은 제자를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는 점을 터득했다고나 할까? 배움을 얻으려고 내게 온 제자들에게 올바르게 가르치고자 말과 행동을 조심스레 하고, 가르치는 내용과 일치하는 삶을 영위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는 상태여야 참스승임을 자처할 수 있을 게다. 불가에서 말하는 청정한 삼업(三業)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5. “강의실에서 배운 대로라면 웬만한 반응이나 합성은 쉽게 될 것 같지만 연구를 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지. 교과서의 반응식은 실험과정을 자세히 말해주고 있지 않거든.” 교수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실험실습을 충실히 하는 것이 화학도들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고 한결같이 강조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학생은 그다지 많지 않다. 따라서 학부에서 배웠어야 할 실험 조작의 기본과 제한적이지만 학부 때 행한 합성 등의 실험 관찰을 통해 화학반응을 좇는 능력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슷한 실망을 여러 번 경험하다 보면 과학적 성숙과 함께 여러 가지 중요한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나에게 좌절은 없다’는 강한 신념과 ‘끊임없는 노력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신념’을 얻게 된다. 그때 맛본 그 짠맛은 나에게 영원불멸의 스승이 되었고, 나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실패를 이겨낼 줄 아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6. “즐거움을 좇아 일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단다. 결과에도 엄청난 차이가 나지.” 선생님의 이 말씀은 내게 큰 촉진제가 되었다. 나는 폴링(Poling) 장치도 직접 만들어보고,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해보았다. 내가 천방지축 날뛸 때마다 선생님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격려해주셨고, 일이 막힐 때는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될 만한 한마디씩을 던져주셨다. 그렇게 선생님의 감독 덕분에 과학이라는 건물의 기초공사를 튼튼히 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분자를 설계하고, 합성하고, 소자도 만들고, 측정도 하고, 완성된 재료는 작은 회사에서 양산도 한다. 그렇게 만든 물질은 전자제품에 적용되어 국내는 물론 외국으로 수출도 된다. 지금 사회에서 일하는 방식은 예전의 실험실 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즐거움을 좇아서 일하는 것도 똑같다. 예전에 선생님이 만들어준 기초공사의 튼튼한 뼈대 위에 열심히 살을 붙여 나가고 있는 중이다. 기초공사가 탄탄하기에 비바람이 불어도, 태풍이 몰아쳐도 뼈대는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공사는 연구를 그만두는 날까지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7. “자, 지난 시간에 배운 이 화합물의 특성이 뭐지? 그리고 왜 그렇지? 그럼, 이 화합물을 어디에 응용할 수 있을까?” 선생님의 질문에 지난 시간의 내용을 기억하느라 쩔쩔 매던 우리는 매번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너희들 머릿속에는 배운 지식들이 각기 다른 방에 놓여 있어. 그래서 물리화학 A, 유기화학 A를 받아도 그 두 가지 지식이 함께 섞여서 도대체 응용이 되질 않아. 두 가지가 함께 해야 참다운 과학을 할 수 있는데 말이야. 그런 지식들은 그냥 버려지는 지식이야. 섞으라고, 제발! 화학자는 물리도 알고 전자공학도 알아야 해.” 

8. 하지만 학교생활만큼은 나를 활기차게 만들었다. 선배 교수들의 인간미는 여러모로 나를 감동시켰고, 강의에 남다른 재미도 느꼈다. 학생들의 호응도 나를 크게 고무시켰다. 고려대 화학과를 연구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애쓰던 최동식 교수와 함께 대학원 교육 강화에 역점을 두었다. 학생들에게 아침 일찍 연구실에 나와 있을 것을 요구했고 최동식 교수와 아침 7시에 각 연구실을 돌아다니며 출석을 체크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모든 석·박사과정생이 참여하는 주간 세미나 프로그램도 새로 시작하였고, 대학원생에게 필요한 과목이 있다면 새로 공부해서라도 여러 과목을 가르쳤다. 어느 학기는 학부와 대학원생을 위해 5개 과목을 강의한 때도 있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9. 이때 무엇보다도 책을 많이 읽었는데, 이때의 독서생활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다. 문학, 철학, 종교, 역사, 사회학 등 닥치는 대로 광범위하게 책을 읽었는데, 내용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긴 겨울방학은 깊이 있는 독서를 하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또 외국어 공부도 부지런히 했다. 영어는 물론 독일어, 일본어, 러시아어, 그리고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등도 관심을 가졌다. 지금도 러시아를 방문하면 길가의 간판을 더듬거리며 읽을 수 있는데, 스스로 공부한 효과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해진다. 또 나이 먹은 후에도 외국인과 몇 마디 인사말로 자연스레 친해지기도 하니, 도둑질 말고는 무엇이든지 배우면 언젠가 도움이 된다는 옛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학자는 이렇게 태어난다>는 1월 20일경에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