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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 김홍표 지음



영국 런던 대학 생화학자, 닉 레인이 쓴 『생명의 도약: 진화의 10대발명』을 읽다 보면 본디 그는 ‘소화기관의 진화에 대해 쓰고 싶었다’는 말이 나온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소화기관의 진화에 대해서는 정말로 쓸 게 없겠다는 느낌이 앞선다. 왜냐하면 소화기관은 생명을 유지하는 너무 기본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당연히 진화해야 했고 생명이 태양으로부터 도달한 에너지를 활용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익숙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소화기관은 그것이 단순한 형태이든 복잡한 것이든 외부의 에너지를 수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생명은 태양에서 도달한 남아도는 에너지를 어찌할 수 없어서 탄생한 우주적 필연이다. 그러므로 지구로부터 태양이 멀어지는 약 50억 년 후이면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우주 전체로 규모를 확대해서 본다면 어딘가 에너지가 넘치는 곳에 생명체가 있으리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한번 생명체가 만들어진 후에는 다른 생명체를 먹이 삼아 생존하고 종족을 번식시키는 생명체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것의 가장 뚜렷한 형태가 동물이고 그들은 종속 영양 생명체라고 불린다. 따라서 종속 영양체는 다른 생명체의 존재를 자신의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 다른 생명체를 분해하고 거기서 영양소를 추출해내는 특정한 장소, 즉 소화기관이 필요하게 된다. 동물은 눈에 보이지만 그렇게 크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농축된 에너지가 필요하다. 움직일 때도 마찬가지다. 그 모든 에너지는 소화기관을 통해서만 공급된다. 그게 다다. 음식물 안에 농축된 에너지를 얻어내는 방법의 개선 혹은 참신성이 궁극적으로 38개에 달하는 동물문의 진화를 이끌어냈다. 피터 워드의 『진화의 키, 산소 농도』에 따르면 캄브리아기 이전에 동물은 세 문phyla에 불과했다. 산소의 농도가 증가하면서 동물의 외형, 즉 외부 기관이 다양하게 분기했고 세 종의 동물문은 38개로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소화기관은 그 즈음에 거의 완성 단계에 있었고 그 뒤로는 실상 변하지 않았다. 물론 위가 커지고 소장 융모가 흡수 표면적을 키웠다든가 하는 혁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기본 설계는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그렇지만 소화는 세포가 하나일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이들도 먹을 것을 외부에서 취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포가 여러 개의 세포가 되고 그 세포의 기능이 분화해가는 과정에서 소위 세균을 포획하는 형태의 빈 공간이 나타나고 그 공간이 정교화되면서 원강archenteron 소화관이 나타났다. 


그렇기에 최초의 소화는 단세포가 취한 전략, 즉 세포 내 소화가 먼저다. 세포 내 소화가 가진 큰 문제는 하나의 세포보다 더 큰 먹잇감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하나는 에너지의 양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에너지를 오래 보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소화관의 진화가 생존에 필수적이라면 그 소화기관은 앞에서 얘기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보다 많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좀 더 큰 소화관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것은 세포 하나의 크기를 넘어서는 먹잇감의 존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제 세포 밖 소화는 다세포 생명체가 주변에 존재하게 되면서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생존 경쟁의 장으로 변했다.


수십억 년에 걸쳐 단련되고 정교해진 소화기관은 그것의 최종적인 형태, 즉 입이 있고 항문이 있는 통관through gut으로 자리 잡았다. 통관이라는 해부학적 관점에서 보면 벌레는 인간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통관을 가진 생명체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생명체 진화역사에서 최근의 일이다. 우리가 벌레와의 차별성을 억지로 우기기라도 할작시면 포유동물은 위도 있고 소장에 융모도 있다는 식의 억지를 부려야 할 판이다.


이 책은 이런 소화기관의 배후 혹은 주변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음식물의 정체성, 다시 말하면 우리가 먹는 영양소의 레퍼토리가 무엇인가 하는 얘기도 등장하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왜 우리는 모유를 진화시켰을까 하는 질문에도 답을 하려고 했다. 간략히 말하자면 신생아들이 형제나 혹은 성인과 먹을 것을 가지고 다투지 않으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모유가 발명되었고 그것은 갈락토오스와 포도당의 결합인 젖당의 형태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개체 내부에서 이런 영양소 경쟁은 탈바꿈을 하는 곤충에서도 발견된다. 누에나방의 경우 견사를 녹여낸 번데기가 나방이 되면 이 성체는 번식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먹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누에가 되기 위해 애벌레는 끊임없이 뽕잎을 먹어대야 한다.


최근 들어 인간의 소화기관에서 우리와 함께 사는 식구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래서 수적으로 인간 세포의 10배가 넘고 유전체의 측면에서 인간 유전체의 100배가 넘는 장내 세균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고 넘어갈 것이다. 그와 함께 구강 세균에 대해서도 조금 알아보겠다. 강산을 가지고 있는 위에는 세균이 살기가 힘들겠지만 왜 대장에 그토록 많은 세균이 사는지도 잠깐 살펴보려고 한다. 이들 세균이 동물들과 함께한 지는 무척 오래되었다. 아니 인간을 비롯한 진핵세포의 탄생 자체가 세균 덕택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다세포 생명체의 진화 과정에서도 세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니콜 킹Nicole King 박사가 이런 종류의 연구를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바로 그런 세균과 다세포 생명체 공존의 현장이 우리 장내에서 피부 곳곳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살아 숨 쉰다. 동물과 세균의 합체형인 새로운 개념의 생명체는 자신과 다른 장내 세균을 가진 생명체와는 서로 교미할 수도 없다. 이런 사정으로 이제 종을 구분할 때 세균의 족보가 중요해질 수 있는 것이다. 또 세균은 소화기관의 발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것처럼 보인다. (후략)


_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김홍표)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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