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쪽┃<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_힘>


조영선 (경인고등학교 교사)

왜 학생・교사・학교 모두 두발자유에 집착할까? ••• (...) 제가 2001년에 교사가 된 후 아이들 두발 길이를 재는 게 이상해서 학생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학교를 옮기고 옮겨도 계속 두발자유를 얘기하는 거예요. 저는 이제 짜증이 나요. 두발자유 말고 다른 자유는 없나요? 두발자유 외에 여러분이 누리고 싶은 자유로는 뭐가 있습니까? 청소년 ⋮ 대학 가는 게 쉬웠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 ⋮ 시험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청소년 ⋮ 원하는 수업을 골라 듣고 싶어요. 네, 그것 말고도 많을 거예요. 취직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등등. 그런데 어느 학교를 가든 학생들의 생각은 두발자유에 멈춰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왜냐? 삶에는 아주 다양한 자유들이 있는데 학생들이 자유의 범위를 두발자유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니까요.  학교에서 두발규제를 하는 이유를 뭐라고 이야기하죠? 청소년 ⋮ 공부에 방해된다. 나중에 커서 다 할 수 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 생각해보면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머리 하나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생각이 없다’, ‘미성숙하다’, ‘너무 자유롭게만 행동하려 든다’, ‘네 미래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해야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건 너무 앞뒤가 안 맞는 처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건, 학생들을 성숙하게 하는 공간으로 학교를 다시 탈바꿈하는 일이 아닐까요? (...) 학생인권조례 제정, 그 후 ••• 제가 학생들에게 ‘학교폭력 장면을 봐도 왜 말하지 않아?’ 하고 물었더니 이런 얘기를 해주더군요.

“일본 원전이 터져서 우리나라도 방사능에 오염되는 거 아니냐고 아이들끼리 막 얘기 중이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선생님, 원전이 터지면 어떻게 되나요?’라고 여쭤봤더니 쓸데없는 일에 나서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했어요.”

학생들이 다른 뭔가에 관심을 가지면 학교에서 주로 뭐라고 가르쳐요? ‘쓸데없는 일에 관심 갖지 말고 공부나 해!’ 이렇게 교육받는 학생들이 친구가 옆에서 학교폭력을 겪는다고 한들 갑자기 관심을 보이진 않는다는 얘기죠. 학교에 뭔가 일이 있을 때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한번 해결해봅시다. 여러분이 한번 생각을 내보세요.’ 이렇게 질문받은 적 있어요?  학교의 일상적인 사안을 결정할 때, 학교행사를 어떤 식으로 진행할까? 단축수업을 할까 말까? 동아리 활동을 어떻게 운영할까? 급식이 더 영양 많고 맛있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것들을 학생들과 함께 논의하는 학교가 있나요?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다수의 학교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학생에게 권한이 있지 않습니다. 일상적으로는 참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저 학교에서 결정한 대로 따르고 방관하도록 강요받지요. 이는 학생들을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보지 않는 것이죠. 그런데 유독 학교폭력의 상황에만 방관하지 말라고 합니다. 물론 방관하지 말고 갈등을 해결해보라고 하는 것은 아니죠. 그저 신고하라고만 가르칠 뿐입니다. 신고하는 것 역시 남에게 해결을 넘기는 것이라는 점에서 못 본 체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고는 그 후에 처리과정에서 증언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동시에 고자질쟁이라는 사회적 위협이 남아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본 적 없는 학생들이 이런 번거로움과 위협을 감당하면서 신고할 수 있을까요? 학교 문제까지 가지 않아도 돼요. 두발・용의복장 문제만 봐도 충분해요. 내 얼굴이 네모형인데 혹은 큰데, 내 얼굴에 맞는 머리스타일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지 않느냐. 사람마다 체형이 날씬하거나 뚱뚱하거나 키가 작거나 모두 다른데, 내 몸에 맞는 옷은 내가 고를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이런 걸 내가 연습하는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학생도 똑같은 인간인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이렇듯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을 인간으로 보고 이들의 자유와 권리, 존엄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겁니다. 이렇게 되려면, 학생들 생각이 어떤지 알아야 하니까 뭘 해야 돼요? 학생들 생각을 모으려면? 모여서 회의를 해야겠죠. ‘이건 학교 문제가 아닐까? 어떻게 해결해야 될까?’ 회의를 하고 학생들 의견을 물으려면 설문조사도 해야겠죠. 의견이 모이면 인터넷이나 외부에 ‘우리 학교에 이런 문제가 있다’라고 알리기도 합니다.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학생들이 집회・시위를 해야겠다고 결정했다면 집회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약자들이 스스로를 일으킬 힘을 모으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학생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어요. 약자들인 학생들이 힘을 모으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요. 즉 학생인권조례는 강자와 약자의 먹이사슬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는 민주적인 힘을 모아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문제는 두발, 용의복장, 급식에 대한 권리, 환경에 관한 권리 등 30개의 권리조항으로 이루어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이 모든 권리를 단번에 누릴 수 있을 거라고 학생들이 기대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해요. 왜 그럴까요? 조례에 강제사항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지키라고 요구해야 할 것을 교장에게 맡기기 때문이에요. 이건 무슨 의미인가요? 학교에 인권이 살아 있도록 만드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겠죠. 조례에 보장된 권리를 여러분 힘으로 찾아야 해요. 조례 자체가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례가 여러분 스스로 힘을 만들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 조만간 책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