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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아름다움의 진화Survival of the Beautiful>(가제)


2장. 가장 매혹적인 자만이 살아남는다 나는 벌써 오래전부터 예술이 자연에서 더 큰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자연에 존재하는 형태의 특질들을 항상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모든 생명체가 무작위로 이루어진 돌연변이이며, 적응의 산물이면서, 또한 미적美的, 혹은 성적性的 선택의 결과라는 아이디어에 좀처럼 만족할 수 없다. 이 중에서 후자인 미적, 혹은 성적 선택이라는 개념은 자연에 실제로 존재하지만 즉각적인 효용은 없어 보이는 것을 설명해보려는 다윈의 좋은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선택설이 우연, 유행, 변덕을 높이 산다고는 해도, 한편으로는 이것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양성을 여전히 질이 아닌 양적인 측면으로 설명해버리려고 한다. 홍관조는 왜 붉은가? 성선택 때문이다. 나이팅게일은 왜 한밤중에 푹 자지 않고 지치지도 않고 밤새 노래를 부르는가? 성선택 때문이다. 어째서 나비는 그렇게 현란한 색깔을 지니는가? 성선택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특질을 하나로 모아 설명해줄 수 있는 어떤 특정한 미적 성질이 있는가? 성선택설은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하지 않고 있다. 자연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다룬 기록들은 많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이 아름다움을 좇게 된 것은 생명체들이 성선택에 의해 내는 소리를 몇 년이나 주의 깊게 들은 후의 일이었다. 우리는 실상 이런 소리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나도 나의 다른 책 『새는 왜 노래하는가Why Birds Sing』에서 과학, 시, 음악이 각각 새의 노래에 관해 했던 이야기들을 비교한 바 있지만, 결국 내가 그 과정 중에 스스로 가장 만족했던 순간은 내 클라리넷을 가지고 웃는개똥지빠귀, 거문고새와 함께 종간 합주種間合奏를 했을 때였다. 이 종간 합주의 아름다움과 논리는 여느 음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측량하기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어쨌든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또 다른 저서 『1,000마일의 노래Thousand Mile Song』에서 새보다 훨씬 덜 친숙한 동물인 고래의 노랫소리에 새들의 노랫소리에 했던 것과 같은 접근을 시도했다. 고래 중에서도 특히 혹등고래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가장 긴 독창을 할 수 있는데, 한 번에 23시간까지 계속 노래를 이어갈 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직접 이 두 책을 꼼꼼히 살펴봐도 되겠지만, 일단 새에 관해서라면 평소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오직 수컷이며 성선택이 이런 감미로운 노래가 진화하는 데 메커니즘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내 이전 책들을 본 일부 독자는 내가 성선택설을 지지하는 모든 과학적 증거를 무시했다며 항의하기도 하는데, 아마도 내가 반대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히 전달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새가 노래하고 있는 것이 엄밀히 말해 무엇인지, 그 ‘특정한’ 복잡성을 설명하기에는 성선택 개념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선택설은 새가 ‘왜’ 노래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줄지도 모르지만, 그처럼 종종 놀랍고 사랑스러운 노랫소리가 무엇인지, 그러니까 새가 ‘무엇’을 노래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못한다. 가장 긴 노래, 가장 선율 진행이 복잡한 노래, 가장 음표가 많은 노래, 또는 가장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새가 짝짓기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한다면, 이는 한마디로 사실이 아니다. 물론, 몇몇 종의 경우는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그럴듯한 설명은 각 종의 암컷에게는 수컷이 부를 수 있는 노래 중에서 무엇이 ‘최고’인지를 판가름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해당 종에서 무엇이 최고의 노랫소리로 여겨지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특히 흉내지빠귀나 나이팅게일처럼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게 변주되는 진화한 노랫소리를 가진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진화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종들의 새들이 대단히 아름답고 풍성한 노래를 부르게끔 만들었고, 대부분의 인간은 이런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관한 어떤 설명에 만족하는 것 이상으로 그 아름다움 자체에 빠져든다. 마술의 비밀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 매력이 사라지지는 않는 것처럼, 아름다움도 그런 것이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인간은 혹등고래가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니 혹등고래의 노랫소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시작된 지도 고작 반세기 정도밖에 안 된 셈이다. 이 경우에도 노래를 부르는 것은 역시 수컷뿐이다. 혹등고래의 노래는 보통 반 시간 정도 계속되는데, 대부분 짝짓기 시기에 부르는 것으로 보아 성性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의 노래와는 달리, 혹등고래의 경우 암컷이 수컷의 노래에 신경을 쓴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지금껏 암컷이 수컷의 놀라운 노래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이는 모습이 목격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래의 노랫소리에 대한 성선택의 영향은 우리 인간이 알아챌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미묘한 것이거나,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개입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자연에 대해 조금밖에 모른다고 할 수도 있고 매우 많이 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실체의 내용, 그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그 실체의 존재 이유나 기능에 관한 설명에 훨씬 더 능숙하다. 그러니 여기서는 이 점에 주목하자. 혹등고래와 나이팅게일은 진화 계보상에서 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들의 노래에는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 왜 그런 것일까?  ......

* 이 책은 12월 초에 독자 여러분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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