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쪽 |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희곡 읽는 밤

일요일 저녁 8시 30분 휴일이 끝나가는 시간. 컴퓨터 앞에 정자세를 하고 앉는다. 온라인 화상모임 ‘희곡 읽는 밤’이 시작된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어느덧 두 해째에 접어들던 2021년 1월,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의 소모임 시민연극단 단톡방에 누군가 제안을 했다.

“우리 희곡 같이 읽어볼까요? 세 명이든 네 명이든 모이는 만큼 그냥 읽기로 해요.”

뜻밖에 하겠다고 손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려 11명. 첫 작품은 〈굿 닥터〉. 안톤 체호프의 콩트를 미국의 극작가 닐 사이먼이 1973년 각색한 희극작품이다. 젊은 하급 공무원이 상사인 장관의 머리에 재채기를 하고 그 일에 집착하다 죽게 된 이야기, 무서운 통증 때문에 치과를 찾아왔으나 돌팔이 의사에게 이빨을 뽑히는 신부님, 아들의 생일을 맞이해 여자를 체험하게 해주려는 아버지, 주인의 부당한 처사에 말 한마디 못하는 순진한 가정교사 줄리아 등 8개의 에피소드. 요즘 말로 ‘웃픈’ 이야기다.

내가 가장 몰입했던 것은 돌팔이의사와 신부님 장면. 나는 4년 전 신경치료를 할 때 몇 날 며칠 잠 못 자고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정말 실감나게 낭독했다. 마치 내 이빨이 다시 아픈 것 같았다. 여자 꼬시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람둥이 장면은 두 사람의 러브라인에 몰입해 낭독하는 친구들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함께 소리 내 읽는 건 눈으로 슥 읽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감정을 최대한 표현해서 읽기 때문에 인물에 몰입하게 된다.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도 있다. 앞 대사를 읽은 친구의 영향을 받아 다음 대사에도 감정을 이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팁 하나. 각자 배역을 정해놓고 낭독하지 않는다. 그날의 참여자들이 순서를 정해서 읽는다. 그래야 작품 전체에 집중할 수 있다.

영화로 한 번쯤 봤을 법한 작품들도 읽었다. 무너져가는 가족 이야기를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과 테네시 윌리엄스의 자전적 희곡 〈유리동물원〉.

“TV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그냥 그런 이야기인가 보다 했죠. 그런데 희곡에 감정을 넣어 소리 내 읽어보니 완전히 달랐어요. 등장인물들 하나하나 그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특히 주인공 톰의 누나 로라가 너무 불쌍했어요.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살지?” (참여자 K)

한 사건에 대해 각 인물들이 저마다 다른 기억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일본희곡의 고전 〈나생문〉. 그리고 환경문제를 풍자한 중국의 현대극 〈청개구리〉도 읽었다. 얼핏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각각 일본과 중국의 독특한 느낌이 묻어나는 작품들. 낭독이 끝나면 소감도 나누고 서로 질문도 하면서 작품을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혼자 읽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국의 대표 희곡작품도 함께 읽었다. 이름만 장군일 뿐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농부가 행정오류로 군대에 징집되는 이야기 〈오장군의 발톱〉(박조열 작, 1974), 제목과 반대로 앞이 보이지 않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청춘예찬〉(박근형 작, 1999). 외국 작품에 비해 우리나라 희곡을 읽을 땐 인물들이 겪는 불행의 강도가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다음엔 그리스 비극 세 편. 그때 나는 다른 독서서클에서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를 읽고 있었고 덕분에 그리스 비극을 깊은 시선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는 〈메데이아〉를 “신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던 이전의 영웅들과 달리 오로지 자신의 절박한 로고스에 따라 움직였던” 인간으로 설명한다. 〈안티고네〉는 “가족 간 의리와 폴리스의 법 사이에 일어난 화해할 수 없는 충돌”을 그린 작품이며, 〈오이디푸스 왕〉은 “혐오감을 느낄 만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관객들이 자비심을 느끼며 초월과 공감의 엑스타시로 안내되는” 작품이라 소개한다.* 카렌 암스트롱은 고통과 불안에 직면한 사람들과 그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공감 능력에서 인류의 희망을 본다.

*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정영목 옮김, 교양인, 2010, 394, 435, 439쪽.

입센의 〈인형의 집〉은 너무도 유명해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을 찬찬히 그것도 소리 내 읽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본을 다 읽고 나서 우리는 토론을 했다. 대본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얘기를 나누면서 한 인물을 여러 시선에서 만날 수 있었다. “노라는 어떤 부분에서 자신의 부부관계에 대한 깨달음이 왔을까요?” “노라는 집을 나간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입센의 〈유령〉, 〈헤다 가블레르〉 역시 압권이었다. 작품을 읽다 중간에 끊기면, 궁금해도 혼자 먼저 다음 장면을 읽지 않았다. 다음 주 일요일 저녁 함께 대본을 읽을 때까지. 혼자 소설이나 희곡을 볼 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어서 『체호프 희곡전집』의 모든 작품을 다 읽었다. 〈큰길에서〉, 〈고니의 노래〉, 〈담배의 해독에 관하여〉, 〈곰〉, 〈청혼〉, 〈싫든 좋든 비극배우〉, 〈결혼 피로연〉, 〈기념식〉, 〈이바노프〉 등. 한 작가가 일생에 걸쳐 집필한 희곡작품을 모두 읽으면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이 작품에서 이 인물이 저 작품에서 저렇게 변화해서 다시 등장하기도 하고, 그 인물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바냐 삼촌〉과 〈갈매기〉 같은 유명한 작품은 어떤 과정을 통해 숙성되었는지 알게 되는 재미도 있다. 또한 소설과 희곡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소설에서는 그 인물이 하는 말 외에 행동, 생각, 배경을 묘사하며 작가의 생각을 풍부하게 서술하잖아요. 그런데 희곡은 주로 대사와 지문 중심이니까 배우와 관객이 상상하고 해석할 여백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요.”( 참여자 J)

희곡 읽는 밤은 당신에게 무엇이었나요


매주 일요일을 희곡 읽는 밤으로 마무리했던 한 해, 그동안의 시간이 자신에게 무엇이었는지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휴일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좀 더 늘어지고 싶은 마음을 애써 떨치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읽는 순서를 놓칠까봐 집중하고 인물이 놓인 상황과 성격을 조금이라도 살려보려고 음색을 조절해가며 몰입해 읽다 보면 어느새 주말의 밤은 지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지난 1년의 대본 낭독은 나에게 ‘즐거운 숙제’였다. 숙제를 하면서 끝냈다는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꼈다. 좋은 작품은 온라인으로도 감동의 온기가 나누어진다. 작품을 읽고 얘기를 나눌 때 늘 즐거웠고 10시쯤 마치고 나면 뿌듯했다.”

“이 시간은 일상을 떠나 나를 다른 세계, 다른 인물에 풍덩 빠지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치솟은 전세가격과 이사문제, 부모님과 조카 걱정, 최근 합류한 동료와의 갈등 같은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친구도 필요하지만, 희곡을 낭독할 땐 그런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온라인 모임이라 집이든 어디든 내가 가장 편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었다.”

나에겐 어떤 시간이었을까? 희곡 읽는 밤은 ‘내가 참여하는 주말연속극’이었다. 나는 이 시간이 재미있어 1주일을 기다렸다. 다음 시간이 궁금했다. 덕분에 정년퇴직 후 글 쓴다고 혼자 시골에 있는 나의 일요일 저녁이 외롭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 더 많은 온라인 희곡 읽기 모임이 생기면 좋겠다. 전쟁터에서도 놀 거리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처럼, 우리들도 창조적으로 놀아보자.


*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는 10월 중순에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