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생물학의 한 범주를 전공한 나에게 아침 밥상머리에서 딸아이는 "엄마, 멘델의 분리의 법칙이 뭐야?", "엄마, 체세포 분열과 감수분열은 어떻게 달라?"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해댔다. 그러나 바쁜 아침 시간에 아이의 질문은 성가셨고 대답은 늘 건성이었다.
어느 날 눈으로 온 도로가 꽉 막힌 퇴근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가 몇 개월 전부터 딸아이가 ‘엄마’라고 부를 때는 돈이 필요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등의 요구사항이 있을 때 말고는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이미 내가 생각하고 있는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미련하게도 그제야 알아차렸다. 딸아이와 대화를 위해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라도 외워야 하나? 그 친구들이 나오는 드라마라도 봐야 하나? 하지만 몇 개월에 걸친 딸아이와의 대화 노력은 늘 전쟁으로 끝났고, 전전긍긍하며 내가 결론은 ‘내 방식대로’였다.
그 이후 아이 방에 들어가 과학 교과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 녀석이 생물학과 관련하여 던졌던 질문들을 떠올렸다. 그 녀석이 한 질문들은 그저 사실 확인이었다. 문제집도 뒤졌다. 문제집도 전부 사실을 묻는 질문들로 가득했다. 그 녀석이 간간히 써놓은 내용들을 가만히 곱씹었다. 교과서는 그야말로 교과서였다. 사실과 사실을 연결해 생물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연결고리가 부족했다. 그래서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중고등학교 생물 교과서를 서로 비교해 가면서 생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재밌게 연결시켜주는 교과서가 있는지를 찾았다. 나의 불성실함 때문인지 별 소득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얘가 멘델의 법칙이 다 맞는 건 아니라는 건 알까? 얘가 감수분열의 과정은 아는데 그게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알까? 자신이 겪고 있는 사춘기의 불안감이 생물들이 수십억 년을 겪어온 문제라는 건 알까? 아니, 그 사춘기가 딸아이만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실임을 나는 받아들이고 있었던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들었다.
이렇게 무장한 나는 ‘내 방식대로’의 대화를 시작했다. 멘델이 다 맞아? 감수분열은 언제 일어나는데? 딸아이도 과거의 나처럼 건성으로 대답했기에 딸아이와 직접 연관된 내용으로 질문을 바꿨다. 넌 왜 생리를 하니? 넌 왜 여자니? 넌 왜 아파야만 하니? 소득 없는 질문과 단편적인 설명으로 몇 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그 잔소리 계속하면 안 돼? 생물이 외우는 게 아니네? 엄마가 한 질문은 완전히 다른 종류인데 문제가 다 풀렸어” 그렇게 아이의 말문이 열리고 함께하는 공부가 시작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된 엄마와 사춘기 딸아이가 함께한 생물학 공부를 담은 책이다. 사실 공부는 학교 수업에 따라 딸아이 혼자 했다. 나는 그저 밤마다 혼자 몰래 공부한 교과서의 사실과 사실을 연계하는 질문, 책, 영화 등 우리 일상과 관련된 생물학을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사실 전달에 충실한 교과서의 내용은 사춘기 딸아이의 행동양식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에 보다 구체적인 연계를 위해 은근슬쩍 생물의 진화를 전체적인 수다의 흐름으로 끼워 넣었다.
엄마와 공부하면서 딸아이는 생물학이 외우는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지식 없이 이뤄지는 공부는 없다. 시험 보기 위해 외워야 하는 공부는 지루하고 시험 보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딸아이도 공부하면서 수많은 사실들을 외웠을 것이다. 단지 딸아이가 그렇게 열심히 외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엄마의 설명방식에 속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녀석은 엄마가 들려줬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과학적 질문들과 자신의 행동과 연계된 설명 속에 배우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배울 생물학 지식들이 녹아 있어서 외우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했을 뿐이라고. 자신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라고.
방학을 맞아 그림을 그리면서 딸아이가 ‘엄마는 왜 불량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자신이 이해한 방식에 따라 나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동일한 지식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적어도 딸아이 문제를 제외하고 나에게 어떻게 이해했느냐는 새로운 생각으로 확장하는 기회를 부여해 왔으며, 삶의 다른 부분을 이해하는 방향성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생물학의 한 범주를 공부한 나마저도 딸아이를 생물체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딸아이를 생명체가 아닌 우리의 교육과 사회 제도 안에서 특별해야만 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아이러니였다. 그게 내가 불량인 가장 큰 이유이다.
그 이외에도 내가 불량인 수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또 하나의 주된 이유는 사악함에 있다. 사악하게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사춘기 딸아이와의 관계로 인해 차마하지 못했던 잔소리를 생물학적으로 했다. 눈치 빠르게도 그 녀석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속이 후련해지고 딸아이의 생물학적 반격으로 인해 더욱 사악함을 드러내면서 더더욱 불량해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생물학은 그 자체가 우리이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우리 그 자체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냥 재미있게 즐겼으면 좋겠다. 불량 엄마식 유머를 씹어가면서 말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 생물학이 학교 공부를 더 재밌게 만들고 일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본다면 아이들을 키우는 모든 부모들이 과거의 나보다는 덜 불량해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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