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쪽┃이해하고 내려놓기-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 팔정도


마음을 잘 지키고 보호하라 『법구경』 주석서에는 한 스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분이 재가불자로 있을 때 자기 집으로 탁발을 오는 어떤 장로 스님을 만났는데요, 그때 그 스님에게 “제가 괴로움에서 해탈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대의 재산을 삼등분하여 하나로 사업을 하고, 하나로는 자식과 아내를 부양하고, 나머지 하나는 승가에 보시하여 공덕을 지으시오. 보시를 많이 행하면 큰 공덕이 됩니다” 하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시를 열심히 행하였습니다. 그다음에 스님에게 “이보다 더 높은 법은 없습니까?” 하고 물으니 이번에는 “불법승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계율을 잘 지키십시오” 하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 가르침을 열심히 실천하고 나서 또 물었지요. “이보다 더 높은 법은 없습니까?” 그러니까 “십선(十善), 즉 살생, 도둑질, 삿된 음행을 하지 말고 거짓말, 거친 말, 이간질,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탐욕, 적의, 사견을 버리십시오. 불선(不善)을 행하지 말고 선(善)을 많이 행하십시오” 하고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잘 지키고 나서 또 여쭈었습니다. “이보다 더 높은 법은 없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러면 출가를 하십시오” 하는 대답을 듣지요. 그래서 출가를 하여 스님이 됩니다. 출가를 하고 보니 은사(恩師)스님은 불교 교리에 정통하신 분이었고 계사(戒師)스님은 계율에 아주 정통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은사스님은 찾아와서 “이 가르침은 합당하고 이 가르침은 합당하지 않다”라며 반복해서 설명했고, 계사스님도 찾아와서 “이것은 계율에 맞고 이것은 계율에 맞지 않는다”라며 가르치고 훈계했습니다. 이 스님은 출가하기 전에 세속에서는 한 걸음 한 걸음 단계를 밟으며 공부를 했기 에 불교가 재미있었는데, 두 분 스승의 복잡한 가르침에 오히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거예요. “오! 출가생활은 정말 힘든 것이구나.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기 위해 비구가 되었는데 여기서는 손을 뻗고 숨을 쉬고 기지개를 펼 여유조차 없구나.” 스님은 차라리 가정생활을 하면서 수행을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다보니 몸은 말라가고 피부는 쭈글쭈글해지면서 출가생활이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두 스승은 그 스님을 부처님께 데리고 갔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출가생활이 힘든가?” 스님이 답했지요. “출가하기 전에는 오히려 재미있게 공부를 했는데, 출가하고 나니 배울 것도 너무 많고 머리가 복잡해져서 출가생활에 적응을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죠. “네가 하나만 보호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좋다.” 그 스님은 부처님께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좋으니, 네 마음 하나만 잘 보호하라.” 이 법문을 듣고 그 스님은 세속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버렸고 결국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마음을 잘 보호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에 대하여 너무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 삶을 한번 돌아봅시다. 우리는 마음 가는 대로 좋은 것들을 즐기고 살잖아요? 하지만 일상의 삶속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잘 모르고 지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어떤 마음을 일으키고 사는지, 이런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죠. 하지만 연예인들이 뭘 하고 사는지, 무슨 옷을 입고 나왔는지, 누구와 사귀는지, 이런 것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사실 그런 것들은 여러분 삶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 아닌가요? 하지만 여러분의 마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떤 마음이 주로 일어나는지, 마음의 특징은 무엇인지, 이렇게 마음을 잘 이해하는 일은 여러분 삶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됩니다. 마음을 잘 이해하고 번뇌로부터 보호해야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불교 수행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마음: 식온 보통 마음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것, 변하지 않는 실체인 것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단지 “대상을 아는 것이 마음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를 보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생각을 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라는 거죠. 바깥세상의 어떤 대상을 안다는 것은 마음이 작용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산이 여러분에게 “나는 산이다” 하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산을 보고 ‘산이다’ 하고 아는 것이지요. 이처럼 대상을 아는 작용을 하는 것을 마음이라고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대상을 아는 것 자체가 마음이다” 또는 “대상을 아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이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표현하더라도 ‘대상을 아는 것이 마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앞서 마음과 식(識)은 같은 뜻이라고 했습니다. ‘식’은 팔리어로 ‘viññaṇā’의 번역어이고 ‘마음(心)’은 ‘citta’의 번역어인데 둘 다 ‘안다, 분별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식온은 대상을 아는 마음들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앙굿따라니까야』라는 경전에서 부처님은 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마음보다 빨리 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비유조차 힘들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마음은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순간순간 조건에 따라서 계속 변한다는 겁니다. 대상을 볼 때는 보는 마음인 안식(眼識)이 작용하고 소리를 들을 때는 듣는 마음인 이식(耳識)이 작용하고 생각을 할 때는 의식(意識)이 작용하는 것처럼,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이러저러한 마음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지 마음이 변하지 않는 실체가 아니라는 거죠. 마음이 실체인 듯 생각하는 것은 사견(邪見)이라고 부처님께서 여러 경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마음이 찰나 생(生) 찰나 멸(滅)한다고 말합니다. 즉 매우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가 매우 짧은 순간에 사라진다는 말이지요. 요약해보면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마음이고 마음은 조건에 따라 매우 빠르게 변하는 특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마음이 작용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마음과 대상은 서로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3강 마음과 대상' 중에서 

*<이해하고 내려놓기>는 6월 10일 출간될 예정입니다.