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쪽┃<아주 작고 거대한 것들의 과학> 김홍표 지음



생물학 제1법칙은 ‘고귀함’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생물학 제1법칙으로부터 얘기의 실마리를 풀어보자. 너무 당연하다고 여긴 탓인지 교과서에서조차 법칙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지만 나는 ‘어미 아비 없는 자식은 없다’는 명제가 생물학의 으뜸 법칙이라고 본다. 이 법칙의 면면을 살펴보기 위해 족보를 예로 들어보자. 가령 경주 김씨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을 시조로 한다. 족보는 시조로부터 시작해서 아래쪽 방향으로 내려오는 계보를 그린다. 보학이 흔히 차용하는 방식이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특정 계보의 생물학적 반감기는 7세대 정도라고 한다. 풀어 말하면 7세대가 지나서도 나의 후손이 생존할 가능성은 50퍼센트라는 말이다. 보학을 송두리째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이런 얘기를 접하면 시조 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생물학적 반감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후손의 수가 근 1,000만 명에 육박한다는 칭기즈칸의 진화적 ‘퍼텐셜(potential)’은 가히 놀랍다.


통계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11년 10월 31일에 70억을 돌파했다. 1804년에 10억이던 세계 인구는 1927년에 20억, 그리고 1959년, 1987년 그리고 1998년을 거치며 각 시기마다 10억 명의 머릿수를 더해나갔다. 19세기 초반부터 따지면 인구가 10억씩 증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23년, 32년, 15년, 11년, 13년이 걸렸다.


이런 데이터만 보고 있으면 인구가 그저 늘고 있구나 이상의 느낌을 얻기가 힘들다. 하지만 『전쟁 유전자』의 저자인 캘리포니아 대학 말콤 포츠는 다윈의 가계도를 분석했다. 부인이자 사촌인 엠마 사이에서 그는 10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셋은 어린 나이에 죽었다. 대를 이어가면서 똑같은 비율로 자식을 낳았다면 다윈은 49명의 손자, 343명의 증손자, 2,401명의 현손자, 그리고 다음은 1만 6,807명의 후손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2009년 그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의 신문사가 벌인 조사를 보면 다윈의 후손은 현재 약 100명 정도가 남아 있다.


모계 쪽으로 분석한 계통도를 잠깐 보면, 1698년에서 1742년 사이에 살았던 2만 443명의 아이슬란드 여성 중 6.6퍼센트만이 1970년대 이후 인구 약 62퍼센트인 6만 4,150명의 할머니가 될 수 있었다. 좀 더 최근인 1848~1892년 사이에 살았던 여성 다섯 명 중 하나가 현재 인구 90퍼센트의 조상 할머니였다. 사회학에서 흔히 말하는 80:20 법칙과 유사한 현상이 인구 계보에서도 엿보인다는 점은 흥미롭다.


하지만 이젠 생각을 좀 바꿔서 나로부터 시작해보자.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 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할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 나를 나무 둥치의 맨 아래에 두고 위로 계속 올라간다고 상상을 해보자. 그러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리 조상들이 어떤 역경을 겪었든 상관없이 그들의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 생물학의 제1법칙은 생명은 단 한 번의 단절도 없이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다는 명제로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내가 자식을 낳지 않으면 나의 계보를 그린 그림은 가뭇없이 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나의 부모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나로부터 위로 올라가다 보면 머지않아 우리는 경순왕의 아들을 만날 것이고 또 기원전과 후를 살다간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곁눈질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의 부모의 부모는 이제 크로마뇽인이 되었다가 두 발로 간신히 걷기 시작할 것이고 나무 위에서 벌레를 잡아먹으며 후식으로 잘 익은 과일을 두고 동료들과 겨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진 시기를 거치느라 인간의 수가 급감하는 ‘병목’의 현장도 목격을 했고, 거대한 공룡의 발을 피해 애처로운 하루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물론 따뜻한 연못 근처에서 알을 낳은 적도 있었다. 아! 바닷물이 빠지면서 물이 줄어들었을 때는 지느러미를 펼쳐서 ‘팔 굽혀 펴기’를 하기도 했다.


바다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고 광포한 집게발과 흉악한 이빨을 가진 생명체를 피해서 기신기신 목숨을 유지한 적도 부지기수였다. 인간 계보의 먼 친척 중에는 광합성을 하면서 소화기관이 필요치 않은 집단도 있었다. 그들은 물고기보다 먼저 바다를 벗어나 씨를 만들고 공기 중의 팍팍한 삶을 견뎌내다 마침내 푸르른 나무로 우뚝 섰다.


그렇다. 나로부터 세상을 보면 우리 모두가 친척이고 형제다. 짐승을 사냥하다 대나무 이파리로 먹이를 바꾸기로 작정한 판다도 그렇고 우리 발치에 밟힐까 눈치를 보는 질경이나 개미도 마찬가지다. 그렇담 혹시 우리 조상이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게 작았던 적이 있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 맞다. 바로 이것이 생물학 제1법칙이 펼치는 인간 역사의 파노라마다.


그러나 지구 행성에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북아메리카의 거대한 삼나무도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끊임도 없이 생명을 이어왔다고 보는 것이 지극히 타당한 추론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아야 한다. 다르게 어떻게? 현존하는 모든 생명체는 어떤 식으로든 인간과 맞닿아 있다. 사돈의 팔촌지간이라는 말이다. 모든 생명체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어느 지점에선가 인간과 한 조상을 가졌을 것이라는 명제는 생물학과 장구한 지질학적 시간을 접목시킨 후에야 그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생물학 제1법칙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은 현재의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혹은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 엄청난 수의 생명체가 지구 행성에 살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끊어짐 없이.


간혹 우리가 개별 인간의 고귀함을 논할 때 생식과 태반 안에서의 발생을 언급한다. 1억 개가 넘는 정자 중 단 하나가 난자와 상견례를 치른다는 점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한 인간이 멀쩡하게 성인으로 클 때까지를 생물학적 입장에서 확률적으로 계산하지 못할 바 없다. 하지만 생물학 제1법칙이 표방하는 인간의 계통은 통계의 마법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리고 그 인간 중 한 명이 나다. 그러므로 나는 돈과 명예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고귀한 존재다.



* 이 책은 8월 중순에 독자 여러분에게 찾아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