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의 말 중에서
저는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학생들의 인성교육을 담당하면서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자기 이해’ 부분을 특히 중요하게 다루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은 이렇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자신의 감정을 한번쯤 다루지 않을 수 없는데,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묵은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아무개는 외고 붙었다더라!’라며 부모님은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하셨지만 이미 비교가 섞인 말들에 상처를 받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와 놀다 싸우고 억울해서 울며 들어오는 나에게 들어주며 공감을 해주기보다는 ‘아니, 네가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친구가 때려?’라고 하시며 친구의 편을 들었을 때의 서운함도 기억나고요. 엄마의 욕심 때문에 억지로 수년 동안 피아노 학원에 다녔지만 결국은 체르니 100번도 끝내지 못했던 이야기, 부모님이 싸워서 명절에 할머니댁도 가지 못하고 방안에서 맘 졸이며 지냈던 일 등등. 아직 20대 초반이지만 묵은 감정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끝이 없습니다.
더욱이 묵은 감정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인생 후반전을 맞이하는 중년들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정말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졸혼’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어느 유명 배우의 발언(나는 아내와 졸혼했다.)을 계기로 이슈화되었습니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의 졸혼은 한마디로 말하면 “혼인관계는 계속 유지하되 자식들이 독립하게 되면 부부가 서로 동거 또는 별거해 살면서 각자의 인생을 즐기는 형태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졸혼이라는 말을 거론하지 않아도 나이 들어가면서 한 지붕 속 두 가족처럼 사는 이들이 꽤 있습니다. 이들은 어쩌면 독립이나 출가를 해서 사는 아들딸이 본가에 와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할 때만 비로소 한 가족임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왜일까요? 저는 그 원인을 감정, 특별히 함께 살아온 햇수만큼이나 쌓인 ‘묵은 감정’으로 봅니다. 저는 여러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만나 상담을 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살아오면서 풀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아둔 ‘묵은 감정’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요소입니다. 여기서 소통하며 산다는 것은 생각을 주고받는 것도 있지만 ‘소통이 안 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생각의 소통보다는 ‘정서적인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다면 또 ‘정서적인 소통’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나눌 때 상대방은 들어주고 또 정성껏 들어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속 얘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든지 “사람이 살아가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세 사람은 있어야 아프지 않다.”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요? 사실상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감정은 에너지로서 그 특성상 표현하면 작아지고 사그라지지만, 제때 표현하지 못하면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혹은 방송이나 뉴스를 통해 감정이 폭발된 경우를 종종 접하곤 합니다. 화를 참다가 감정이 폭발해서 제정신인 상태에서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동 그러니까 차를 몰고 가게 안으로 돌진하기도 하고 한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가시 돋친 말로 표현되어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억누른 감정은 이처럼 밖으로 폭발이 되기도 하지만 내부의 나 자신을 향해 터지기도 하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억누르다 보면 우울해질 수 있는데, 프로이트에 의하면 상대방에 대한 ‘화’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문제는 우울증이 왔는데도 가볍게 여겨서 표현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화병’이 생길 수도 있는데, 흔히 신체 증상을 동반한 우울증을 우리는 화병이라고 부릅니다. 화병은 그 원인이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보이는 현상은 각종 통증이나 ‘암’ 같은 질병들로 나타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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