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쪽 | 누런 벽지



하루속히 건강을 회복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벽지는 마치 자신이 내게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벽지에는 무늬가 반복되는 부분이 있는데, 무늬는 마치 부러진 목처럼 축 늘어져 있으며 무늬 속 툭 튀어나온 두 눈알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

나는 한없이 반복되는 저 무늬의 뻔뻔스러움에 화가 치민다. 무늬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기어 다니고, 우스꽝스럽게 부릅뜬 눈이 사방에서 보인다. 벽지의 무늬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부분이 한 군데 있는데 한쪽 눈알이 다른 쪽 눈알보다 조금 높이 있다 보니 눈알이 맞닿은 선 위 아래로 오르내리는 꼴이다.

나는 전에는 무생물의 표정이 이렇게 다양한지 몰랐다. 이제 모두들 무생물들의 표정이 얼마나 풍부한지 알겠지! 나는 어릴 적 잠에서 깬 후 누워서 민무늬 벽지와 가구를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느낀 짜릿함과 공포는 아이들이 장난감 가게에서 느끼는 전율이나 두려움보다 훨씬 컸다.

다정하게 윙크를 보내던 크고 낡은 장롱 손잡이들과 언제나 힘센 친구 같았던 의자도 하나 있었던 게 생각난다.

다른 것들이 너무 무서워 보이더라도 그 의자에 폴짝 뛰어오르면 마음이 놓이곤 했다.

이 방에 있는 가구들은 죄다 아래층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보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놀이방으로 바꾸면서 육아용 물품은 다 치워야 했을 테니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이들이 벌여놓은 이런 난리통 속은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벽지는 여기저기 찢겼지만 또 형제마냥 착 들러붙어 있다. 아이들은 벽지를 싫어한 것만큼이나 벽지를 떼어내려고 집요하게 노력한 게 틀림없다.

바닥도 긁히고 파이고 부서져 있는데 회반죽 자체가 여기저기 파여 있다. 이 방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발견한 가구인 크고 육중한 침대는 마치 전쟁통 속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벽지만 빼고는 아무것도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

저기 존의 누이가 온다. 시누이는 정말 다정하며 나를 살뜰하게 보살핀다!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시누이에게 들키면 안 된다.

시누이는 흠잡을 곳 하나 없는 극성맞은 살림꾼으로 그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아픈 이유가 글을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그래도 시누이가 나가면, 창밖으로 멀어지는 게 보이면 글을 쓸 수 있다.

한쪽 창으로는 나무 그늘이 드러워진 근사한 굽은 길이 보이고 다른 창으로는 멀리 시골 풍경이 보인다. 커다란 느릅나무와 벨벳 같은 윤기가 흐르는 풀밭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시골이다.

이 벽지에는 색조가 다른 일종의 속무늬가 있는데, 어떤 빛에는 눈에 보이는데 또 어떤 빛에는 분명하게 보이지 않다 보니 더욱 신경에 거슬린다.

벽지 색이 바래지 않는 부분에 무늬가 보일 정도로 햇빛이 들면 기묘하고 도발적이며 무정형의 그림 같은 게 보이는데, 그 그림이 유치하고 눈에 확 들어오는 앞 무늬 뒤에 숨어 슬금슬금 돌아다니는 것 같다.

시누이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

벽지 생각이 내 마음에 똬리를 틀고 있다. 못으로 고정시켜놓았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 이 거대한 침대에 누워 몇 시간이고 눈으로 벽지 무늬를 좇는다. 이건 정말 곡예나 마찬가지다. 사람 손길 한 번 닿지 않은 구석 맨 밑부터 시작해서 아무 의미 없는 저 무늬를 끝까지 따라가보겠다고 셀 수 없이 다짐한다.

나는 디자인의 원칙을 어느 정도 안다. 벽지의 무늬는 방사나 교대, 반복, 대칭 등 내가 들어본 그 어떤 디자인 법칙도 따르지 않는다.

물론 무늬가 일정한 폭마다 반복되기는 하지만 그뿐이다.

한쪽에서 보면 각 폭은 홀로 서 있으며, 섬망증을 겪는 알코올 중독자가 그린 유치한 로마네스크 문양 같은 팽창한 곡선과 무늬가 뚱하게 홀로 서 있는 기둥을 기우뚱거리며 오르내린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무늬들은 사선으로 이어져 있다. 선들이 섬뜩할 정도로 급하게 떨어지는 파도처럼 사선으로 퍼져나가는 게 마치 이리저리 흔들리며 쏜살같이 쫓아가는 해조류처럼 보인다.

모든 무늬는 가로 방향으로도 이어진다. 적어도 그런 것 같다. 나는 가로로 이어지는 무늬의 순서를 구분하려다가 진이 빠지고 만다.

벽지의 가로로 장식 띠를 붙인 탓에 더욱 혼란스럽다.

방 한 쪽 끝에는 벽지가 거의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간접광이 희미해지고 고도가 낮은 직사광선이 벽에 닿을 때면 그곳에서 방사형 무늬가 보이는 것 같다. 중심에서 끝없이 계속되는 기괴한 문양이 형성되더니 사방으로 곤두박질치듯 달음박질친다.

무늬를 좇다 보니 지친다. 눈 좀 붙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