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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소설에게 과학을 묻다> 진정일 지음


기술과 인간의 기계화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과 북미로 퍼져나갔으며, 전통적인 농업과 교역을 하던 사람들은 기계화된 생산방식에 익숙해져 공장생산체계 속에서 조직화된 노동을 필연인양 받아들이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기술을 이용한 산업화를 받아들여 경제대국이 되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우리나라에도 공장시설이 여기저기 들어서게 되었다. 소위 신문명이라 부르던 산업문명의 도래는 사회질서, 교육, 경제활동 양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틀에 짜인 생활을 하게 된 공장노동자들은 자신을 기계부품이라 여기며, 인간성을 잃어가고, 그리도 중시하던 인간관계마저 서서히 잃게 되었다. 김동립(金東立, 1928~)의 「대중관리」는 생산라인의 기계화와 분업화, “타임 스터디(시간연구), 모션 스터디(동작연구)라는 영어는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인” 생산관리에 시달리던 주인공 이 계장(李係長)의 인간성이 마멸되어가는 과정을 잘 그리고 있다. 「대중관리」는 김동립이 1959년에 《사상계》에 발표한 소설로 인간이 결코 기계가 될 수 없음을 고발하고 비판한다. 이 소설의 머리부분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9시 출근. 5시 퇴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만날같이 되풀이하는 이계장(李係長)의 일과였다. 버스나 전차에 흔들리든, 합승 한쪽 구석에 비비대고 앉든, 만날같이 무수한 시선 속에서 혼자 묵묵히 앉아 있어야 한다. 어떻게 자신이 객관화될 때마다 점점 위축되어가는 자기 위치를 깨달아야 한다. 또 그런대로 이튿날 그 이튿날로 마치 내일 아침이면 틀림없이 동쪽에서 해 떠오르듯 이어갔다.

한일피복(韓一被服)산업주식회사의 이 계장은 이러한 생활 속에서 작업의 기계화와 능률화에 익숙해져 과장, 국장으로의 출세를 꿈꾼다. 그는 약간의 비리를 통한 치부도 하고 있는 듯하다.

집 살 돈이 없어서 세를 든 것은 아니다. 안방의 다락 구석에 보이지 않도록 숨겨둔 조그만 금고. …(중략) 

마음만 내키면 언제라도 바꿔칠 수 있는 백칠십 만환의 전셋집과 최신 문화주택. 플라스틱의 찬란한 타일을 깐 응접실. 형광등이 산뜻한 불빛 아래서 빛나는 텔레비전, 전축. 전축 옆에는 몇 년을 계속 진열한 타임 잡지. 미처 읽지는 못했지만…. 옆방에는 일제 전기냉장고, 전기세탁기가 아내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이 계장이 꿈꾸던 행복한 삶이란 꽤 물질적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이 소설이 발표되던 시기에 우리나라의 생활환경 및 빈부 격차의 변화가 투영되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던 중 이 계장은 어느 날 갑자기 졸도를 하고, 심한 노이로제 환자가 된다. 더구나 처남 창수와 병원을 막 나서려는 순간, 미국에서 경제경영학을 공부하고 귀국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이 될 인물이라 했던, 그 말쑥한 신사가 정신과 치료를 위해 병원을 들락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작가 김동립은 이 소설을 통해 이 계장처럼 조직에 절대적으로 충실한 사람조차 기계적이며 비인간적인 체제 속에서 병들어감을 보여주면서 조직과 효율만 따지는 획일화된 생산 및 관리시스템을 고발하고 있다. 회색 플란넬 슈트의 관리부장은 열심히 강의를 시작했다.

“따라서 관리자는 언제나 정확한 ‘숫자’와 ‘도표’로써 실적과 능률을 표시하여 확실한 예산의 사용과 그에 비례한 능률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미닫이를 연다. 하나하나의 도표를 설명한다. 작업표—여직공 H의 실례가 도표화되어 있다. 1. 작업내용. ‘소매 만들기’ 2. 한건의 소요시간, 5분 30초. 3. 하루의 작업시간, 7시간 10분 4. 따라서 H가 생산하는 하루의 생산량은 ‘소매만들기’ 78개 5. 잉여시간 5초. (그러나 저자가 계산을 해본 결과 잉여시간은 5초가 아닌 6초였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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