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쪽│김종성 교수의 뇌과학 여행, 브레인 인사이드


전두엽은 바로 당신

몇 달 전 병원에 입원했던 75세 L씨가 생각난다. 입원 3일 전 보호자들은 깜짝 놀랐다. 잘 자고 일어난 그녀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는 하루 종일 침상에 누워서 아무 말도 안 했다. 보호자가 옆에서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고 눈만 멀뚱 뜨고 있었다. 괴로운 표정도 반가운 표정도 짓지 않고 그냥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의식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눈은 멀쩡히 뜨고 감으며, 숨도 제대로 쉬고 팔다리도 움직이기는 했다. 다만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다고 보호자들은 이야기하였다. 주치의인 내가 진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소를 띠며 ‘안녕하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환자에게 실어증(뇌의 언어중추가 손상되어 말을 하거나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는 증상, 206쪽 참조) 증세가 있나 궁금해서 여러 테스트를 시도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어 이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했다. 환자에게 뇌 MRI를 찍어보니 우측 전전두엽(전두엽의 앞부분)에 뇌졸중이 생겼다(그림 1-1).

머리를 다친 사람이 성격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려져 왔다. 이는 전전두엽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나 같은 신경과 의사는 뇌졸중으로 전두엽이 손상된 환자들을 주로 보지만 교통사고 같은 뇌 손상 때문에 전전두엽이 손상되는 경우도 간혹 볼 수 있다. 이들을 진찰해보면 전두엽은 바로 우리 자신이란 생각이 든다. 이 환자들은 개개의 행동은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 예컨대 운동중추가 함께 손상된 것이 아니라면 손을 사용하고, 걸을 수도 있다. 언어중추가 함께 손상되지만 않았다면 말을 알아듣고, 할 수 있다, 계산도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주어진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적절한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내일 이사를 하기로 했다면 오늘 짐을 싸고 준비를 해야 할 텐데 그런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아무 상관없는 일만 한다. 이러니 직장에서도 무엇을 제대로 판단해서 일을 해결할 수가 없다. 또한, 세상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무의지증, abulia), 애정도 없다(무감동증, apathy). 예컨대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모처럼 면회를 와도 기뻐할 줄 모르고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만 본다. 전두엽은 평소 경험한 감정, 기억들을 저장한 후 이를 기반으로 최종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수행하는 기관이다. 또한, 전두엽의 아래쪽(눈 바로 위쪽이기 때문에 ‘안전두엽’이라 한다.)은 편도체와 연결되어 동료들끼리의 사랑, 국가에 대한 사랑 등 ‘사회적 사랑’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이런 곳들이 손상되니 판단 능력과 더불어 ‘인간다운 사랑’이 없어져, 그야말로 좀비 같은 인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의지증, 무감동증이 있는 환자도 시간이 지나면서 증세가 회복되어간다는 점이다.

L씨의 경우 병원에서 퇴원한 3개월 후 보호자들이 외래로 데리고 왔다. 환자는 많이 회복되었다. 이제는 나를 쳐다보면서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말을 시작했다. 물론 여러 번 말을 시켜야 반응을 했고 아직도 표정은 무덤덤했다. 그래도 이제는 그녀가 손자, 손녀를 보면 즐거워한다고 했다. 환자의 경우는 뇌졸중이 한쪽(오른쪽)에만 왔기 때문에 그나마 경과가 좋은 편이다. 양쪽 전전두엽이 모두 망가졌다면 그 경과가 훨씬 더 나빴을 것이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는 이 소중한 전전두엽을 일부러 잘라내던 적이 있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