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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새로운 세대의 탄생-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의 의무>


잊지 않는다는 것은 함께 만든다는 것

<박명림 선생님 인터뷰> 중에서


사회적 재앙 상황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이고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요? 이는 지난 역사 속에서 국가적 위기의 순간마다 지식인들이 부딪혔던 질문입니다. 많은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옳은 조언을 하고, 또 사회적 원인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도 하며, 직접 거리로 나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정의로운 요구를 외치기도 하였지요. 이번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지성들도 많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이번 참사가 그동안 한국 사회가 쌓아온 구조적 병폐가 터진 충분히 예고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안전 문제의 차원에서 접근하여 안전 체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비극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돈과 효율보다는 생명과 사람을 더 중시하는 가치관과 그것을 반영한 사회제도와 체계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변화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될 수 있을까요?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사건의 근본 문제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함께 사회적 실천에 나설 것을 열렬히 요청하고 있는 정치학자 박명림 선생님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명림 선생님처럼 열렬히 이 사건에 응답한 지성이 있을까요? 처음 선생님의 글을 신문 칼럼을 통해 읽었을 때 뜨거운 눈물로 글을 쓴 것이 절절히 느껴져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인터뷰 내내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서려 있는 물기는, 활자나 지식이 아니라 애끓는 마음으로 다음 세대에게 함께 대화하고 연대하여 세상을 바꾸어 나가자는 선생님의 심정을 헤아리게 했습니다. 기성세대의 잘못에 대해 매섭게 증언하면서도, 다음 세대의 희망에 대해선 한없이 낙관적인 그의 모습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기성세대가 세월호 세대이다


인디고 | 저희는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라는 주제로 한국 사회의 지성을 찾아 새로운 세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선생님 글에서도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박명림 | 이렇게 찾아주어 고맙습니다. 우선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대담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놓고도 다음 세대에게 할 말이 있는가, 솔직히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숨을 멈출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무거운 물음입니다. 그것은 이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응축하여 폭발한 사건인 동시에, 무엇보다도 한 인간 공동체의 허상을 낱낱이 폭로한 결정적 계기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회가 바른 사회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기성세대의 집단적 양심과 자세에 달려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기성세대는 바야흐로 세월호 참사로 인해 지금, 자신들의 지난 삶들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것을 인정하건 안 하건 이미 객관적인 역사는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탄생도,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각오도 모두 우리 개인들의 눈앞에서 전개된 이 이해할 수 없는 젊은 죽음들에 대한 대면자세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세월호의 침몰 요인과 과정, 청년 수장과 구조 실패, 세월호 이후의 대처와 담론, 이 세 국면으로 구성된 세월호 사태는 서로 긴밀히 연결된 일련의 연쇄고리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제가 세월호에 관해 《한겨레》에 쓴 글들은 거의 팽목의 엄마들이 쓴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현장에서 그분들의 통절한 심정을 전달한 공감자 정도 역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가 진도 팽목항에 처음 내려간 것은 사건 발생 3일 후인 4월 19일이었습니다.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할 때 저는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저 안에 지금 수백 명의 젊은 생명이 있는데……”, “수많은 젊음 목숨들이 아직 배에 타고 있는데……”, “어어? 이건 정말 아닌데…… 이러면 절대로 안 되는데, 왜 아무도 배 안으로 안 들어가지” 모두가 안타까워하던 그 결정적 순간에 현장의 수많은 국가 조직 누구도 ‘즉각’ 배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영혼들이 죽어가는 실제 상황을 전국에 실시간으로 실황 중계하는, 그러면서도 국가의 어느 조직도, 어느 직위도 생명을 위한 헌법적(국가적) 결단과 실존적(개인적) 결행을 내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저는 가눌 수 없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우리 사회의 생명 감수성, 목숨 민감성이 이 정도로 마비되었나? 국민 생명이 죽어가는 것보다 더 긴급한 상황도 있나? 눈앞에서 지금 당장 진행되는 젊은 목숨들의 죽음에도 이렇게 무대응한다면, 이보다 덜 긴급한 모든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4월 16일의 세월호는 한국 사회의 생명의식을 압축해서 드러내는 대표 현장이었습니다. 생명 감수성이 완전 마비된 현장을 똑똑히 보고는, 큰 충격을 받은 저는 그날 바로 진도로 달려가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17일, 18일 한 대학교의 전체 신입생을 위한 특강이 예정되어 있어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 큰 충격은 다음 날인 17일 대통령의 현장 방문 장면이었습니다. 16일의 충격이 한 시민이자 인간으로서의 즉각적이며 직관적인 충격이었다면, 17일의 그것은 전문가이자 학자로서의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경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국가 최고공직자인 대통령의 방문을 통해 아직은 생명 구출을 위한 국가의 최소한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민 일반의 상식을 따라 그만큼 국가를 신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이 죽어가는 집단참사의 현장에서, 헌법이 규정한 최고공직자로서 국민 생명을 구출하기 위해, 대통령은 신속하게 “결단하고 명령하고 집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문의하고 상의하고 부탁하는” 통치 행위를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제가 갖고 있던 정치학과 헌법학의 근본 가정과 지식들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저의 《한겨레》 글을 보고 같은 물음을 던져주고 있습니다만, 당시 제가 “이게 과연 나라인가”, “이게 진정 국가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은 대통령의 현장 방문 장면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관찰한 다음이었습니다.


국가는 어떤 경우에도 국민 생명의 집단 망실처럼 즉각적인 헌법적 결단을 요구받지 않습니다. 말을 바꾸면 국가가 가장 긴급하게 헌법적 결단을 요구받아야 하는 문제는 국민 생명의 구출 여부입니다. 그러나 4월 17일 대통령의 현장 방문 실황 중계 장면과, 이후에도 변함이 없는 상황 전개를 보며 저는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과 국가 및 대통령의 근본 역할에 대해 심각히 재고하게 되었습니다.(저는 이 문제에 대한 심층 분석을 마쳐놓았으나, 여러 이유로 아직 공론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더는 참을 수가 없어 4월 19일 현장에 내려갔습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진도 체육관과 팽목항의 분위기는 TV와 신문을 통해 보던 상황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저의 오랜 체험에 비추어 볼 때 ‘현장’은 언제나 ‘느낌’을 압도합니다. 현장에는 중앙과 지방 정부의 수많은 기구, 조직, 부문, 단체들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천막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TV 중계보다 훨씬 더 심각하여, 최상층의 대통령이 그러하였듯, 그 급박한 순간에 국가조직의 어느 부문, 어느 단계, 어느 담당도 책임 있게 결정하고 결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집단 죽음의 현장에서, 또 서울에 올라와서도 저는 단 한 문장도 쉬이 완성하질 못했습니다. 한 단어 쓰고 울고, 한 문장 쓰고 통곡하고……. 길지 않은 《한겨레》 첫글을 거의 3일에 걸쳐서 썼습니다. 제주 4·3, 한국전쟁 학살 현장, 캄보디아 킬링필드, 압록강 탈북 현장, 기아에 빠진 북한의 농촌, 아우슈비츠……. 저는 숱한 인간 비극의 현장을 발로 찾아 다녔습니다만, 팽목에서 엄마들의 애절한 통곡은 그 어떤 슬픔보다도 깊고 날카롭게 제 가슴을 베어내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슬픈 현장이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한 사람의 의인, 한 사람의 영웅이 필요한 시대구나.” 현장에서의 제 마음이었습니다. 세월호 사태 이후 우리 사회의 논의 과정을 보면 기성세대에게 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암울합니다. 그런 끔찍한 일을 초래하고도, ‘세월호 이후’ 이 사회의 논의와 대처를 보면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뿐입니다. 저는 청와대, 언론, 의회, 인터넷 공간의 논의들을 보면서 ‘세월호 이후’의 상황이 더 두렵습니다. 이 사회는 저 젊은 죽음들로부터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음이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타인들의 죽음에 대해 이토록 모질고, 이토록 반생명적이며 반인간적인 공격을 가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게 진정 두렵습니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청년 여러분께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생명과 사람이 우선인 사회가 되도록 우리 함께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꿉시다. *『새로운 세대의 탄생』은 8월 중순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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