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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둘리틀 박사의 모험 시리즈 5권 <둘리틀 박사의 동물원>


프롤로그

“폴리네시아,” 나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깃털 펜 끝을 씹으며 말했다. “내가 ‘둘리틀 박사님의 회상’이라는 책을 쓰려고 하는데, 뭐부터 쓰면 좋을까?” 책상 위에 놓인 잉크병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이 나이 든 앵무새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앵무새가 큰소리로 외쳤다. “또! 둘리틀 박사 이야기를 또 쓴다고?” 내가 말했다. “음… 그래. 우린 박사님의 삶에 관해 쓰고 있고, 끝내려면 아직 멀었잖아.” 폴리네시아가 말했다. “그렇군. 앞으로 몇 권이나 더 써야 하는지는 누가 결정하지?” 내가 말했다. “응, 그거야 뭐… 독자들이겠지. 아무튼 말해 줘.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까?”

폴리네시아가 눈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토미, 그건 대답하기 몹시 어려운 문제인걸. 존 둘리틀 박사의 삶에는 재미있는 일이 워낙 많았으니까, 문제는 뭘 넣느냐보다는 뭘 빼느냐가 더 중요할걸. 네 관자놀이에 벌써 흰머리가 보여. 박사가 한 일을 전부 다 쓰려고 하다가는 끝내기도 전에 아마 내 나이가 되어 버릴 거야. 물론 너는 그 책을 과학자들을 위해 쓰려는 건 아닐테고… 그래도 동물 말을 할 수 있는 건 박사를 빼면 너뿐이니까 난 네가 자연학에 관한 교양서를 쓸 적임자라고 생각해 왔어. 물론 쓸모 있는 교양서 말이야. 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겐 위대한 사람의 삶에 관해 써야 할 임무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말이야…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까?… 아, 그래! 우리가 거대한 바다 달팽이 껍질 안에 들어가 퍼들비강으로 돌아온 이야기부터 쓰면 어떨까? 기억하지? 바다 밑 여행을 끝낸 다음에 말이야.” 내가 말했다. “그래, 나도 거기서부터 쓰려고 했었어. 그런데 어디서부터 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해. 그러니까 내 말은 뭘 넣고 뭘 빼느냐는 거야. 가장 재미있는 일로 골라야 하잖아.” 폴리네시아가 말했다. “아! 그렇군, 그게 문제군. 박사도 여행을 떠나기 전 검정색 작은 가방을 싸면서 그런 말을 여러 번 했어. ‘뭘 넣고 뭘 빼지? 이게 문제군.’ 난 박사가 고작 면도기 하나를 두고 30분이나 고민하는 것도 봤어. 사용법만 익히면 면도는 깨진 유리병 조각만 있어도 할 수 있다고 하더군. 짐이 많은 걸 박사가 얼마나 싫어했는지는 너도 기억날 거야. 그래서 면도기는 그냥 두고 가기로 하는 일이 잦았지. 하지만 나랑 대브대브는 깨진 유리 조각으로 면도하다가 박사가 상처라도 입을까봐 떠나기 전에 면도기를 몰래 가방 안에 넣었어. 박사는 자기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도 기억 못 하니까, 우린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 내가 말했다. “그랬군, 그런데 너 아직 내 질문에 답 안 했잖아.” 폴리네시아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책 제목을 뭐로 할 거라고?” 내가 말했다. “둘리틀 박사님의 동물원!” “음,” 폴리네시아가 중얼거렸다. “그럼 당연히 동물원 부분부터 써야지. 내 생각에는 그래도 나는 네가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을 만난 이야기를 약간이라도 넣어야 할 거라고 생각해. 알지? 네가 거의 3년이나 떠나 있었다는 걸. 좀 감상적인 것 같긴 하군. 하지만 조금은 감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으니까. 전에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책만 좋아하는 숙녀도 있었어. 그 숙녀는 늘…” “그래, 그래 맞아,” 나는 늙은 앵무새가 다른 이야기로 빠지려 한다는 걸 눈치채고 서둘러 말을 끊었다. “그래도. 본론에서 벗어 나지는 말자구.” 폴리네시아가 말했다. “알겠어,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글을 쓰면서 나한테 큰소리로 읽어 줘. 그러면 어디가 지루한 대목인지 알 수 있을 거야. 내가 조는 걸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재치있고 생생하게 써야 할 거야. 나이 드니까 점심 먹고 졸음을 참기 점점 더 힘들거든. 지금도 점심을 아주 많이 먹은 상태야. 그런데 종이는 충분히 있어? 잉크병은 꽉 차 있고? 좋아. 시작하자.” 나는 새 깃털 펜의 끝을 조심스럽게 깎은 다음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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