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말랑말랑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읽고 나면 마음이 촉촉해지는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20대 때 글을 쓸 때는 수필을 많이 썼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세상 사는 것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견뎌낼 수 있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글을 썼다. 그래서 절대 글에서 생명을 해치지 않았다. 죽음보다 삶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했고,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살아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나에게는 희망이었다. 나는 나와 수업을 하는 아이들도 희망찬 글을 쓰길 바랐다. 그래야 아이들의 삶도 희망으로 가득 찰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어둠 그 자체였다. 우중충한 회색빛 글 속에는 늘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등장했다. 함께 릴레이 글쓰기라도 할라치면 주인공을 자꾸 죽여서, 나 혼자 죽은 주인공을 다시 살려놓느라 애를 써야 했다. 나는 주인공이 죽는 장면을 꿈으로 처리하기도 하고, 소설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반발했다.
“선생님, 제발 살리지 좀 마세요! 쟤는 죽어야 한다고요!”
그때는 몰랐다. 아이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지금의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고 싶다는 열망이 그렇게 다른 이를 죽인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죽음과 내가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가 달랐다. 나에게는 죽음이 끝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이 죽인 생명체를 되살리지 않았다. 떠날 것은 떠나고 다시 태어날 것은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두었다. 그것이 아이들이 정의하는 삶이고 희망이었다.
수업을 거듭하면서 아이들의 글 속에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세계를 만났다. 멀쩡하던 생명체가 일시에 사라지는 것도 보았고,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인 생명체가 사는 세계도 만났다. 그런데 진짜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판타지 세상이었다. 나는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게 좋은 만큼 글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잘 녹여낸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런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자신들의 세계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도 SF를 쓰세요!”
(중략) 현실주의자인 내게 시간과 공간을 알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과알못(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과학적인 글을 쓰라니!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나 어찌하랴. 수업시간에 나는 선생이 아니라 함께 글을 쓰는 동료인 것을. 동료들이 쓰자면 써야 하는 게 우리의 규칙이니 SF를 쓸 수밖에.
세상에 없는 글쓰기 수업
학교 밖 청소년과 함께 쓴 10년의 기록
『목요일의 작가들』이 2월 중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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