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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시적 공간> 상상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짓다


우리는 목전目前의 일상사에 구속되기 일쑤다. 구태, 타성, 상투적인 것에 젖지 않도록 의식의 날을 애써 세우고 살아도 그러하다. 의식과 행동을 자동화하는 습관의 힘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상을 비일상적으로 살 수도 없다. 언어도단이지만, 비일상적인 일상도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상의 습관적 지각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나쁘기는커녕 그것 없이는 삶이 근본적으로 곤란에 처한다. 매순간 달리 나타나는 사물을 그때마다 다르게 지각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며, 순간순간 의식을 단절시켜 일상의 삶을 불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들뢰즈는 그러한 습관적 지각의 자동성 곧 “수동적 종합”을 지복至福으로 여긴다.


문제는, 만사를 원만하고 평강하게 하는 바로 그러한 일상의 편만한 힘이 설렘과 약동 곧 생명의 비약적 율동을 누그러뜨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과 생각을 둔하게 만들어, 사물들을, 사람들을, 빛과 어둠을, 세상을 더 이상 새롭거나 신비롭게 보지 않도록 한다. 신비는커녕 ‘존재하는바 그대로’ 볼 수 없도록 한다. 그리하여 ‘부지불식간에’라는 표현처럼 자동기계처럼 말하고 행해서, 심지어 내가 뱉은 말들과 내가 행한 행동들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식사 때 무엇을 먹었는지, 얼마나 오랜 날을 거슬러가며 기억해낼 수 있는지 시험해보라). 그리고 무자각하게, 그러니까 무심하고 무감하게 사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감각과 의식이 떠나 있는 상태를 어찌 살아 있다 하겠는가. 그러니 습관적 지각으로 인한 무감각과 무의식화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상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 보며 밥 먹고, 출근해서 노동하고, 퇴근해서 친구들과 커피나 술을 나누고, 수다 떨고, 외식하고 쇼핑하는 등, 겉보기에 지극히 사사롭고 평온해서 그야말로 수수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일상사들이, 정치와 경제와 문화에 뗄 수 없이 착근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기까지,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로부터 벗어나 있는 시간은 얼마인가. 우리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만들어져 출현하는 이미지들로부터 자유로운 때가 얼마인가. 천지가 상품 광고판이고 상품 진열장이다. 문화와 상행위를 분간하기 힘들고, 스마트폰이 사회적 삶과 개인적 삶의 필수품이 되었다. 그리해서 생활세계가 상업주의에 의해 식민화된다는 식자들의 주장이 이제는 김빠진 맥주 같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우리의 의식마저 이미 물화物化과정을 이미 다 거쳤을지 모를 일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니, 일상사를 둘러싼 문제를 오롯이 개인사로 떠넘기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것을 사회적 층위에서 고민해야 마땅한데, 그러한 일에는 공간생산에 관여하는 자들도 분명한 몫이 있다. 인간은 분위기에 사로잡힌 존재인데, 공간이야말로 분위기를 형성하는 일차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간 또한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출현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간생산에 관여하는 자들이 공간의 (해방) 가능성을 숙고조차 하지 않는다.


(후략)


* 이 책은 6월 말에 독자들에게 찾아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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