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 서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을 다시 지으며
12년 전의 일이다. 한 권의 책을 앞에 두고 회사를 퇴사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내 앞에 놓여 있던 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내가 처음으로 쓴 책이었다. 《한겨레신문》에 시민기자의 자격으로 칼럼을 연재했던 것이 출판사의 눈에 띄어 출판제의가 들어왔던 것이다. 그때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간단했다.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직접 해보니 온 밤을 지새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만큼 괴로운 일은 아니었다.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통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한마디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 재미있는 일을 계속 하기 위해 퇴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그 일에 매달렸다. 그 후 몇 가지 소소한 일이 있었다.
몇 군데 대학에서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박사과정 공부를 하기 위해 나 자신이 학생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꾸준히 이 일을 계속해서 거의 열 권 정도 책을 쓴 거 같다. 평균 1년에 한 권 꼴이니 게으름은 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12년 만에 그 책의 개정판을 다시 쓰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정독을 해보았다. 서른 몇 살 애송이의 풋내가 가득하지만 그러나 나름 열정도 보인다. 그 풋풋함과 열정을 살리기 위해 예전의 내용은 되도록 수정하지 않은 채 다른 이야기들을 더 첨가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책은 서른 살의 들뜬 목소리와 마흔 살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는 것이, 낡은 천에 새로운 천을 덧대어 만든 조각보 같기도 하다.
책의 내용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의 주제는 실재로 존재하는 집이 아닌 관념 속에 존재하는 집이다. 그림 속에 혹은 노래 속에, 영화나 드라마에 표현되는 집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다. 집은 내가 희망하는 집과 현실의 집 간의 괴리가 크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 둘을 키우는 30대 가장은 현재 토끼장 같은 도심의 24평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마당이 딸린 전원주택에 살고 싶어 한다. 좁은 고시원에서 취업재수를 하는 29세의 청년백수는 강남의 멋진 오피스텔을 꿈꿀 것이다. 의식주 중에서 경제력에 가장 크게 지배를 받는 것이 바로 집이다. 따라서 정말 살고 싶은 집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집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관념 속에서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이 부분을 제일 앞에 넣었다.
2부의 주제는 여성과 집이다. 남편이 아내를 일컬어 집사람이라고 하듯 집이란 참으로 여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최초로 집을 지은 것도 여자이다. 구석기시대 남자들은 수렵에 종사하느라 집을 떠나 있기 일쑤여서 밥을 짓고 집을 짓는 등의 집안일을 언제나 여자들 몫이었다. 요즘도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가는 일이 드물 듯, 당시에도 그들은 집을 짓지 않았다. 하지만 농경과 함께 정착생활을 하면서 보다 내구력 있는 집을 지을 필요성이 생겼다. 집의 규모가 커지고 건축기술이 복잡해지면서 건축업이 하나의 전문직이 되었고 이에 남성들이 이 일을 전담하게 되었다. 집에서 밥을 짓는 사람은 엄마지만, 그것이 전문 직업이 되고 보면 주고 남자가 하게 된다. 호텔이나 대규모 식당의 전문 요리사가 남자인 것처럼. 맨 처음 집을 지었던 여자가 점차 소외되고 예속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2부의 목적이다.
3부는 개정판을 내면서 새로 첨가된 부분이다. 주택은 아파트와 단독주택으로 대표되는 주류시장 외에 빌라, 오피스텔, 타운하우스, 임대주택 등 비주류의 주택시장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왜 이런 비주류를 외면해왔는지 의문이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었던 주택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3부의 목적이다.
4부는 아파트에 관한 내용이다. 85m2, 방 세 개에 화장실 두 개가 있는 33평 아파트를 국민주택이라 부를 만큼, 아파트는 가장 대표적인 주거유형이 되었다. 그런데 아파트가 한국에 상륙한 지는 대략 6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의 아파트는 그 기원이 제정 로마시대로까지, 무려 2천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러나 우리처럼 이렇게 아파트에 열광하지는 않는다. 최초의 아파트는 무엇이었으며, 아파트가 한국에서 성공하게 된 이유를 짚어보는 것이 4부의 내용이다.
5부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건축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층빌딩, 학교, 백화점, 지하상가, 교회, 성당, 사찰 등 건물은 말없이 서서 우리에게 봉사하는 듯하지만 그러나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손짓하고 유혹하고 또한 속이거나 억압, 조종하기도 한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할 뿐이다. 그 비밀을 밝혀보는 것이 5부의 내용이다.
어릴 때부터 그다지 목소리가 큰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할말도 제대로 하지 못해 항상 머뭇거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세상을 향해 내 목소리를 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 시작은 인터넷 한겨레신문에서 코너를 마련해 준 덕분인 거 같다. 나는 당시 ‘서윤영의 건축스케치’를 연재하고 있었고 또한 바로 얼마 전까지는 광주일보에서 지면을 할애해 주어서 ‘서윤영의 집과 사람’을 연재하였다. 신문사에 감사드린다.
이번에 개정판을 내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진을 되도록 내가 직접 찍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내자면 어느 정도의 수련과 연습이 필요한 법이다. 때로 미숙한 모습까지 함께 지켜봐준 펜탁스 클럽의 회원들께 감사 드린다. 지난 2년간 자유게시판을 함께 이용했던 그들, 일명 자게이들은 어린 시절 골목길을 함께 뛰놀았던 내 친구 같은 이들이다. 이 자리를 빌어 진실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지난 12년간 변함없는 신뢰와 우정을 보여준 궁리출판사에 감사 드린다.
* 이 책은 9월 말에 독자 여러분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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